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대견하다

한나 이야기

by 권영순

한나가 웃는다. 그림같이 미소를 짓는다. 제 사진을 찍는 고모 앞에서 스스럼없이 포즈를 잡아준다. 자기가 예쁜 걸 잘 아는 아이가 할 법한 행동을 한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 오기까지 한나가 걸어 온 길을 사람들은 모른다. 삶을 위한 사투. 그것도 태어나자마자 시작이었다. 그걸 아는 나로서는 한나의 웃음이 어여쁘기도 하지만 마음이 찌르르 울린다.


2016년 10월 23일. 한나가 태어났다. 선천성 심장 질환을 가진 환아로. 태어난 날 겨우 2킬로 넘을까말까하는 아가를 수술대에 올려야 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수술이 이어졌다. 의사의 의술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능력이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 하나님의 선한 선물을 받은 의사 선생님들이 한나를 살려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부터 한나라는 성경 속 인물을 알고 있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사사 사무엘의 어머니로 이스라엘의 대예언자이자 탁월한 지도자를 낳아 나실인으로 키운 분이다. 어렵게 얻은 아들을 나실인으로 바치겠다는 약속을 지켜 실천한 여인. 그 대단한 의지의 여인을 나는 오래 경외해 왔다.


가슴에 선명한 수술 자국을 가지고 있지만 한나는 이제 걷고 뛰고 구김없이 웃는다. 무엇보다 그 웃음이 너무 환하다. 4년전 수술을 할 때였다. 한나가 입원해 있는 중환자실을 들여다 본 후 퇴원할 때까지 나는 두 번 다시 병원을 가지 않았다. 내 팔뚝 정도밖에 안 되는 한나의 몸에 장비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각종 기계의 힘을 빌려 색색 여린 숨을 쉬던 한나의 눈에 고였던 눈물이 얼마나 애처럽던지. 아직 어리고 여린 몸에 수술로 인한 고통으로 눈물 겨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는 게 그렇게 괴로울 줄이야.


한나는 내게 조카 손녀다. 나는 안동 권씨 남강공파 35대 장남의 고명딸이다. 36대 큰오빠도 딸 하나를 낳아 길렀다. 제주에서 고등학교 과학 교사로 근무하는 재기발랄하고 성격 좋은 녀석이다. 한나는 37대 장조카의 유일한 딸로 태어났다. 3대에 걸친 장남의 고명딸들. 그런 특별한 혈연으로 이어졌기에 한나는 내게 더 각별할 수 밖에 없다.권가네 이야기 2권 16화 가족이라는 이름권가네 가족이라는

한나의 아빠인 장조카는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녀석이었다. 동양철학을 전공해 대학에서 한문학을 가르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라 인성도 좋았다. 장손으로 자라서인지 어려서부터 누구에게나 정중하고 불필요한 언사를 함부로 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편견없이 진심을 다해 대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적어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알고 있다는 생각을 내가 오래 해 온 이유다.

할아버지의 장손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장조카의 대학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걸 벗어버리기 위해 나름 뼈아픈 노력을 했을 것이다. 나는 그 과정을 다 알지 못한다. 결혼과 육아에 직장생활로 전쟁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장조카가 중국에서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베트남으로 갔을 때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언어나 환경이 달라도 그걸 넉넉히 돌파할 기본기가 충분하다고 믿고 있어서다. 이미 영어와 중국어로 일상 대화가 가능하니 베트남에 가서 현지어를 더 익히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걸 증명하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회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판단할 정도니 말이다. 인재는 어디를 가나 낭중지추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물론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어서도 장조카의 성실함과 책임감 그리고 가족에 대한 헌신은 자주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런 장조카가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과정은 <권가네 이야기 2부> 16화 '가족의 의미'라는 글에서 자세히 이야기 한 적이 있다.

태중에 있던 한나는 베트남 의료 기술로는 살릴 수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딸을 구할 수 있는 병원이 우리 집 주변에 있다면서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는 청이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한나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대형 병원 근처다. 숙식을 제공할 테니 오라고 했다. 한국의 높은 의료 수준 덕분에 한나는 세상의 빛을 본 것은 물론 가족들의 꽃이 될 수 있었다.


지난 7월 중순. 코로나로 인해 호치민에 사는 조카 가족은 2년 반 만에야 한국에 올 수 있었다. 그동안 한나는 심장과 소아과 진료를 2년 이상 볼 수 없었다. 사실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싶었지만 한나는 생각보다 잘 버텨냈다. 감기만이 아니라 코로나도 걸렸었다. 그 힘겨운 수술을 몇 번이나 견뎠는데 코로나 정도야!

이제는 공부하고 운동할 체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장미 공원에서의 한나
고모가 있는 제주에서 오빠와 함께
나와 함께 공원에서 한 장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다시 본 한나는 누가 봐도 숙녀처럼 성장해 있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가 없는 우리 집 4층 계단을 겅중겅중거리며 올라왔다.

만난 지 오래 되어 기억이 가물거릴 법도 한데 팔을 벌리는 내게 피하지 않고 와 안긴다. 나도 모르게 한나를 자꾸 끌어안게 된다.

낯선 사람이 왔다고 바람같이 어디론가 사라진 고양이 까미를 찾는 얼굴에는 웃음기가 한가득이다. 조카는 아이들을 한국에 한 달 반 정도 두고 갈 예정이란다. 조부모와 고모랑도 지내면서 한국어에 더 익숙해져야 한다며.

아직 미혼이지만 다이아몬드급 고모가 있는 제주에 가서 시간을 보낼 계획은 지금 실행 중이다.

하나의 꿈을 버리고 새로운 꿈을 개척해 행복하게 살아가는 조카도 대견하지만 나는 한나가 너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나부터 시작해 제 고모도 교사니 한나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왕사로 시작한 우리 집안은 이쪽 방면에서 나름 재능이 있는 편이다. 한나 역시 태어나서부터 인생의 험한 일을 너끈히 돌파했으니 무엇을 해도 분명히 대단하게 성장할 게 분명하다. 제 엄마나 외할아버지처럼 회계사로 대성하건 할아버지처럼 학자로 이름을 떨치던 한나가 자기 길을 잘 찾아 곧고 분명하게 걸어 갈 것을 믿는다.

한나야. 너는 내가 아는 어느 7살보다 더 대단한 아이니 그걸 잊지 말고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주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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