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이 배달되었다. 전화로 연락은 미리 받았었다. 올해는 아카시 꽃이 피는 기간에 벌들이 일을 열심히 했다고 하셨다. 반가웠다. 꿀을 따는 기간 동안 날씨가 화창해 품질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양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지난 4월 나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함께 먹고 자고 생활을 한 남편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무증상일 수는 있다. '특별히 조심을 하는 것도 아닌데 혈액형이 O형이라 그런가?' 했다. 하지만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 한 수저씩 먹는 꿀 덕분이라 주장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자 소독을 위해 아침마다 꿀을 먹어서라고. 우리 집에서 믿을 수 있는 품질 좋은 꿀은 이제 필수품이 된 이유다.
남편이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고 전하자 가까운 선생님 한 분이 꿀을 한 병 보내주셨다. 양평에서 동서가 직접 양봉을 한다며 품질은 보장할 수 있으니 드시고 빨리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였다. 귀한 꿀을 그렇게 받았다. 그게 인연이었다.
하필이면 4월에 꿀이 똑 떨어져 연락을 했다. 집 앞 공원에는 이미 아카시 꽃이 다 떨어져 길에 낙화가 즐비할 무렵이었다. 양평은 봄이 늦어 아직 아카시 꽃이 피지 않았노라며 한 달 이상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걱정이 앞섰다. 일단 다른 꿀이라도 조달을 해야 하나 싶어 남편에게 물어보니 기다려 보자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꿀을 보내주실 수 있다고 전화가 왔다. 제일 먼저 연락하셨다는 소리에 얼마나 고맙던지. 행여 배송 중 문제가 생길까 봐 꽁꽁 잘 포장하신 꿀을 받았다. 가위와 칼을 동원해 포장지를 벗겨내니 어김없이 쪽지가 한 장 들어 있다. 벌을 직접 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내용의 쪽지였다. 다감한 내용을 찬찬히 읽노라니 가슴에 온기가 돌고 미소가 그려진다. 벌들과 한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생활인이면서도 소녀 같은 감성을 잃지 않는 여인이 쪽지 속에 보여서다. 무엇보다 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듬뿍 들어있는 소중한 꿀을 받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시간을 거슬러 철없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그날 윗집 할머니의 역성 가득한 소리에 미안해하시던 우리 아버지의 표정과 함께.
내가 대 여섯 살 무렵이었다. 그날 나는 한나절을 무장다리꽃 사이에서 벌을 잡으며 놀았다. 꽃 고무신으로 벌을 덮쳐 잡고 빙빙 돌린 다음 땅바닥에 패대기치면 벌이 기절을 한다. 기절한 벌을 잡아 꽁지를 빨면 달콤한 꿀이 나온다. 아무리 많은 벌을 잡아 꿀을 강탈해봤자 한 숟가락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놀이였다. 지금은 생각만 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문제는 내가 잘 모르는 게 더 있었다는 거다. 장다리꽃은 씨앗을 받기 위해 일부러 키운다는 걸.
그날 저녁 우리 집에 윗집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내가 무장다리꽃대를 다 망가트려 씨앗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며 항의하러 오신 것이다.
어렸을 때인데도 선명하게 그날의 일을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일로 대청마루 대형 괘종시계 아래 무릎을 꿇고 한 시간 동안 팔을 들고 벌을 섰기 때문이다.
당시 30대 초반이었을 우리 아버지는 아들들처럼 딸인 내게 벌로 종아리를 치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그 벌도 내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던 기억이 선명하다. 씨앗값을 물어주시면서도 어린 딸에게 남의 밭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만 가르치시던 나의 아버지. 돌아보면 하나 있는 딸에 대한 애정을 나름 이리저리 표현하셨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니 눈물이 핑글 돈다. 술 담배를 안 하시던 아버지도 꿀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아카시 향이 짙게 묻어나는 꿀 한 스푼을 떠 입에 넣으니 머리가 핑글 돌 정도로 진한 향이 일품이다.
작년 <할아버지와 꿀벌과 나>라는 책을 읽었을 때였다. 주인공인 어린 소녀는 벌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고 성장한다. 벌이 추는 춤의 의미를 할아버지를 통해 깨달으면서다.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사고를 저질렀다해도 진심으로 반성 한 번 하지 않은 내가 떠올라 새삼 그때의 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었다.
얼마 전 우리나라 평균 기온이 높아져 작년 약 80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읽었다. 지구 온난화를 늦추기 위해 내가 뭐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갑자기 마음이 초조해진다.
우리에게 꿀을 나눠주시는 분은 벌의 날갯짓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셔서 다행이다. 그런 분이 보내 주신 꿀이라 더 고맙고 감사하다.
그래서, 오래오래 벌들과 함께 건강하게 지내시면서 우리 가족에게도 꿀을 나눠주시면 좋겠다고 문자 답장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