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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Jan 28. 2023

추워도 너무 추웠다

 설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전날 오후부터 바람의 기세가 걱정스러웠다. 밤부터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진다고는 했지만 우리나라는 기상 예보가 어려운 한반도라니 솔직히 빗나갔으면 했다.

한파 경보가 내린 날 스크래처 안에서 햇살을 즐기는 까미
바람이 거세게 부는 데도 나와서 밥을 먹는 귀요미. 그런 추위에도 두 번 다 나와 줘서 고마웠다

 명절 3일 차만 해도 공원 냥이들 밥을 주러 다니는데 무리가 없었다. 밤부터 기온이 심하게 떨어진다는 예보가 있어 냥이들을 찾아 밥을 충분히 먹였다. 심지어 밥을 먹고 비켜나면 밥그릇을 들고 따라다녔다. 더 먹으라고. 

 배가 부르면 추위에도 너끈히 견딜 거라 생각해서였다. 밥을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나지 않았더니 그런대로 다 비웠다.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는 느낌이었지만 기온은 아직 영상! 잘 먹는 걸 위주로 이것저것 먹였다. 먹이를 더 챙겨 겨울집에 핫팩과 함께 넣어두고 오늘 밤은 추우니 꼭 거기 들어가 자라는 잔소리도 잊지 않았다.

 설마 추우면 얼마나 추우랴? 여기가 시베리아도 아닌데. 중국 어디는 영하 51도라던데. 거기 사람들이 살아남기는 할 수 있는 걸까?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영하 17도. 정말 영하 17도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람. 작년 12월도 춥기는 했으나 심각하게 느끼지 않았었다. 오전 11시 정도면 어찌어찌 영상으로 올라가 그런대로 밥을 주러 다닐 만했기 때문이다. 손이 좀 곱을 정도였지만 두툼한 패딩 속에 핫팩까지 넣어 별 문제가 없었다. 냥이들이 있는 곳을 다니다 보면 모자를 뒤집어 쓴 머리에 땀이 살짝 맺혔다. 한파가 힘들었다 해도 '그 정도면 뭐~ 나갈 만 하지.'였다.

 명절 4일 차. 제주는 강풍과 폭설로 비행기와 선박이 전혀 뜰 수 없다는 뉴스가 계속 나왔다. 한파 관련 안내 문자도 여기저기서 왔다. 

 오전 11시. 영하 17도에서 조금이라도 올라가기를 기다렸다. 최고 온도가 영하 13도??? 할 수 없이 집을 나섰다. 온수를 담은 물병을 두 개 준비하고 남편에게 차를 태워다 달라고 했다. 코앞이 공원이어도 어쩔 수 없었다. 박물관 주차장에 주차하고 베이스캠프로 써야 했다. 다행히 명절에는 공원 내 주차 요금이 공짜다. 차에 여분 상자 하나를 가지고 나갔다. 요즘 억하심정을 가진 누군가가 귀요미 자리에 깔고 앉으라고 가져다 둔 종이상자 등을 알뜰히 챙겨 버리기 때문이다. 정말 할 일도 더럽게 없다. 쓰레기 처리나 잘 하지~.

 박물관 뒤에 있는 수로 주변으로 가 일단 아롱이와 고등어를 불러봤다. 날이 아무리 추워도 햇살이 있으면 덜 춥게 느껴진다. 며칠 날이 포근해서 지난번 내렸던 눈이 녹아 길이 미끄럽지는 않았다.

  항상 여분 건사료를 두는 곳에 들렀다. 역시 그 누군가가 건사료를 다 해치우고 물도 먹은 티가 난다. 추운 날 어떤 냥이의 배를 채웠으면 좋다 싶어 얼음 된 물을 갈아주고 빈통에 건사료를 채웠다.

박물관 뒤에 놓아둔 밥그릇은 매일 텅 비어 있다. 매일 채워둔다.

 박물관 옆에 사는 삼색이에게도 들렀다. 날이 추워서인지 집에 있다 놀라 뛰쳐나온다. 녀석에게 나는 낯선 사람이다. 얼음으로 변한 물을 버리고 다시 채웠다. 집 안에 캔도 하나 넣어주고 얼른 돌아섰다.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녀석이 안타까우면서도 부러웠다. 우리 아롱이 사랑이도 저렇게 집에 들어가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다. 그놈의 수로 구멍 말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박물관 후면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면 그 끝이 하늘공원으로 이어져 있다.

 하늘공원 오르막 끝자락 레스토랑 주변 구멍 어디에서 아롱이와 사랑이가 겨울을 난다.

 지난여름은 일부러 산책 삼아 저녁에 나가 소수레에서 아롱이 사랑이와 놀다 오고는 했다. 지대가 높아 전망도 좋고 바람도 시원해서였다. 그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레스토랑 주변으로 가 둘을 불렀다. 전날처럼 햇살이 좋은 영상의 날씨라면 레스토랑 창유리 근처로 나와 햇살을 쪼이곤 했는데. 바람이 거세니 아예 나오지 못하는 모양이다.

 햇살이 있어도 바람 소리에 구멍에서 내가 부르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혹시 설치해 둔 집에서 잤나 싶어 집으로 가 봤다. 핫팩을 두 개 넣어뒀는 데도 여분 밥은 꽁꽁 얼어붙어 있는 걸 보니 지난밤 여기서 자지 않은 모양이다. 다시 부르니 그제야 구멍에서 뛰어나온다.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모자 속에 있던 머리카락이 날린다. 앞이 잘 안 보여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데 그 사이 머리에 고드름이 열려 있다. 마스크 사이로 올라간 입김 때문인가? 하긴 마스크 속조차 살얼음이 되어 얼굴이 따가우니 말해 무엇하랴. 손과 얼굴에 동상이 생길까 슬쩍 걱정이 된다.  

아롱이와 사랑이 모녀의 한파 경보가 내린 날 오전
모녀의 오후 급식. 둘의 털이 휘날릴 정도로 바람이 세찼다
명절 3일 차 오후 고등어. 다음날은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다. 운동화 위에 올라와 툭하면 깔고 앉는다. 주로 수로 속 깊숙히 들어가 있다.

아롱이 사랑이 모녀에게 밥을 먹이고 서둘러 박물관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남편에게 짐을 일부 넣어놓고 고등어를 부르러 다녔다.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는다. 박물관 뒤와 수로까지 있을 만한 곳을 여기저기 부르며 다녔다. 핫팩을 넣어둔 녀석의 집에 지난밤 넣어둔 밥은 다 없어졌다. 누가 먹었는지 알 수 없지만. 

 너무 추워 건사료 통을 채우는 데도 손이 얼어붙는 것 같다. 얼음이 된 물통을 비워 물을 채우니 금방 살얼음이 된다.


 귀요미 다롱이 자리로 가야 했다. 미술관 근처 둔덕에 오는 객식구들도 종이 상자 위에 올라 앉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누군가 매일 가져다 둔 것들을 밥그릇과 함께 알뜰히 버린다. 야박하다. 집에서 가져온 상자를 든 손이 추위에 얼어 떨어트릴 것 같다. 정말 춥다.

 상자를 들고 겨우 50미터나 걸었을까? 날이 추우니 상자와 물병 급식 봉투 무게가 장난 아니게 무겁다. 더 종종걸음으로 움직였다. 억새숲 속에 귀요미가 있다 나온다. 핫팩을 패딩 주머니에 넣어 귀요미 주식인 닭가슴살을 덥혔는데 그걸 꺼내 캔과 함께 주니 먹는다. 하지만 추위가 심해선지 금방 먹이가 살얼음이 되는 느낌이다. 다롱이와 가끔 오는 고등어 녀석이 냥냥거리기에 먹을 걸 꺼낸다. 캔 하나를 따는 데도 핫팩에 잠시 손을 녹였다 꺼내야 할 정도다.

 

 오후. 최고 온도가 영하 13도다. 하늘 공원 언덕길은 바람이 거세 소설 <폭풍의 언덕>이나 남해 어디에 있다는 바람의 언덕 느낌이다. 바람이 얼마나 심한지 만만치 않은 내 몸무게에도 비틀거릴 정도였다. 그런데도 모녀는 밥을 먹는다. 나도 모르게 바라보는 시선이 짠하다. 바람을 막아주려고 살짝 움직여 그림자가 달라지니 밥을 먹던 둘이 놀라며 경계를 한다. 잠시 밥 먹는 시간조차 경계를 늦추지 못하니~.


 남편이 자동차 의자에 보온을 켜 놓았다. 그런 장치가 그날만큼 고마운 적이 있었나? 유별나게 따뜻한 곳을 선호하는 녀석들에게 이런 의자를 하나씩 선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더 춥다는데 걱정이 앞을 선다.

설 연휴 뒤 내린 눈 속에서 얼어붙기 전 밥을 먹는 초화지 삼색이. 까만 냥이를 찾아갔더니 이 녀석이 나와 눈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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