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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걸린 사람의 변명

by 권영순

토요일, 가족들과 조금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샘! 저 확진됐는데 샘은 괜찮으세요?"

밥을 먹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응. 뭐라는 거야?"

전날 거의 반년 만에 제자를 만났다. 첫 근무한 학교에서 만난 제자니 그간 알고 지낸 시간이 40년이 넘는다. 그 사이 세월이 흘러 나는 60대 제자는 50대가 되었다.

아롱이를 만난 4년 전 그 해는 거의 매일 공원에서 만나 둘이 운동 겸 산책을 했다. 함께 먹이를 주며 아롱이 첫 번째 새끼들의 성장 과정을 같이 지켜봤다. 그러다 제자가 과천으로 이사를 갔다. 송파에 사는 나와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민화를 배우다 내킨 김에 작년에 대학원까지 진학을 한 제자는 없는 게 시간인 사람이 되었다. 내 느낌상 전날 제자와의 만남은 백만 년만의 한 번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 만나는 게 과거보다 여의치 않다는 건 잘 안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내키는 대로 약속을 잡던 시절이 대과거처럼 느껴지는 게 나만의 기분은 아닐 것이다.

만나기로 한 날 아침 제자가 카톡으로 이상한 사진을 보냈다. 자가검사 음성이 나온 사진이었다.

제자가 보내온 자가 검사 키트 사진

'속으로 새로운 콘셉트인가? 요즘 궁궐 누각을 그린다더니 거기 이런 무늬가 있나?'라고 생각했다. 받침 무늬 때문에 그런 착각을 한 것이다. 만났을 때 그걸 왜 보냈냐고 물었다. 컨디션이 안 좋아 나를 만나는 게 약간 꺼림칙한 상태였단다. 제자는 내가 지난번 발행한 <친구의 의미>를 보고 기운을 내라며 보러 오겠다고 했었다. 만나지 못한 시간이 길어진 것에 조금 무리수를 두었을 것이다. 더구나 함께 민화 작업을 하는 대학원 동기들이 확진되고 있어 걱정이 되었단다. 그래서 일부러 자가진단까지 하고 나온 모양이었다.

제자 김소형 민화 작가가 비단에 최근 작업 중인 궁궐 누각 사진

'중학생 때 스승에게 제일 나눠주고 싶지 않은 게 코로나인데 어쩌면 좋으냐?'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스승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누가 나 때문에 확진자가 된다면 얼마나 미안한가? 걸렸는지 알 수도 없는 병이 코로나라는 놈인데.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는 게 이 병이다.

결과야 어떻든 그날 제자의 위로는 내게 도움이 되었다. 학교를 그만둔 다음 해 내게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제자는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나보다 먼저 공황장애를 겪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정신적인 문제를 극복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다. 내가 걸린 병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는 것도 운이 좋은 것이었음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제자는 아마 아픈 친구로 인해 상심이 커 보이는 내가 몹시 걱정되었을 것이다. 위로라고 특별한 건 아니었다. 그냥 함께 북한강변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고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그동안 못 나눈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한편 내 책임도 있다. 검사 키트 사진을 보냈을 때 일단 오는 걸 말렸어야 했다. 하지만 2주 전에 PCR 감사를 받고 음성을 확인했던 터라 방심을 하고 있었다. '설마 무슨 일이 있으리?'라고 맘편히 생각한 것이다.

나는 2주 전 검사를 받으러 가기 전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한과 목이 쉬는 증상 등이 있었다. 검사 결과를 받고는 내가 잘 모르는 사이 코로나가 나를 쓰~윽 한 번 훑고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내가 가진 항체가 워낙 대단해서 코로나가 면역력의 봉인해제를 시키지 못하고 지나갔을 거라고 은근히 믿은 것이다. 착각이었다. 결과는 역시!!!

전화를 받은 저녁 무렵부터 재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어 기침약과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그냥 잤다. 증상이 약할 때 약을 왕창 먹어 코로나를 진압하자고 생각했다. 잠이 보약이라며 다량의 감기약을 복용하고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다. 마음속으로는 요 근래 안 하던 일을 조금 더 하니 피로가 누적되어 몸살 기운이 있는 거라고 스스로 다독거렸다.

다음 날 증상은 더 심해졌다. 열감이 생겼다. 두통도 오기 시작했다. 목이 서서히 아프더니 점점 침을 삼키는 것도 힘들어졌다. 아무리 봐도 코로나에 걸린 게 맞는 것 같았다. 일단 병원을 가 보자 싶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보시던 의사 선생님은 바로 열을 체크하셨다. 출입구에서 재 본 내 열은 36. 4도. 그러나 실제 귀에 체크해 본 열은 37.8도였다. 어쩐지 병원 가는 길에 식은땀이 나고 목이 말라 아무 물이라도 들이켜야 할 것 같더라니.

당장 pcr 검사를 받으러 가라고 하셨다. 그 정신에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약이 필요할 것 같다며 약을 달라고 했다, 땀이 나는 데도 한기가 들었다. 온몸의 힘이 빠진 것 같았다. 코로나 증상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증상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공원 평화의 광장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어질어질했다. 그래도 참고 평화의 광장 선별 진료소를 가니??? 문이 닫혀 있었다. 11시 30분부터 1시까지 점심 및 소독 시간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잠시 벤치에 앉아 기다릴까 말까 고민이라는 걸 했다. 하지만 앉아 있는 데도 열이 나서인지 목이 말라 견디기 힘들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5시. 오후 진료는 4시 30분에 마감이라고 했는데??? 약을 먹었는 데도 열이 잘 내리지 않았다. 무겁고 멍한 상태.

다음 날 오전 잠시 망설였다. 보건소를 갈까 말까 내면의 갈등이 있었다. 확진되어 7일 격리가 떨어지면 집에서만 보내야 할 시간이 걱정된 것이다. 일주일이면 꽃 다 지고 난 뭘 보나??? 현상황에서 걱정할 일인가 싶기는 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내 도덕성을 잠시 의심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송파보건소를 찾았다. 가면서 석촌호수를 눈팅하니 벚나무 꽃가지들이 거의 비어 있었다. 전날 석촌호수에 꽃비가 내렸다더니. 어느 새 속절없이 짮은 봄이 가고 있었다.

송파 보건소를 걸어가며 찍은 사진. 전날 석촌호수에 꽃비가 내렸다는 뉴스가 있었다

다음 날 7시 30분. 지난번 음성이 나왔을 때는 이 시간에 문자를 받았었다. 하지만 기다려도 문자가 오지 않았다. 9시나 다 되어 확진 문자가 떴다. 목이 타는 듯 아프고 기침이 나고 코는 막히고. 당연히 코로나겠지만 그래도 아니었으면 했는데.

4월 12일. 확진자 195419명. 그중에 한 명이 나라니???

그 많은 숫자에 내가 1을 더했다는 사실에 잠시 망연해졌다. 2년이 넘도록 이리저리 잘 피했었는데. 마지막에 딱 걸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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