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뒤 남은 과제

by 권영순

신새벽. 집을 나섰다.

시간은 3시 50분. 울산 호계 매곡리로 성묘를 가기 위해 출발. 몇 년 전부터 우리 집 연중 행사다. 고속도로 주변 풍경은 먹물 빛 가득한 수묵화. 경기와 충청도를 지나 경상도에 들어서니 동쪽으로 기막힌 일출이 연출된다. 산색이 먹빛 수묵화에서 채색이 밝은 주홍색으로 서서히 밝아진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다. 그 순간. 이 나이 되도록 명절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도 잠시 마음이 넉넉해졌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송파. 울산 호계 매곡리에 있는 시부모님 산소까지 휴게소를 두 번 들렀는데도 4시간 만에 도착. 서둘러 산행을 겸한 성묘를 마치고 주차한 매곡재 정상으로 돌아온 시간은 9시 30분경. 시부모님의 산소 주변 잡풀과 나뭇가지 일부를 정리하고 서둘러 돌아선 결과다. 마치 미션을 완수하듯.

매곡재 주변은 차례를 지내고 성묘 온 차량들로 추석 당일 개방한 임도 곳곳이 붐비고 있었다. 차량 한 대 오가기 힘든 곳인 데다 여기저기 주차된 차들로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는 모양새. 태풍 힌남노가 지나가며 매곡리에는 무려 300밀리의 비가 내렸다더니 임도 곳곳에 물웅덩이가 움푹 패여 있었다.

울산 호계 산업단지에서 정자해변 쪽으로 가는 큰 도로까지 가기 위해 제법 산길을 들어온 우리로서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다행히 이리저리 양보도 하고 이해도 구하며 무사히 돌아 나왔다.

신새벽 400킬로를 달려와 성묘만 하고 돌아가기에는 아쉬웠다. 정자해변에서 아침 겸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거의 일방적인 내 의견이었다. 물론 서울로 돌아갈 길이 까마득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는 보고 가야 하지 않을까? 아주 잠시라도.

정자 바다가 보이는 해변 카페라 샌드위치와 커피 주문에도 대기만 30분 가량. 운전에 각종 심부름까지 작은 아들에게 맡기고 잠시 모래 사장을 걸었다. 10여분이나 되었을까?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지도 못하고 차를 탈 정도로 마음이 급해졌다.

집으로 돌아갈 고속도로 상황은 실시간으로 악화! 서울로 돌아갈 거리는 줄어드는 데 도착예상 시간은 늘어나는 이상한 일이 귀경길 내내 계속되었다. 돌아올 때 걸린 시간은 11시간. 15시간을 차 안에 앉아 있어서인지 공황장애가 올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푸념 섞어 다음부터는 김씨들만 다녀오라고 한 마디했다. 두 시간도 안 돼 서둘러 돌아서야 하는 성묘를 위해 15시간을 막히는 차 안에서 견뎌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건 나뿐인가?

‘엄마 살아 계실 때 자주 오고 제사때는 안 올 거야.’

나는 엄마 생전에 그런 말을 대놓고 했었다. 살아 계실 때 자주 찾아뵙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다.

새벽부터 차에 앉아 울산을 오간 일 외에는 한 게 없는데 완전 기진맥진. 저녁을 시켜먹고

‘공원 냥이들에게 나가 봐야 하는 데??? 명절이라고 공원에 사람들이 넘쳐 힘들었을텐데. 밥주러는 안 오고?? ' 싶었다.

하지만 어둠을 뚫고 냥이들을 부르러 다닐 기운이 없어 결국 포기. 내일 아침 일찍 나가 봐야지 하고 누워 고단한 하루를 마쳤다.

부모님이 계신 천안공원묘원 . 추석 다음 주라서 붐비지는 않았다.

추석 일주일 후 토요일.

천안 공원묘원에 계신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하러 갔다. 어느 순간부터 손자녀들까지 줄줄이 성묘를 다니던 풍속은 한풀 꺽인 느낌이다.

오남매 중 미리 성묘를 다녀온 셋째를 빼고 화성 청요리에 모여 차량 한 대로 출발. 추석 당일만큼 도로 사정이 나쁘지는 않았다. 우리는 일년에 4번 부모님 기일과 추석 설날에 날짜를 정해 만나기로 약속했다.

성묘를 마치고 천안공원묘원 게이트 하우스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청요리로 돌아온 시간은 5시. 집 도착 시간은 7시. 역시 저녁은 배달 음식으로 때웠다. 오늘은 은토끼님이 출근한 날이라 공원 냥이들 걱정은 접을 수 있었다.

아직 문중 산소로 이장하지 못한 묘에서 벌초를 하는 막내와 아들 태경

부모님 산소까지 다녀오자 명절을 드디어 마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보다는 낫지만 천안까지 나름 먼 거리를 이동했다 와서 피곤한데도 잡념이 끊임없이 생긴다.

명절의 의미.

여기저기 헤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 서로 안부와 근황을 주고 받으며 가족의 의미를 새기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날. 그렇게 배우고 오래 실천했다.

시어머님이 살아계실 때는 명절 전쟁을 당연히 치루었다. 서울에서 부산과 울산 심지어 경주에 계시던 시누이까지 찾아 먼 거리를 오갔다.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명절은 내게 비용은 비용대로 몸은 몸대로 고단한 고행길이었다. 길게 늘어선 명절 교통 체증을 보면 우리만 그런 게 아닐 터. 언제부터 이렇게 고향 오가는 길이 고생은 둘째치고 의무 아닌 의무가 되었을까. 세상의 변화는 갈수록 속도가 붙어 초고속인데.

시간이 천천히 흐르던 과거 풍속을 미풍양속이라며 자식들에게 대물림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부모님의 3년상이 끝나 5대조의 신주를 모셔다 산소 앞에 묻어 드리라고 큰오빠가 막내에게 보자기를 내밀었다. 부모님의 위패도 들었단다. 신주와 위패. 동양철학을 전공해 제례 의식에 명확한 기준을 가진 큰오빠에게 이런 행사가 꼭 필요한지 묻고 싶었다. 세상의 변화에 맞게 명절 풍속에도 변화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한때는 전국의 산이 무덤으로 덮이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30년 한 세대가 지나가니 산을 뒤덮을 기세였던 무덤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문중 납골당을 만들어서가 아닐까? 이런 추정이다.

내 기억에는 대략 10년 전만 해도 떼로 몰려다니며 벌초를 했다. 조상 묘소 벌초 인원이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갈수록 벌초하러 모여드는 문중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돌아가신지 오래된 조상의 무덤들을 정리해 한 자리에 모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은 문중 모임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제 문중 벌초를 위해 모이는 인원에 젊은이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 건 어느 한 집안의 문제만은 아니다. 갈수록 문중 벌초에 참여하는 인원은 줄어들고 연령대는 높아지고.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의식도 분명 바뀌는 모양새다.

이제 벌초와 성묘 문화도 우리 세대에서 정리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자식들에게 대물림해 봐야 유지가 어려울 게 분명하니 말이다. 솔직히 관리해야 할 산소를 거주지 주변도 아니고 원거리에 남겨 두는 건 자식들에게 과한 부담이 맞다.


추석 전. 성균관에서 명절에 전을 부치는 게 예법에 맞지 않는다는 발표가 있었다. 전을 부쳐야 할 며느리들 대부분이 가사와 육아 외에도 자기 일을 가졌다. 세월은 여자들을 가정에 묶어두지 않는다. 안 그래도 바쁘고 힘들게 사는데. 명절 스트레스까지 얹어주는 건 잘못이다. 더 일찍 이런 발표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했다. 가족 내에서 불필요한 노동과 의례는 줄여야 한다. 피곤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들도 당당하게 명절을 즐길 분위기를 사회가 먼저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그리고,

나는 말하기에 어디 가서 서러울 일 없는 국어교사로 30년이 넘게 살았다. 하지만 부모님 산소를 문중 납골당으로 옮기자는 내 의견을 남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망설여진다. 남편을 설득하는 게 가능은 한 건지 눈치를 보다 이번 명절에도 말을 못 꺼내고 그냥 과제로 남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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