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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질 할 거면 나오지 마!

by 권영순

“야! 삼색이 너어~, 밥 먹으러 나와서 꼭꼭 하악질 할 거면 나오질 말던가?”

결국 이 말을 하고야 말았다.

"누가 밥 주는 사람에게 하악질이야?"

여기까지 말하다 이 날은 두 번이나 하악질을 하기에 나도 모르게 서운함을 담아 한 말이다.

아무리 고양이라도 그렇지. 벌써 몇 년째 내게 닭가슴살과 캔을 맡긴 듯이 챙겨가는 녀석인데.


토성 둘레길 잡목 사이에서 나오는 삼색이 녀석은 어느 날 초화 자리에 나타나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아롱이 자리에 나타나 아무리 쫓아내려 해도 끝까지 붙어사는 다롱이 저리 가라 하는 녀석이라 왜인지 익숙한 기시감이 들었었다.


처음에는 녀석을 모른 척했다.

문제는 초화였다. 초화는 힘으로 삼색이에게 밀리는 게 역력했다. 심지어 먹고 있던 밥도 가로채였다. 이미 거둬 먹이는 고양이들이 있는 데다 개체수를 더 늘리지 말라는 가족들의 은근한 압박을 받고 있는 터라 나도 나름 노력은 했다. 하지만 녀석을 쫓아낼 수 없었다. 녀석의 끈기에 진 것이다.

결국 캔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닭가슴살을 챙겨 나갔다. 초화보다 체급이 높아 보여 살짝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녀석에게 닭가슴살을 보여주면 알아서 따라왔다. 고양이들의 지능도 먹이 앞에서는 상당히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멀찌감치 데려가야 초화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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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중행사인 오대산 부연마을을 갔다 돌아오며 양양을 거쳐 설악산 오색령을 넘어왔다.

전날 연중행사인 오대산을 다녀오느라 미리 토성 냥이 두 마리에게 팔로 엑스를 그리며

"나 내일은 밥 주러 못 오니 나오지 마?" 했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이었으니 알아들었겠지 싶어도 마음에 걸렸다. 눈에 밟혔다고나 할까.

공원 냥이들에게 하는 일이 따로 있을 리 없으니 오매불망 나와 기다렸을 터. 먹이를 넉넉히 챙겨 서둘러 공원을 향했다. 날이 좋은 데다 연휴라 공원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까치 두 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나 초화의 닭가슴살을 노린다. 아예 대기하고 있다.

요즘 초화는 내게 말을 건다. 어쩌다 자기를 찾지 못하면 어디선가 보고 있는지 나를 졸졸 따라온다. 말속에는 뭔가 응석이 섞여있다.

'반갑다고 , 네가 밥을 주러 와 줘서 좋다는 뜻인가?'

박물관 뒤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몇 번이나 내 발 앞에서 뒹구는 아롱이

아롱이가 나를 만나면 수시로 뒹구는 것과는 결이 다르지만 반기는 기색이라 나쁘지 않다.

평소에는 용량이 큰 캔 하나와 닭가슴살 1개를 주는데 오대산 부연마을 행으로 하루 걸렀다고 닭가슴살을 한 개 더 토핑처럼 올려놓았다.

이즈음 초화는 삼색이와 다른 장소에서 나온다.

고양이들은 닭가슴살을 주면 덥석 물고 혼자 식사를 즐길 장소로 도망쳤다 다 먹고서야 되돌아온다. 삼색이 녀석도 마찬가지다. 유별나게 닭가슴살을 좋아한다.

하지만 곧 어이없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어디서 까치 두 마리가 순식간에 나타나 토핑으로 얹은 닭가슴살을 그야말로 갈취(?)해 갔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었다. 이해가 가기는 했다. 다 먹고살기 힘드니 어쩔 수 없다지만… 까치나 비둘기들은 공원 고양이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고양이 건사료의 대부분은 까치와 각종 새들이 털어먹는다. 비둘기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고양이 먹이를 주다 보면 비둘기들이 귀찮을 정도로 따라붙는다. 아예 사람 주변을 푸드덕거리며 악착같이 들러붙어 비둘기에게 쫓기는 정도다.

다 먹고살겠다는 건데 까치를 쫓아대기도 우스운 생각이 들어 그냥 돌아섰다. 요즘 초화는 삼색이가 나오는 장소에서 멀어졌다. 초화지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게 다행이다.

먹이 쟁탈을 하는 녀석이 없으니 훨씬 편안한 기색이다. 원래 초화에게만 밥을 주려던 것이니 이제 삼색이에게 그만 가도 되지 않을까?


내가 무슨 고양이 밥 배달하러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초화만 먹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느새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릴 녀석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아들 둘을 한참 기를 때 가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일 중 하나는 자식을 버리는 엄마들 입장이었다. 개개의 사정이 다 남다르니 어쩔 수 없는 경우라고 해도 나라면 정말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식도 아닌데 삼색이 녀석에게 매일 급식을 상납하는 나는 뭐지? 그것도 매일 하악질을 하며 나를 무서워하는데. 설마 하악질이 반가움을 표시하는 건 아닐 텐데.


겨울 지나 봄이 되면 먹이 찾기가 쉬울 테니(초화지 주변에 2,3일에 한 번 와서 건사료를 챙기는 분들이 있다) 그만둬야지 했는데... 그걸 미루다 보니 나에게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하악질 하는 녀석 밥을 끊지 못하고 있다...


녀석이 안 나와주면 나도 미련을 털어낼 수 있을 텐데 왜인지 이 일도 아주 길어질 것 같아 한숨이 나온다.


나오지 말라고 소리는 질렀으나 내가 멀찍이 비켜나자 머리를 박고 먹이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니 내일도 안 와 보기는 힘들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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