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책을 소개받다

-<책들의 부엌>에서 소개 받은 책

by 권영순

<책들의 부엌>을 읽었다. 지난 여름부터 무려 12번이나 진행하는 인근 도서관 주최 역사 강좌를 들으러 갔다 신간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다. 소양리라는 풍광 좋고 한적한 공간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그린 책이었다.

책이 있는 쉼터. 그곳은 갑자기 닥친 삶의 어려움이나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터닝 지점에 서게 된 사람들이 찾아든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남들에게 말하기 힘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 나는 누구나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잠시 쉼표가 필요할 때 재충전하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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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처럼 조마조마하거나 사색을 해가며 읽어야 하는 책들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 책을 고르는 내 기준은 명확하다. 너무 불행으로 점철되었거나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다룬 책은 피하고 싶다. 얼마 전 읽은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은 나를 내내 힘들게 했다.

나를 포함해 지구에서 저지르는 인간들의 만행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환경론자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미 10년도 더 전에 노르웨이에서 목격한 빙하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이 책은 지구의 당면한 문제 즉 수없이 많은 생물종의 멸종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우주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하나 하나는 얼마나 작은가? 그런 존재들이 지구에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가?

무엇보다 이 작품은 지구에서 무한대의 우주로 시야를 넓힐 수 있어 참신했다. 하지만 완독에 무려 2주나 걸렸다. 분명 가독성이 좋은 책이었는데 왜 그렇게 읽기가 힘들었을까? 처음부터 비극이 예고된 느낌이 강해 끝까지 나를 난독증에 걸린 사람처럼 되돌아가 불행의 원인을 찾게 만들어서였다. 기본적인 인과 관계 파악에도 시간이 걸렸다.

이 책 읽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가 더 있다. 아마 내 주변의 상황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읽을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진 이유는 치료약도 없는 불치병으로 나날이 건강이 나빠져가는 절친 때문일 것이다. 친구를 보러 다녀올 때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는다. 그래서인지 손에 잡히는 책만큼은 하다 못해 마음의 온기를 충족시켜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행히 <책들의 부엌>은 다 읽고 나서도 마음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중간중간 언급된 책들 중 읽지 못한 것을 찾아 보게 만들었다. 마음의 온기 게이지가 추락하듯 내려가던 사람들을 돕는 역할을 하는 책들이라니 작금 내 상황에 딱이기도 했다.

무라야마 사키의 <오후도 서점 이야기>의 후속 편인 <별을 잇는 손>, 메이브 빈치의 <그 겨울의 일주일>,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을 나는 이 책에서 소개받았다.

스케일이 장대한 이야기들은 아니다. 무슨 엄청난 사건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이 큰 갈등없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책을의 부엌>을 먼저 읽어 <그 겨울의 일주일>의 이야기 구조와 소재 아이디어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두 권다 장점이 있다. 다 읽고 난 뒤에 마음이 푹 가라앉거나 책 속 인물들의 비극에 매몰되어 한 동안 허우적거릴 일은 없다는 점이다.

며칠 전 젊고 어여쁜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둘 다 책을 좋아한다. 내성적인 성향이라 어렸을 때부터 책이 친구였다는 말을 주고 받은 적이 여러번이다. 그날 무슨 이야기 끝에 프레데릭 베크만의 <불안한 사람들>의 내용 일부를 내가 인용했다. 잠시 일을 쉬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살짝 겪고 있다는 말을 듣고 어려울 때는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며 <불안한 사람들>에서 읽은 한 장면을 이야기한 것이다.

한 마을에서 같은 경찰서에 경찰로 근무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였다. 인질극을 벌이는 아파트에 폭탄이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진입을 누가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다툰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가 널 들여보내면 죽은 네 엄마를 나를 죽이려 들 거다.' 그랬더니 아들이

'아버지를 들여보내면 엄마가 저를 죽이려 들 거에요.' 라고 한다.

그 때 아버지의 말이다.

'너는 엄마잖니?'

읽은 지 오래 전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은 단기 기억이 걱정스러울 정도라 책 제목을 내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순간 헷갈려 우물거릴 때였다.

'저도 그 책 읽었어요.'하시며 손뼉을 다 치셨다.

'어쩜, 왜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지 궁금했는데 책 취향까지 비슷해서인가?' 하셨다.

맞는 말일 수 있다. 요즘은 정치 성향이 다르면 같은 이야기도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 어디 가서 마음 편히 대화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얼마나 다행인가? <오베라는 남자>를 읽고 반해서 베크만의 신간이 나오면 다 구입하신다니...

대단한 사상이나 철학을 배우는 것은 아니어도 그 책에 담긴 이야기가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면 읽을 가치는 넘친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을 읽었을 때 엄마는 자식이 무슨 잘못을 해도 결국 다 용서하게 된다는 건 결국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구나 싶었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게 새겨진다. 어떤 엄마도 자식이 잘못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 마음이 아프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베크만의 책에는 이런 동서양을 막론하고 흐르는 인류애가 듬뿍 들었다. 스웨덴 사람들의 이야기라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지혜가 마음을 울려 그 장면이 오래 남는다.

나는 언제나 그런 글을 쓸 수 있을지 부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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