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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식습관 길들이기

by 권영순


작은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리의 식습관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는다. 너무 웃겨 폭소를 터트렸다. 가장 큰 문제는 건사료를 잘 먹지 않으려는 데 있다. 40그램짜리 간식 파우치를 주면 순식간에 먹어치우는데 건사료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절대 먹지 않는단다. 무엇보다 새벽 5시만 되면 야옹거리며 밥을 달라고 잠을 깨우는 데 그게 가장 힘들다는 하소연이었다.

작은 아들은 올빼미 형이다. 늦게 자는 건 별 문제 아니다. 대신 아침이면 잘 일어나지 못해 어릴 때부터 그게 문제였다.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 늦잠을 자다 중간고사 시험 시간을 놓쳐 결국 한 과목 시험을 보지 못한 일도 있었다.

그러니 나리가 새벽이면 다리를 툭툭 치고 몸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야옹거리는 게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까미의 여동생이니 성격도 비슷하지 않을까? 까미 역시 한동안 새벽 5시만 되면 집요하게 괴롭히기 수준으로 나를 들들 볶았다.

오죽하면 ‘넌 꼭 새벽 다섯 시에 밥을 먹어야겠니?’ 하며 원망을 했을까?

제 엄마 아롱이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내가 지나다니는 길목을 누구보다 잘 안다. 놀랄 정도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구별해 내 앞에 짠~하고 나타난다. 나보다 내 공원행 일정을 더 정확히 아는 녀석이 있다면 그게 아롱이다. 행여 간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아롱이 출몰 장소를 피해 빙 돌아다녀야 한다. 아롱이가 먹을 걸 바로 내놓지 않을 때의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걸 생각하면 나도 어이가 없다. 하지만 어쩌랴? 다 공원 냥이에게 호구로 잡힌 내 탓인 걸.

'이 진상이!!!' 해 봤자 소용이 없다.

작은 아들은 전에도 나한테 항의 비슷한 소리를 했다. 도대체 공원에 있을 때 애 버릇을 어떻게 들였기에 이렇게 식습관이 나쁘냐고 말이다. 솔직히 좀 억울했다. 냥이들 밥을 나만 먹인 것도 아니어서다. 은토끼님은 나보다 더 좋은 거 틈만 나면 먹이신다고 오리발을 내밀며 툴툴댔다.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지인과 냥이들 밥 주는 주변을 지나갈 때였다. 휴식 시간이셨는지 은토끼님이 냥이들 밥그릇을 늘어놓고 두리번거리셨다. 그걸 본 지인은 정말 놀란 모양이었다. 무슨 고양이 밥을 12첩 반상처럼 차려 주느냐며 말이다. 아롱이와 새끼 세 마리의 밥그릇에 먹을 걸 다양하게 담아 대 여섯 개나 늘어놓고 있었으니 놀랄 만도 했을 것이다.


나는 작은 아들에게 단단히 경고했다. 귀찮다고 새벽 5시에 밥을 주게 되면 절대 안 된다고 말이다. 버릇을 한 번 잘못 들이면 매일 그 시간을 밥 먹는 시간으로 알고 조를 거라며 참아야 한다고 조언한 것이다. 적어도 아침 8시 전에는 밥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작은 아들에게 놀아달라며 대 놓고 책상까지 올라와 일을 방해하는 나리. 점차 옆에 와 붙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중이다.

사실 까미도 비슷하게 행동한다. 입양한 지 일 년이 넘어가도 배고프면 나를 깨우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KakaoTalk_20220412_141124484.jpg 밥을 주지 않을 때 사람을 압박하듯 앉아 조르는 까미
낮에는 따뜻한 햇살이 드는 마루에서 이렇게 자는 게 일이다

고양이는 야행성이다. 낮에는 수시로 잠을 잔다. 야생에서 사는 짐승들은 위험에 자주 노출된다. 당연히 깊은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 길냥이들의 수명이 짧은 이유에는 아마 그것이 클 것이다. 하지만 집냥이들은 낮에 자는 게 일이다. 마음 푹 놓고 자니 수명이 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람들과 밤낮이 바뀐 행동 패턴을 방치하면 식구들 모두 힘들어진다. 까미도 새벽까지 집안 곳곳을 헤매고 다니다 슬슬 나를 깨우기 시작한다. 아마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하는 행동일 것이다.

핦아주고 깨물고 와서 몸을 척 등에 기댄다. 심지어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안방과 거실 사이를 후다닥 뛰어다니기도 한다. 나중에는 아주 내 위로 올라와 깔아뭉갠다. 그래도 안 일어나고 모른 척하면 책상이나 경대 위에 있는 물건을 떨어트린다. 핸드폰 심지어는 아이패드 등 전자제품 등 가리지 않는다. 그래도 반응이 시원찮으면 팔뚝 아무 곳이나 깨물 깨물을 한다. 결국 아야!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다.

고양이는 워낙 행동이 민첩하고 운동 감각이 뛰어나다. 호랑이가 고양잇과 아닌가? 제법 높은 곳을 다닐 때도 사뿐 거리며 걷는 그 우아한 걸음을 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평소 책상이나 경대 식탁 싱크대를 가볍게 오르내려도 거기 놓여 있던 물건을 떨어트리거나 파손하는 일은 거의 없다. 고양이들이 만약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거의 고의라고 보면 된다. 먹을 것을 달라거나 다른 보챌 일이 있을 때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먹는 문제에 가차 없이 구는 건 집안 내력 같다. 아롱이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아롱이가 나에게 성질을 낸다는 건 내가 주는 밥이 마음에 차지 않을 때다. 여지없이 할퀴어 버린다. 조금 밥을 늦게 주면 가차 없이 그런 짓을 저지른다.

까미 동생 중에 고등어 녀석은 아주 특이한 행동을 한다. 자기 앞에 밥이 늦게 놓이거나 다른 아이를 먼저 주면 인정사정이 없다. 밥그릇을 확 끌어가 먹는다. 너무 쉽고 명랑하게 끌어가 놀랄 틈도 없다. 심지어 자기 먹고 싶은 밥이 나오지 않으면 그 행동은 좀 더 거칠어진다. 이건 내가 먹는 밥 아니라며 뒤에서 옷을 잡아 끄는 듯한 짓까지 하는 것이다. 제 엄마 아롱이 이상으로 나를 할퀴기 때문에 이 녀석과의 아옹다옹도 잦은 편이다. 심지어 할퀴는 행동 싫어한다며 팔로 크게 엑스자를 만들어 주의를 주기도 했다. 알아듣기나 하는지 몰라도.

무엇보다 나리의 행동을 들으며 내가 많이 웃은 게 있다. 끝까지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주지 않으면 건사료를 먹기는 하는데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먹는다는 것이다. 그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는 들어봐야 안다.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이다. 진짜 시끄럽다. 까미도 그러니 짐작이 된다.

'내가 할 수 없이 이거 먹어준다.'는 성질난 표시를 온몸으로 하는 나리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아주 피곤하고 힘들어 잠을 좀 푹 잤으면 싶을 때 이런 행동이 곱게 보이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어디 때려줄 수도 없고 다른 방에 가둘 수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윗집과 아랫집에서 시끄럽다고 올라오거나 항의하러 내려올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단다.

그래도 어쩌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들이 내 새끼인 것을. 밥을 먹다가도 까미가 와 보채면 벌떡 일어나 간식이라도 준다. 까미도 가족인데 뭐라도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책임감! 그게 가족으로 들인 집사의 책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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