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30분에 잠이 들었다. 코로나 후유증이 남아 있어 약을 먹은 탓인가 보다. 아침 8시 넘어서야 간신히 깼다. 냥이들 밥을 주러 공원에 나간 시간은 10시 30분. 귀요미와 까미 동생 점박이를 만나 밥을 줬다. 점박이는 아롱이를 불러대자 야옹거리며 나왔다. 고등어와 까미 엄마 아롱이는 하늘정원 꼭대기와 박물관 뒤에 가서 불러도 나오지 않는다. 밥만 두고 돌아왔다.
나리를 돌보기 위해 집을 나선 시간은 오후 3시 30분. 내일과 모레는 냥이엄마가 휴무시다. 혼자 공원 냥이들 배를 채워줘야 한다. 화곡동에서 돌아와 공원 냥이들 밥을 주러 무슨 일이 있어도 와야 한다는 의미다.
전철을 타러 가기 전 캔과 건사료 물병을 하늘공원 철쭉나무 사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두었다. 집에 먹거리를 챙기러 오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려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맞추지 않으면 냥냥이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주말에는 박물관 주차장에 차들이 평소 몇 배는 드나든다. 아롱이와 공원에 남은 나리 자매들은 배가 고프면 차들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주차장을 어슬렁거린다. 아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지런히 9호선 전철을 타러 갔다. 작은 아들네 도착. 집을 비운다고 청소를 해 둔 모양이다. 스카치테이프를 사다 곳곳에 숨은 나리 털을 찍어냈다.
작은 아들은 4박 5일 일정으로 전주 국제영화제에 갔다. 누군가 고양이 시터를 해야 한다. 당연히 첫번째 주자로 내가 당첨되었다. 아들의 전주 일정 중 내가 부탁받은 날은 2박 3일. 문제는 하필 공원 고양이 돌봄 일정과 겹친다는 거다.
30분 이상을 놀아줬다. 운동도 시킬 겸 놀이를 하니 제법 가까이 다가온다. 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더니 이제 확실히 알아챈 느낌이다. 가까이 다가와 드러눕기도 하고 장난도 친다.
배쪽에 중성화를 위해 털을 깍은 흔적이 보인다. 중성화를 시키러 같이 갔을 때 돈은 많이 들어도 괜찮으니 안전에 더 신경 써 달라던 아들의 잔뜩 긴장해 굳은 표정이 떠올랐다.
나리는 밤이 되자 머리맡과 다리 사이를 오가며 잠도 잔다. 장족의 발전이다. 하지만 새벽 네 시. 내 다리를 툭툭 치기 시작한다. 끝까지 일어나지 않으니 아예 다리를 깨물어 버린다. '아야!!!' 소리를 질러도 도망치지 않고 빤히 쳐다본다. 맡겨 놓은 밥을 찾으러 온 표정이다.
결국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밥을 가지러 나갔다. 까미처럼 나를 따라 나선다. 발에 채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아예 앞장 서기까지~.
아침에 일어나 나리와 놀아준 뒤 다시 아들네 집을 나섰다. 12시가 지나 있었다. 부지런히 귀요미 있는 곳으로 먼저 갔다. 하수구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 배수구 주변에 앉아 밥을 주는데 어디선가 중성화된 고등어가 슬그머니 다가와 앉는다.
아롱이와 나리 자매들 밥을 주려고 하늘 정원으로 부지런히 갔다. 고등어만 나왔다. 넉넉히 밥을 두는데 애들 사료에 파리가 들러붙는다. 여분 빈 그릇을 대충 덮어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보다 서둘러 저녁을 먹었다. 화곡동으로 다시 가야 했기 때문이다. 냥이들 다음날 먹거리를 두러 박물관 하늘 공원으로 향했다. 아롱이는 보이지 않고 능청맞게 생긴 까만 턱시도 녀석이 거기 있다 슬그머니 나와 애들 밥을 거침없이 먹어치운다. 짜증난 표정으로 쳐다 봐도 소용없다. 밥을 다시 두고 아롱이가 자주 나오는 박물관 버스 아래도 먹을 것을 가져다 뒀다.
서둘렀는 데도 작은 아들 집에 도착하니 8시.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렸다. 남편이 전철역까지 태워다 줬는 데도 피곤하다.
우리 집에서 작은 아들 집을 오가는 교통편은 지하철이 최고다. 걸리는 시간이 일정한 데다 어디서 밀려 피곤할 일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나리와 더 놀아주고 새벽에 깨움을 당하지 않으려 넉넉히 먹을 걸 줬다.
다음 날 일어나니 피곤하기 짝이 없다. 잠자리가 바뀌어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리가 어찌나 밤새 뽀시락 거리는지 장난 아니었다. 고양이 화장실을 수시로 드나들며 상자 벽을 긁어대 자다 깨다 했다. 아무래도 화장실 모레가 너무 습한 게 아닌가 걱정된다. 속으로 '저 녀석 변비가 생겼나? 왜 저러지?' 싶었다. 화장실을 통째로 창가에 내놓고 약한 햇살이지만 건조를 시켰다.
나리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니 캣타워 여왕이 되어 아예 내려오지를 않는다. 내 앞에 와서 온갖 뽀작귀염을 다 떨더니 창밖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들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대충 정리하고 먹이도 놓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 귀요미가 있는 미술관 주차장 주변으로 먼저 갔다.
동선을 절약하기 위해 귀요미 먹이는 배낭에 지고 다녔다. 연 3일을 귀요미가 기다리고 있어 나도 모르게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이렇게 시간 맞춰 밥을 먹으러 나와주다니. 고맙다. 가방에서 얼른 귀요미 밥을 꺼내 주니 잘 먹는다. 귀요미 밥 먹이는 데 정신이 팔려 중성화된 고등어 녀석이 자기도 밥을 줘야 한다며 내 주변으로 와 오도카니 앉는 걸 보지도 못했다. 녀석은 뭘 많이 먹지도 않지만 입맛이 의외로 까다롭다.
아롱이와 새끼들이 걱정되어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 주차장 옆 하늘공원으로 가며 아롱이를 불렀다. 아롱이를 이틀이나 보지 못해서다. 어제는 두 번이나 가 불러도 안 나와 걱정을 했는데.
나온다! 아롱이 좋아하는 치킨 트릿을 꺼내 물을 살짝 부어 줬다. 어제 애들 밥과 물을 그곳에 보관해 다행이다. 아롱이용 치킨 트릿을 어제 나리에게 꽤 바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건사료 속에 섞어둔 치킨 트릿만 골라 먹어 나를 웃게 했는데. 더 많이 주지 못했다. 혹 아롱이를 만나면 먹여야 했기에.
아롱이 밥 먹이는데 정신이 팔려 어디선가 점박이가 나타나는 걸 눈치도 채지 못했다. 오자마자 제 엄마 밥그릇을 바로 독차지해 버린다.
고등어는 어디 있는지 안 나오길래 캔을 여러 개 따서 놓고 여기저기 밥그릇에 건사료와 물을 챙겨 두었다.
공원을 나오다 평소 안면이 있던 캣대디를 만났다. 북문에서부터 평화의 광장과 호수 주변까지 광범위하게 고양이를 관리하는 분이시다. 박물관 주변 몇 마리도 힘들어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존경이 절로 된다.
사비까지 들여 지난겨울부터 공원 냥이들 중성화도 시키신다고 하셨다.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겨우내 똑같은 점퍼를 입고 계신 걸 여러 번 봤다. 공원 냥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같은 옷만 입고 다니시는 게 아주 가끔 신경이 쓰였었다. 무엇보다 매일 하루 두 번 애들을 살피러 다니는 게 정말 쉽지 않은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집에 돌아오니 까미가 원망 어린 소리를 낸다. 며칠 째 나가 돌아다닌다고 생각해서인지 표정이 좋지 않다. 이제 내 배낭을 물어뜯고 싶은 얼굴이다. 제법 길게 놀아줬다. 간식도 바쳤다. 놀잇감으로 여기저기서 고양이와 놀아주다 보니 이게 무슨 복인가 싶다. 솔직히 힘이 딸린다.
식탁 의자에 앉는데 까미가 와서 자꾸 말을 건다. 어제 보니 나리도 보통 수다쟁이가 아니다. 지금까지 본색을 숨긴 것 같다. 침대와 옷 이불 방바닥 등 여기저기 널린 제 털을 치우는 걸 장난이라고 생각하는지 다가와서 자꾸 집적거린다. 많이 달라졌다. 입양 후에 제법 드나들어도 캣타워 꼭대기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더니. 역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지나 보다. 잠을 같이 잔 사이가 되니 확연히 태도가 다르다.
후일담이다. 작은 아들이 4박 5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니 나리가 엄청 뭐라고 했단다. 심지어 머리까지 뜯긴 보양이다.
그 소리를 듣고 아롱이에게 '너 딸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그렇게 앙칼지냐. 널 닮은 거 아니냐.'고 했다.
물론 진상 고양이 아롱이답게 별 시답지 않은 소리를 듣는다는 표정으로 고개 박고 밥만 먹더니 하늘 정원 위로 올라가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