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주변에 사는 삼색이 때문에 은토끼님과 잠깐 통화할 일이 생겼다. 다리를 다쳐 집에서 요양하는 분에게 자꾸 전화를 드리는 게 신경 쓰여 웬만하면 우리가 돌보는 냥이들 문제는 내 선에서 처리한다. 하지만 박물관 직원 한 분이 돌보는 삼색이 상태가 심각해 보여 연락처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통화 끝에 고등어가 영 살이 안 붙는다고 걱정을 했다. 분명히 젖을 먹이는 시기가 지나 새끼들이 직접 먹이를 먹는데도 갈수록 뼈만 앙상해 보인다고 한 것이다. 중성화를 시키려면 몸무게와 체력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한다. 먹이를 넉넉히 주고 있는 데도 걱정스럽다는 일종의 하소연이었다.
아롱이도 새끼들 기를 때는 고등어랑 비슷하게 행동했다. 새끼들이 먹는 옆에서 요조숙녀처럼 앉아 있다 다 먹고 물러나야만 그때서야 밥에 입을 가져갔다. 애가 타서 따로 밥그릇을 마련해 들이밀어도 소용없었다. 새끼가 다가오면 바로 물러섰다. 저도 애긴데 뭘 안다고 그리 새끼들을 챙기는지???
은토끼님과 같은 냥이들을 돌보다 보니 어쩌다 녀석들 뒷담 비슷한 이야기도 주고받게 된다.
은토끼님이
"그 녀석은요. 제가 밥을 줄 때마다 하악질을 안 한 적이 없어요. 어제 안 왔다고 신경질~. 밥 늦게 준다고 신경질~. 오늘 왜 늦었냐고 신경질! 아주 장난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폭소가 터지려는 걸 참았다. 사실은 이렇게 묻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하악질을 하며 신경질을 내는 녀석에게 밥은 왜 꼬박꼬박 주시는 거예요?"
나나 은토끼님이나 고등어(이름을 안 지어 그렇게 부른다)에게 당하는 건 같은 데도 일부러 녀석이 잘 먹는 먹이를 수시로 가져다 먹이는 이유는? 아마 같은 걸 보아서일 것이다. 녀석은 아롱이의 두 번째 새끼 셋 중 한 마리다. 작은 아들이 입양한 나리와 동복이다.
고등어는 작년 3월에 태어나 올해 5월 새끼 두 마리를 낳아(?) 기르는 중이다. 밥 줄 때마다 하악질을 하고 험상궂게 굴어도 녀석의 행동은 기특하기 짝이 없다.
나는 아롱이를 만나면서 고양이가 이기적이라거나 영물이라 가까이하면 안 된다는 말을 더 이상 믿지도 듣지도 않는다. 하는 행동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는 때가 많아서다.
고등어는 어떤가? 새끼들을 안전한 곳에서 낳아 지키기 위해 들인 녀석의 노력은 한 마디로 눈물겨웠다. 고등어는 박물관 하늘 공원으로 올라가는 수로 구멍 어딘가에 새끼들을 낳았다. 몇 마리인지는 모르겠다. 지금 두 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3개월이 지나가는 데도 녀석은 아직 혼자만 나온다. 밥을 주러 가 보면 쫒아나와 얼마나 야옹거리는지 모른다. 일단 닭가슴살을 주면 바로 물고 새끼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내 주먹의 반만 한 새끼의 머리가 나무 사이로 나오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바로 숨어버린다. 어미 고양이의 교육이 얼마나 철저한지 아직 새끼들과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중성화 시기를 자꾸 놓쳤다.
무엇보다 자기의 배고픔을 참고 일단 새끼들부터 챙기는 모성애에 나도 모르게 놀라 얼른 먹이를 놓고 자리를 뜬다. 그래야 새끼들이 나와 마음 놓고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고등어의 행동이 내 눈에만 보인 것은 아닐 것이다. 태어난 지 겨우 일 년 지나가는데 도대체 뭘 안다고 자식들에게 그렇게 지극정성일까?
얼마 전이다. 저녁 주는 시간이 늦어졌다. 박물관 건널목을 부지런히 건너다보니 밥을 기다리다 포기하고 둥지로 돌아가는 고등어의 모습이 보였다. 꼬리를 늘이고 가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달려갔다. 새끼들 젖을 먹여야 하는데 싶어서였다.
“고등어야!”.
녀석은 그걸 자기 이름으로 아는지 휙 돌아섰다. 물론 반가움의 하악질도 잊지 않았다. 저녁을 기다리다 지쳐 터덜터덜 돌아가는 모습이 어찌나 짠하던지. 나도 모르게 고등어 마음에 감정이입이 된 모양이었다.
“많이 먹어. 할퀴지는 말고.”
나도 모르게 부드러운 말이 입에서 나왔다.
최근에 덩치 큰 냥이들이 박물관 주변에 자꾸 꼬이는 게 보여 서둘러 녀석을 포획했다. 먹이를 주면 그걸 물고 부지런히 새끼들에게 달려가던 녀석이 얼마나 걱정할까 싶었다. 먹이를 삼키지 않고 문 채 새끼들에게 돌아가려다 포획된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랑이의 경우로 내가 경험한 게 있다. 고등어의 목덜미도 얼마 전부터 물어 뜯긴 흔적이 생겼다. 사랑이는 심지어 한쪽 귀의 절반 가까이가 잘려나갔다.
사랑이는 중성화를 시킨 뒤 제 엄마 아롱이 옆으로 데려다줬다. 사랑이는 5월부터 제 엄마 옆에 붙어 같이 지낸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이제 겨울이 와도 우리는 아롱이 걱정을 덜 수 있다. 고양이 집에 들어가 자지 않아도 서로의 체온을 의지해 힘든 밤을 보낼 의지할 사랑이가 있으니 말이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고등어 녀석의 자식 사랑이 정말 대단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저녁을 먹자마자 부지런히 냥이들 먹이 봉지를 들고나가는 내 뒤에서
“앞으로 밥 얻어먹으려면 집으로 오라고 그래~”
이런 농담을 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고등어 이야기를 듣더니
“그냥 밥 가져다 먹여.”
새끼가 걱정돼 부지런히 되돌아가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는 모양이다. 어린 게 기특하고 짠한 모양이다.
중성화를 위해 동물병원에 간 고등어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이다. 잡혀갔으니 필요한 처치를 다 해 달라고 부탁했다. 추가 비용은 은토끼님이 모두 부담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태풍! 일요일에 돌아와야 하는데 비가 오면 상처가 덧날까 봐 다음 날로 늦춘단다. 하지만 며칠 째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 비가 계속 내리기 때문이다.
" 그 까칠한 성질머리에 잘 견뎌야 할 텐데. 무엇보다 새끼들 걱정이 장난 아닐 텐데."
내리는 비 때문에 새끼들 밥을 여기저기 두고 돌아서면서도 마음이 쓰인다. 비가 오지 않으면 멀리서라도 새끼들 모습이 슬쩍 보이는데 어제 오늘은 비바람이 장난 아니니.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이지 비가 장난아니게 내리는 데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고등어가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새끼들과 알콩달콩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기를 나도 모르게 기원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