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아로도 알았을까? 아로는 평소에 사람을 경계하거나 할퀴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중성화 수술을 위해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그날 아로에게 무슨 예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날은 아무리 애를 써도 아로가 잡히지 않았다. 츄르를 내밀어도 이리저리 피하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츄르를 든 내 앞에 다가오기에 잽싸게 이동장에 잡아넣었다. 그 과정에서 아로는 생전 처음 내 손등에 깊은 상처를 냈다. 상처는 두 달이 지나도 아물지 않더니 흉터로 남았다.
내가 더 놀란 것은 주위에 있던 아미와 다롱이 행동이었다. 다롱이는 아롱이 밥자리에 왔을 때부터 이미 중성화된 상태였다. 모두 유순하다. 사람들에게 적대하는 행동을 처음부터 배우지 못한 냥이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둘이 싫어하는 아로를 왜 이동장에 넣느냐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생전 처음 날 향해 적대감을 표시한 것이다.
그날따라 냥이들 분위기가 아주 기묘했다. 사람을 가까이하며 믿는 모습을 보이던 냥이들이 아니었다. 그런 느낌은 나만 받은 게 아니었다. 아로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함께 가던 은토끼님도 오늘따라 애들이 좀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마음이 찜찜했다. 아로를 데려가면서 아미의 눈을 보며 찬찬히 설명했다. 아로를 수술시켜 일주일 뒤에 데려다줄 테니 아가들 잘 보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우리는 아로를 공원에서 가까운 동물병원에 데려다 중성화 수술을 맡겼다. 아로 수술 후 일주일 정도 처치까지 마치고 돌아오면 아미는 은토끼님이 집으로 데려가시기로 하셨다. 그 사이 아미가 며칠 아가들을 돌보게 했다. 거기까지 아미의 역할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 믿었다.
아로는 동물병원에 가서도 선생님과 간호사들을 할퀴고 거의 난동을 부리며 날뛰었다. 왜 그랬을까? 답은 다음 날 수술 직전에 나왔다. 아로가 새끼를 낳은 건 3월 9일. 중성화를 위해 입원시킨 날은 6월 1일이었다. 최소 두 달은 산후조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기다려 잡은 날이었다. 아로의 안전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이 아로가 다시 새끼를 가졌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수술 직전 선생님은 새끼를 가진 걸 아시고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그 상태에서도 수술을 진행해야 하느냐고. 나는 너무 놀랐다. 그냥 수술을 진행시켜 달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생각할 여유도 없이 단호하게 말한 것이다. 아로가 새끼를 낳는다면 또다시 겪을지도 모르는 일들이 아찔해셔였다.
그리고 수술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으로부터 다시 전화를 받았다. 아로가 깨어나는 시간에 맞춰 보러 가기 위해 막 집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전화 내용은 나를 너무 놀라게 했다. 아로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는 전화였기 때문이다.
저혈량 쇼크! 아로를 병원에 입원시키기 전부터 이상하게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생전 사람을 공격하지 않던 아로가 그렇게 저항할 때 나는 더 아로의 처지를 생각했어야 했다. 아로에게 나는 왜 그렇게 모질게 굴었을까? 태어나 일 년밖에 안 된 고양이에게.
나는 지금도 그 부분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 지금도 고양이를 돌보려는 사람으로 자격 미달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아롱이 이야기를 쓰면서 처음에는 술술 진도가 나갔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막혀버렸다. 결국 해를 넘길 정도로 마음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나를 수시로 괴롭혔다.
'일 년 넘게 매일 밥을 줬으니 너는 내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더 이상 새끼를 낳아 기를 수 없다.'
내가 그 누군가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는 오만함은 어디서 나왔을까? 아로 새끼들의 연이은 죽음의 책임을 아로에게 물었던 것은 아닐까? 도대체 왜 그런 착각을 했을까? 꼬리를 무는 자책 섞인 의문은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말만 공원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자원봉사자였다. 공원에서 살아갈 암컷 고양이의 생태는 물론 아로의 처지를 공감하지 못한 게 맞았다. 공원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면 되지 새끼까지 낳아 우리에게 더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공원도 동물들이 살아가기 쉬운 곳이 아닌 데 나는 왜 아로의 삶을 좌지우지할 자격이 있다고 자만했을까?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아로의 일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남들보다 조금 나은 줄 알았다. 적어도 동물 혐오나 더 저질스러운 괴롭힘 정도는 막으려는 인성은 가졌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동물들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돈을 이 정도로 많이 들여 너한테 밥을 주니 너는 내 결정에 따라와야 한다는 우월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동물에게 베푸는 사람이라는 강자의 자만심에 빠진 사람이었다.
왜 사람들은 큰일이 벌어지고서야 처절하게 반성을 할까? 새끼들의 죽음에 이어 아로까지 그렇게 되자 고양이들 밥을 먹이러 다니는 일도 두려워졌다. 냥이들을 볼 낯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인성의 바닥까지 다 보여준 느낌이 들어 아이들을 피하고 싶었다.
내가 자책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이 은토끼님은 아로에 대한 미안함을 행동으로 옮기셨다. 아로를 동물장에 데려다 직접 보내시겠다며 반차를 내셨다. 병원에서 아로의 사체를 찾아 택시를 타고 마지막 예를 갖추어 외롭지 않게 보내주셨다. 나는 그 자리에 동행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