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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롱이에게 생긴 이변

by 권영순

다롱이는 어느 날 아롱이 가족 밥자리에 끼어든 암컷 냥이다. 아롱이 한 마리만 밥을 먹이다 새끼 네 마리가 생겨 캔 값이 부담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당연히 다롱이가 달갑지 않아 나름 구박이란 걸 해 봤다. 공원 고양이들은 먹을 걸 자주 줘도 경계를 완전히 풀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롱이는 처음부터 달랐다. 밥을 안 주면 다른 냥이들 밥에 무조건 끼어들었다. 내가 다가가 위협을 해도 전혀 기죽지 않고 먹이를 먹는 데만 집중했다. 천연덕스러웠다. 너는 밥을 먹으러 오지 말라는 유무언의 압박을 녀석은 철저히 무시했다. 아롱이 가족들 밥자리에 끼어들어 당연히 자기 밥이라는 듯이 같이 먹었다.

'이 녀석 장난 아니네?'싶었다. 녀석은 처음 봤을 때부터 귀가 잘린 상태였다. 6개월이 안 돼 보이는 작은 녀석이었다. 아마 미술관 주변에서 누군가 중성화를 시켜 풀어놓은 모양이었다. 중성화를 시켜 풀어줬으면 당연히 거둬 먹이는 것도 책임져야지 싶어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아롱이가 딱히 제지하지 않는데 사람인 내가 구박하는 것도 좀 웃긴 생각이 들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다롱이 밥도 챙길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밥을 챙기기 시작한 지 햇수로만 3년. 그 사이 아롱이는 새끼들을 독립시킨답시고 자기가 밥자리에서 나갔다. 그리고 작년 7월 두 번째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첫 번째 새끼들은 이리저리 입양되어 정리된 뒤였다. 다소 복잡한 사건들이 있을 때도 다롱이는 아롱이처럼 밥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분명 우리가 경계하던 '꼬짤'에게 쫓겨난 것 같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밥을 주러 가면 어디선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지금까지 자기 밥을 챙기는 일에 있어 다롱이만 한 녀석을 본 적이 없다.

3년 동안 나는 다롱이의 치열한 생존력과 뻔뻔할 정도의 친화력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기 먹이에 대한 집착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롱이는 다롱이가 밥자리에 끼어들어 자기 밥을 가로채도 별 제지를 하지 않았다. 그런 아롱이가 다롱이를 잡는 건 자기 새끼들을 건드릴 때다. 근처에서 보이지 않다가도 어디선가 순식간에 나타나 다롱이를 잡았다. 그렇게 혼이 난 날도 다롱이는 절대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오죽하면 내가 객식구라고 불렀을까? 어쨌건 나도 아롱이 객원 가족으로 녀석을 받아들인 것이다.

작년 가을, 다롱이가 덩치 큰 냥이들에게 쫓겨 도망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영역 다툼처럼 보였다. 하지만 분명 멀리 쫓겨난 것 같은 데도 다음 날이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나타났다. 멀리서라도 나나 은토끼님이 보일라치면 어느새 주변에 와 아는 척을 했다. 밥을 안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는 척을 하며 따라다니는 데 어떻게 밥을 안 줄 수 있는가? 죄책감을 자극하는 요령을 녀석은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다롱이가 원하는 먹이를 가져다 바치게 하는 데 아주 쉬운 인간인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절대 먹이를 양보하지 않는 투철한 생존 의식이다. 지금도 우리는 귀요미 급식 문제로 매일이 전쟁이다. 귀요미 먹이를 줄 때마다 먼저 다롱이를 어르고 달래 다른 곳으로 데려가야 한다. 귀요미 먹이를 가로챌 완벽한 준비가 된 녀석이 다롱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먹이를 줘도 마찬가지다. 자기 것을 먹다가도 그걸 팽개치고 어느 틈에 달려와 가로챈다. 덕분에 귀요미 먹이 주는 게 보통 미션이 아니다. 녀석과 아옹다옹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수시로 생기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통 속을 썩은 게 아니다.

솔직히 귀요미가 근처에 서식하지 않으면 다롱이는 너 알아서 살라고 먹이를 끊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귀요미는 수컷인 데도 암컷 다롱이에게 밀린다. 오죽 열불이 나면 귀요미에게 '제발 너도 덤벼!'라고 성질을 다 낼까?

며칠 전이었다. 정말 드문 이변이 일어났다. 아주 이상한 장면을 본 것이다. 일요일이라 공원에는 사람이 넘쳤다. 귀요미 서식지 주변에는 사방으로 향기를 풍기던 매화가 눈송이처럼 하얗게 깔려 있었다. 살구나무 꽃은 연분홍 꽃망울을 소담스레 터트려 사람들이 시선을 끌었다.

한참을 서성대도 귀요미가 밥을 먹으러 나오지 않아 우연히 이런 장면을 보게 되었다.

위에 있는 삼색이가 다롱이다. 다롱이가 먹이에서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어디서 나타난 까만 턱시도 녀석이 다롱이의 밥을 서슴없이 먹고 있다.

자기 먹이를 빼앗기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는 다롱이라 잠시 어쩌나 지켜봤다. 아니나 다를까. 다롱이는 신경질을 내며 아르렁거리더니 까만 녀석의 귀싸대기를 한 대 쳤다. 그러나 이 까만 녀석도 만만치 않았다. 바로 앞에서 내가 지켜보고 있는 데도 먹이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다롱이가 밥을 뺏기는 날이 다 있네.' 싶었다.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연한 고등어 한 마리가 조릿대 사이에서 스르르 나타났다. 아직 몇 개월 되지 않은 새끼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응? 나리?' 할 정도로 작은 아들이 입양한 아롱이 딸 나리를 닮아 놀랐다

이 녀석이 나타나자 검은 냥이 녀석이 얼른 밥에서 물러섰다. 속으로 '검은 냥이 새낀가?' 싶었다. 아롱이도 밥을 먹다 새끼들이 다가오면 요조숙녀처럼 물러섰기에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든 것이다. 다롱이의 철벽 방어에도 물러나지 않던 녀석이 먹던 밥을 양보한다는 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건데??? 그냥 지켜만 본 건 이유가 있었다. 평소 다롱이가 귀요미 밥을 빼앗지 못해 안달이었으니 너도 한 번 당해 봐라 싶은 심술이 생겼기 때문이다.

밥을 먹다 물러서는 검은 냥이가 좀 안된 생각이 들었다. 캔을 하나 그릇에 담아 조릿대 속으로 밀어 넣어 줬다. 하지만 검은 냥이는 조릿대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연한 고등어 녀석은 내가 주는 밥 대신 다롱이 가 먹고 있는 닭가슴살에 눈독을 들이며 다가섰다. 행동이 다롱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막무가내였다. 사람 손을 탄 녀석인가 싶을 정도로 바로 앞에 있는 나를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씨알도 안 먹힐 텐데. 다롱이가 어떤 녀석인데...'

내가 촬영을 한 이유는 작은 아들에게 보내주기 위해서였다. 이 녀석 혹시 네가 입양한 나리랑 자매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촌지간이라거나. 너무 비슷했다.

녀석은 아직 어려서인지 다롱이의 실체와 견제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닭가슴살을 먹고 있는 다롱이에게 감히 다가가다니! 겁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다롱이에게 한 대 얻어 맞고 조릿대 속으로 들어가더니 할 수 없이 검은 냥이에게 준 밥을 먹는다.

물론 검은 냥이와 연한 고등어 관계는 알 수 없다. 짐작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이 작은 녀석이 앞으로 이 구역의 새로운 문젯거리가 될 여지는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귀요미의 안전이 제일 걱정이었다. 다롱이야 워낙 자기 것을 잘 챙기는 녀석이니 걱정도 되지 않는다.

연한 고등어의 보호자처럼 보이는 검은 냥이는 덩치가 장난 아니다. 녀석은 지난 겨울부터 자주 이곳에 나타나 귀요미 밥을 가로챘다. 심지어 밥을 기다리는 귀요미를 쫓아버리는 모습도 여러 번 목격했다.

갈수록 귀요미 급식 문제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최근에는 귀요미에게 밥을 주고도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앞에서 지켜야 한다. 어디선가 순식간에 나타난 냥이들이 귀요미 밥을 가로채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도 귀요미 주변에 몰려드는 냥이들 배를 다 채워주고 싶다. 그러나 갈수록 고양이들 밥값이 많이 들어 부담이 되는 게 문제다. 야생에서 지내는 냥이들이라 그런지 집냥이들에 비해 먹이가 거의 3배는 든다. 그러니 주변에 모이는 모든 냥이들을 다 먹이는 문제는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부담이 심해지면 결국 먹이 주는 일에 손을 떼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된다.

아롱이와 귀요미가 나올 때까지는 먹이 주는 걸 멈출 수 없기에 더 그렇다. 4년째 공급하던 먹이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솔직히 요즘은 나도 그 문제로 걱정이 된다. 먹이 주기를 그만둔 다음 돌보던 녀석들이 방황할 생각을 하면 암담하기만 하다. 그래서 먹이 주는 녀석들 수를 늘리지 않으려 기를 쓴다.

오늘은 18년 동안 기르던 개를 무지개다리로 보낸 다음 더 이상 반려견을 들이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이 더 생각난다.

'만약 무슨 일이 생겨 자신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남은 아이들이 그 누군가의 짐이 되고 구박받을 생각을 하면 더 이상 개나 고양이를 들일 수 없노라. 던'

공원 냥이들을 돌볼 형편과 처지가 지속되기를 오늘은 더 바라게 된다. 욕심 많은 골칫덩이 다롱이까지 먹이 주는 걸 망설이지 않을 수 있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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