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고양이 급식

by 권영순

3일간 비가 내렸다. 가을비다. 태풍도 아닌데.

토요일 저녁부터 비가 내려 공원 냥이들 급식할 일이 걱정되었다. 일요일 오후. 오래간만에 양평을 갔다 돌아오는 데 차가 많이 밀렸다. 빗방울까지 떨어졌다. 금방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냥이들이 비 내리는 늦저녁에 과연 나올까 싶었다. 기우였다. 부르기도 전에 발소리만 듣고도 나왔다. 기다린 티가 역력했다.

오전에 공원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은 많이 빠져 있었다. 아롱이와 사랑이 고등어 새끼들까지 모두 밥을 주고 돌아섰다. 옷만이 아니라 운동화까지 비로 모두 젖어버렸다. 하지만 마음은 넉넉해졌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배를 든든히 채워 줬으니 긴 밤 보내기가 수월할 터. 낮의 길이가 짧아진 만큼 밤이 길어졌지만 그것도 거뜬히 견딜 것이다.

연휴라 비가 와도 공원이 붐빌지도 모르니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밤새 처적처적 내리던 것도 부족해 다음 날 오전에도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가 좀 그으면 나서려고 급식이 든 봉투를 들고 자꾸 베란다를 오갔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제 옷을 다 버렸는데 오늘도 마찬가지가 될 것 같다. 남편 말대로 우비를 하나 마련해야 하나? 하지만 여름도 다 지나갔는데 굳이 필요할까 싶다.

신발을 꺼내며 그냥 빗속을 나선다. 비가 그치기를 내가 기다리기 힘들다. 비가 온다고 냥이들 배가 안 고프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나저제나 급식을 기다릴 녀석들 얼굴이 떠올라 옷이나 운동화를 모두 버릴 각오를 하고 집을 나선다.

비가 제법 세차게 내려 걱정을 하며 일단 미술관 주차장 근처로 갔다. 귀요미를 부르며 두리번 대는데 억새숲 사이에서 까만 머리가 나온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비가 오는 데도 밥을 먹으러 나와 줘서 너무 고맙다. 귀요미의 주식인 닭가슴살을 넉넉히 그릇에 챙겨주니 얼른 물어간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귀요미 먹이에 달려들 다롱이가 안 보인다.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끈질기게 자기 먹이를 챙기는 다롱이다. 비가 오면 들어가 있는 피에로 조각품에서도 기척이 없다. 웬일인가 싶어 두리번거리며 불러도 없다.

억새 수풀 속에서 비를 피하다 고개를 비쭉 내미는 귀요미

일단 박물관 위 하늘공원으로 아롱이와 사랑이를 찾으러 가며 주차장 주변과 수로에 있는 급식소에 건사료를 채운다. 빗물이 가득한 물통을 버리고 닦은 다음 물을 갈아준다. 건사료 통이 거의 비어있다. 지난밤 어떤 고양이의 고픈 배를 채워 줬을 게 분명하다. 이즈음 그곳에 치즈 냥이 한 마리와 구내염 걸린 턱시도 녀석이 자주 들른다.

제법 경사진 하늘공원을 조금 헉헉거리며 올라가며 아롱이와 사랑이를 부른다. 어제 오후에는 박물관 돌담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있어 안쓰러웠다.

비 오는 날 이 돌담에 기대 비를 피하며 나를 기다리던 모녀 아롱이와 사랑이.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어느 곳 길냥이가 마음 편히 쉴 장소가 있으랴? 그래도 마음이 짠한 건 어쩔 수 없다. 가능하면 제시간에 급식을 하러 와 주는 사람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전날, 밤이 깊어질수록 빗소리가 거세졌었다. 모녀가 어디에서 비를 피할지 자꾸 걱정이 되었다. 비가 세차게 내려도 서둘러 집을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아롱이와 사랑이는 은토끼님이 가져다 둔 집에서 뛰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어이구 다행이다.' 싶었다. 비를 피하는 것만이 아니라 겨울을 나기에도 덜 걱정스러울 것 같아서다. 어떤 녀석이 빼앗지만 않는다면이란 단서가 붙어 그렇지.

지난주 귀요미를 위해 준비해 둔 집을 어떤 못된 인간이 발로 밟아 부숴 근처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렸다. 건사료 통과 물그릇, 그곳에 두었던 사료통까지 모두 사라졌다. 귀요미가 견뎌야할 겨울이 걱정된다. 비 오는 날 급식을 위해 마련한 덮개는 쓰레기통에 아직 남아 있어 되찾아왔다. 그 덮개를 가져다 이 집 위에 덮어주는 건 어떨까 싶다.

여름 내 안 들어가더니 비가 와서인지 모녀가 집에 들어가 있다 나온다. 모녀를 위해 은토끼님이 장만해 주신 집이다.

하늘공원을 내려와 고등어와 고등어 새끼 두 마리를 찾으러 박물관 주변을 다닌다. 고등어를 제 엄마 아롱이에게 데려다줘야 하나 걱정이 된다. 봄부터 여름까지 셋 다 중성화를 마쳤다. 고등어도 사랑이처럼 제 엄마 옆에서 서로 의지하며 겨울을 보내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 닥쳐올 추위를 생각하면 셋이 온기를 나누며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내 맘이 아니라 고양이들 마음이니.

아롱이는 보통 영리한 녀석이 아니다. 공원 살이만도 벌써 5년이 되어간다. 박물관 주변의 지리는 물론 사람을 알아보는 것도 보통이 넘는다. 발소리만 듣고도 어디선가 스르르 나와 주변을 맴돈다.

중성화되어 돌아온 뒤 새끼들을 독립시키고 혼자 박물관 환풍기 아래서 비를 피하는 고등어

분명 인근에서 지내니 서로의 사정이나 소식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고등어는 새끼들과 떨어져 요즘 이 환풍기 아래서 나온다. 그곳은 세찬 비도 피할 정도로 보였다. 얼른 밥을 주고 녀석 새끼들을 찾으러 돌아선다. 비가 와 조심하면서도 자꾸 서두르게 된다. 목적이 있는 걸음은 빨라질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새끼들은 주차장 주변 환풍기 속에서 나온다.

고등어 새끼. 두 마리 모두 아주 귀엽게 생겼다. 아직 사람을 경계한다.
비 오는 날 침대에서 종일 꿀잠을 자는 까미
공원에 남은 사랑이와 고등어가 입양된 나리에 비해 삶의 질이 떨어지나 가끔 궁금해진다.

가끔 입양된 까미나 나리를 보면 공원과 집 어느 곳에 사는 게 정말 행복한 건지 궁금해진다. 비 오는 날이면 까미는 침대에 둔 쿠션에서 종일 잠을 잔다.

이리저리 바쁜 작은 아들 덕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나리는 얼마나 심심할까. 삶에는 다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까미나 나리의 위험이 덜한 안정적인 삶과 공원 냥이들의 삶. 자유와 위험성 두 가지를 놓고 인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게 맞는 건지 나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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