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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릉도원, 부연마을

by 권영순

나는 ~데이가 들어가는 날을 별로 기리지 않는다. 아마 남자 형제 넷과 보낸 어린 시절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 환경 탓에 성격도 여성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울산 매곡리 골짜기에서 나고 자란 남편은 나보다 기념일에 더 무관심하다. 분명 남들이 하는 걸 본 적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기념일이라고 나에게 꽃 한 송이 사다 줄 마음을 아예 머리에서 털어버리는 이유는 민망해서??? 그 나이 또래 남자답다. 나 역시 그런 일에 특별히 화를 내거나 굳이 챙겨야 한다고 안달해 본 적이 없어 더 그런 모양이다.

그런 우리 집에도 ~데이 대신 봄마다 연례행사로 하는 일이 있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부터이니 그 기간이 이십 년은 훌쩍 넘어간다.

그 행사는 늦어도 사월 말이나 오월 초 하루 날을 잡아 오대산 부연마을을 가는 일이다.

작년부터 곰취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엄나무(개두릅)로 농사가 바뀌고 있었다


황매화. 근처 부연 약수는 철분이 들어 애매한 사이다 맛이 났었다. 지금은 음용수로 사용할 수 없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우리가 민박을 하기도 했던 민박집. 부연 약수, 가마소 부근에 있다. 이 민박집에서 곰취를 샀다

어느 해였다. 강릉에서 오대산 월정사 표지판을 따라 구비구비 진부령을 넘어가고 있었다. 안개가 잔뜩 끼어 서행 운전을 했을 것이다. 우연히 부연마을 표지판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차 한 대 지나갈 만한 작은 비포장 도로였다.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잠시 대피했다 가려 들어섰는데 구불구불한 길이 계속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위험한 길을 들어섰는지 모르겠다.

정상에 오르자 신기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능선 저 아래 안개가 전혀 없는 마을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나온 길의 안개는 산바람에 여전히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안개로 뒤덮인 그 길을 뚫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안개라는 신비한 터널을 뚫고 다른 세상을 온 느낌. 딱 그 표현에 걸맞았다. 우리 가족은 차에서 내려 그 장관을 바라보았다. 자연의 신비가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전설 속 무릉도원을 찾은 기분이었다.

부연마을에서 바라본 오대산 능선

그렇게 우리 가족은 일 년에 한 번 반드시 다녀오는 곳을 만들었다. 오대산 자락 능선을 구비구비 따라 포장이 안 된 흙길을 30분 이상 달려 산등성이 하나를 넘어가면 아득한 골짜기 저 아래 옹기종기 몇 집 안 되는 부연마을이 보인다.

심신이 지쳐 마음의 위안을 필요로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떠올리는 곳. 냇가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오대산을 거쳐온 바람을 맞으며 뻐꾸기 소리를 듣는 상상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나만의 무릉도원이 된 것이다.

그곳은 봄이 늦었다. 서울의 봄꽃들이 모두 진 뒤인데도 복사나무의 진분홍 꽃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초록초록한 산색이 올라오는 능선마다 연분홍 산벚꽃이 여기저기 화사함을 자랑했다. 오대산 계곡을 흘러온 물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계곡 어디에나 금낭화의 조롱조롱한 연분홍 복주머니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곳 민박을 빌려 하루 숙박을 했다. 언제 지어진지 모르는 오래된 건물에 달랑 방 한 칸이었다. 그러나 산자락 나무들을 쓸어내리는 듯한 바람 소리와 청량한 계곡 물소리가 밤새 우리 가족들 귀에 들렸다. 자동차와 각종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와는 전혀 다른 그 소리가 깊은 산속의 적막을 깨트렸다. 낯선 소리에 귀가 예민해져 잠들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디선가 봄밤을 깨우는 개구리(배가 붉은색이다) 울음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소쩍새 소리는 먼 추억 속 어린 시절로 나를 데려갔다. 그 소리를 더 가까이 듣고 싶어 작은 툇마루에 앉아 별빛이 마을과 계곡을 채울 정도로 쏟아져 내릴 듯한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하룻밤들. 내게는 서울살이의 온갖 번잡함을 밀어내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민가 주변에서 자생하는 참취와 가염취 등을 일부 채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행위가 제한되어 아쉽다. 대신 곰취를 사서 주변 사람들과 나눠먹고는 했다. 올해는 그마저도 없단다.

양양 낙산 해변
낙산 해변에서 본 해당화

아들 둘이 자라 더 이상 오대산 부연마을 행에 따라나서지 않게 된 시간이 꽤 오래전이다. 우리가 나이 든 것처럼 부연마을 변화도 눈에 띄게 보인다.

엄마 생전에는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일부러 부연마을을 모시고 다녀왔다. 덕분에 부연마을의 연로하신 분들과의 대화도 수월했다. 하지만 그분들도 모두 돌아가신 모양이다. 처음에는 40대 초반으로 보였던 며느리들이 지긋한 나이가 되어 해마다 한 번 오는 우리룰 반긴다.

그분들이 부연마을 소식을 알려주신다. 폭설로 곰취가 다 얼어 죽었다거나 요즘 강풍이 장난 아니게 불었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펜션도 생기고 여름이면 제법 외지인들이 많이 드나들어 한적한 오지의 느낌이 아닌 모양이다. 양양 쪽으로 드나드는 길에 제법 도로가 잘 닦여 있어 오가기가 수월해진 덕이다.

재작년 폭설과 한파로 곰취들이 다 얼어 죽었다고 하시더니 엄나무로 농사가 바뀌고 있는 것도 보인다. 이제 오대산 정기가 듬뿍 담긴 곰취의 추억도 사라져 간다. 곰취를 유독 좋아하는 남편은 아쉽기만 한 지 자꾸 엄나무 재배지로 변한 밭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드나들던 부연마을의 변화가 그리 달갑지 않은가 보다.

부연마을을 떠나며 유독 아쉬웠던 이유가 뭘까? 나만의 무릉도원 부연마을 행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다. 평소라면 진부령 송천 식당에서 산채 정식을 먹고 돌아왔을 텐데 올해는 그마저도 양양 쪽으로 차를 돌려 행사를 다 치르지 않은 기분까지 남겼다. 대신 낙산해변에 들러 잠시 바다를 보고 숨을 돌렸다가 차가 밀리기 전에 서둘러 돌아왔다.

아마 또 장시간 운전해 부연마을을 일부러 찾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랜 세월 부연마을에서 우리가 얻었던 휴식과 위로의 추억은 기억저장고에 남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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