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냥이 아롱이

냥이들의 여름 나기 2

by 권영순

올여름은 적당히가 없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정말 더웠다. 장맛비로 땅에 가득했던 습기가 이글거리는 열기에 섞여 주변이 부옇게 보였다. 봄도 아닌데 이게 무슨 아지랑인가? 할 정도였다. 가뭄이 심한 영국에서는 머리도 매일 감지 말라는 공지가 떴다는데. 다행히 물은 넉넉하다 생각했는데. 이 비는 뭐지? 싶다. 장마도 태풍도 아닌데.

냥이들 급식을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땀이 온 몸에 솟는다. 요즘은 육수가 빠진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최근에는 안 되겠다 싶어 집에 돌아다니던 온갖 영양제를 꺼내 먹고 있다. 그 정도로 기력이 빠져서다.

월요일,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내렸다. 날씨 앱 안내에 소낙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날이 저물어가는 시간인데 집을 나섰다. 오늘은 오후 급식 담당이기 때문이다. 내리는 비 때문에 시야가 우중충하기도 했지만 비가 엄청나게 쏟아질 것 같이 하늘이 무거웠다. 비가 오면 시원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열기가 푹푹 전달되는 걸로 보아 내릴 비의 양이 만만치 않을 듯하기는 했다. 제법 빗방울이 뿌려도 냥이들은 밥을 기다리다 뛰어나온다. 비 좀 맞으렴 어떠랴. 밥 배달이 왔는데.

오전에 밥을 먹으러 나오지 않았다는 고등어에게 먼저 갔다. 부르자마자 나온다. 걱정이 된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녀석이 나오는 구멍에 물이 넘쳐 들어가는 건 아닐까 싶어서다.

빗방울이 제법 거세지기 시작해서 우산을 양보했다.

배가 고팠는지 밥을 열심히 먹는다. 구멍에서 작은 새끼들 머리가 들락거린다. 같이 나와 먹고는 싶은데 차마 나오지 못하는 모양이다. 건사료를 두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켰더니 둘이 쪼르르 나와 밥을 삼키다 나를 보더니 바로 도망친다.

부지런히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귀요미와 다롱이가 있는 곳이다. 비가 오는 기세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곳은 비도 문제지만 억새 숲 때문에 모기가 장난 아니다.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리니 모기의 먹고살겠다는 흡혈 의지가 조금 꺾이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너무 덥고 비가 많이 내려 반바지에 크록스를 신고 나갔기 때문이다. 사실 운동화가 비에 젖어 신을 게 없어서라는 게 더 맞는 말이다.

다롱이는 비 오는 날 이 구조물 아래 자주 앉아 있다. 비 피하는 장소 치고 최적이다. 밥이 지나갈 우려가 없다.

내 그림자가 채 다가가기도 전에 다롱이가 뛰어온다. 오늘도 환영의 세리머니가 장난 아니다. 다리에 와 감기니 우산을 쓴 채 개를 산책시키시던 분이 놀라 물어보신다. 공원 냥이들이 이렇게 달려오는 건 처음 본다면서. 개 때문인지 다롱이의 긴장감이 느껴져 얼른 대답하고 보내드린다.

귀요미는 억새숲에서 밥 먹는 걸 좋아한다. 거긴 모기가 장난 아니게 많은데.

두리번거리며 귀요미를 불렀다. 나온다. 요즘 귀요미 출석률이 아주 좋다. 녀석을 찾으러 사방팔방 다닌 건 다 옛날이다. 비 오는 날 찾아다니기까지 하려면 장난 아닌데 다행이다. 먹이를 주는 억새숲 쪽으로 오더니 심지어 자기 왔다고 냐옹~ 소리까지 낸다. 4년 만에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걸음걸이는 찬찬하다. 녀석이 좋아하는 먹이를 얼른 조합해 기다리는 곳에 넣어준다. 조막만 한 머리가 다가와 닭가슴살을 물어간다. 대량의 비 예보가 걱정스럽다. 은토끼님이 가져다 둔 집에 들어가서 제발 잤으면 좋겠다. 오늘 밤 둘이 비 맞지 말고 안전하게 잘 보내길~

빗발이 점점 거세진다. 날은 순간순간 어두워지는 느낌이다. 평소 이 시간은 저녁 산책을 나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비가 와서인지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쓰레기를 대충 처리하고 손을 씻으러 갔다. 음수대에서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발을 씻고 있다. 샌들이 엉망이 된 모양새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이 보여 다행이다. 사람들이 다 집에 간 공원은 적막하다 못해 약간 으스스하다.

음수대 주변 벤치 아래 까치 한 마리가 비를 피하고 있다. 요령이 장난 아니다.

아주머니가 비켜나자 음수대에 다가갔다. 손을 씻고 물통에 아롱이에게 줄 물을 받아 돌아섰다. 그러다 이 까치를 봤다. 비의 기세 때문인지 까치가 나무 의자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까치가 영리한 건 알고 있었지만??? 녀석도 참! 고양이 건사료를 꺼내 그 아래 뿌려줬다 금방 비에 젖기야 하겠지만 고픈 배는 알아서 채우겠지.

월요일은 박물관이 휴무다. 이즈음 아롱이와 사랑이가 지내는 곳은 박물관 2층 레스토랑이 있는 근처다. 휴무라서 인지 박물관만이 아니라 레스토랑도 최소의 불빛만 보인다. 붉은색 불빛이 으스스한 건 내가 공포 분야에 약해서가 아닐까.

그래도 아롱이를 찾아 하늘공원으로 올라갔다. 박물관 주변 배수로에도 건사료를 챙겨 두는 곳이 있다. 누군가 계속 사료를 먹는다. 역시 통이 텅 비었다. 설마 까치의 소행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통을 채운다. 우산을 썼어도 비 때문에 등이 비에 흠뻑 젖는다. 건사료 통을 닦아 사료를 채우고 물을 갈아주는 과정에서 쭈그리고 앉아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비가 미친 듯이 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느낀다. 무슨 놈의 비가 대충이 없냐 싶다. 이미 반바지가 다 젖어 다리에 감겨 철퍽거린다. 그래도 아롱이가 행여 나올까 하늘공원길을 올라간다. 포장된 길이 거대한 물길이 된 느낌이다. 비가 내리 부으니 개울처럼 흐른다. 아니 개울이 아니다. 거의 시내 수준이다. 좀 더 내리면 강물이 될 기세다. 비에 젖은 발은 갈수록 무겁다. 발이 퉁퉁 불어 버리는 게 느껴진다. 비를 피할 엄두를 아예 포기하고 그냥 철벅거리며 걷는다. 일단 아롱이 밥자리로 올라갔다. 어디서 비를 피하는지 안 보인다.

다음 날 오전 아롱이와 사랑이가 나와 밥을 먹고 있다. 내가 양보한 우산 아래.

비가 너무 미친 듯이 내려서인지 인적이 뚝 끊겼다. 주변이 점차 어둑해진다. 내리는 빗물의 양이 장난 아니다. 도랑물이 아니라 폭포가 될 기세다. 토사가 여기저기 마구 흘러내린다.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이 꼭 물속 같다. 아롱이가 잘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불러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단 건사료 통만 챙겼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인지 어제 두고 간 사료가 완전히 비에 젖어 퉁퉁 불어 있다. 다 꺼내 버린다. 나무들 아래 뿌려준다.

주변을 돌아보니 인적이 하나도 없다. 날이 더운 요즘은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시원한 이곳을 제법 찾는다. 주변보다 지대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휴무라 비상등만 켜진 레스토랑의 모습이 너무 적막강산이다. 물살에 쓸리지 않으려 조심조심 길을 내려온다. 좀 서두른다.

신호대기 앞에 서서 보니 이곳도 비교적 지대가 높아서인지 도로는 물이 많이 흘러도 고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로에 흐르는 물의 양이 장난 아니다. 차량의 전조등이 제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 이런 날은 사고도 많이 난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나를 못 보는 건 아니겠지 걱정을 하며 박물관 앞 도로를 건넌다. 비는 여전히 장난 아니게 내린다. 돌아오며 주차창 정산소 근처 고등어가 밥을 다 먹었나 살펴보니 거의 다 먹은 모양이다. 그 사이 빗물이 빈 밥그릇에 가득 차 있다.

집에 오니 현관 입구에 수건이 놓여 있다. 우산을 썼어도 머리까지 흠뻑 다 젖었다. 요즘은 세탁기를 거의 매일 돌려야 한다. 건조도 잘 되지 않는데...

화요일. 80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고 여기저기 난리라는 뉴스로 떠들썩하다. 차량이 얼마나 많이 물에 잠겼는지 모른단다. 지하철도 멈췄다는 소리를 들으며 일찍 집을 나섰다. 분명 소강상태처럼 보인 빗발이 조금 잦아든 것 같았는데...

하지만 비는 나와 냥이들을 편하게 해 주지 않는 모양이다. 다른 냥이들 밥을 주고 서둘러 아롱이에게 갔다. 나를 보고 삐끔 나오던 아롱이는 빗발이 거세지자 안전한 구멍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다. 비가 긋기를 잠시 기다렸다. 오늘은 아롱이 밥을 주는 소 수레에도 사람이 대피해 있다.

아롱이가 대피해 있는 구멍은 안전한지 생각해 본다. 녀석도 은토끼님이 마련해 주신 집이 근처에 있다. 들어가지 않는 게 문제지. 너도 참 고생을 사서 한다 싶지만 그게 녀석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어쩔 수 없다. 비가 와서 사진을 찍기도 만만치 않은 날이다. 하지만 다친 발보다 공원 냥이들 걱정을 하실 은토끼님에게 보내드리기 위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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