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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Mar 25. 2022

집안 내력과 채식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식의 복수

          

  친정아버지는 환갑이 되기 전에 혈액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당뇨에 지방간이 있었다. 아버지는 과식하지 않으셨다. 몸무게도 적정 수준 넘긴 적이 없고 술은 일절 하지 못하는 체질인 데다 날씬한 편이었는데 왜 당뇨에 지방간이 있는지 의아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이른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셔야 했는지 이유를 몰랐다.

      

  첫째 큰아버지를 제외하고 둘째, 셋째 큰아버지들도 암으로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아래로 큰고모도 환갑 즈음에 유방암에 걸렸지만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과 항암을 거치고 지금은 아주 건강하시다. 그래서 친가 쪽 사촌 언니들은 보험설계를 아주 복잡 다단 하계 해놓았다고 한다. 모두들 집안 내력에 대한 공포심이 있는 것이다. 나도 막연히 그랬다. 우리 집안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암에 걸리는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고.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공포심이 있었지만 30대까지는 막연했다.      


  마흔이 되어서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건강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어 보고 아버지가 왜 날씬한 체형에 술, 담배를 하지 않는데도 당뇨, 지방간, 암에 걸렸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며 자라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평생을 정제탄수화물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점이 크다. 아버지의 최애 음식은 라면이었다. 라면은 아무리 맛있는 반찬들이 있어도 정기적으로 드셔야 했다. 그리고 시장에서 파는 밀가루로 만든 호떡, 꽈배기, 와플, 찐빵 같은 간식들을 너무 좋아했고, 믹스커피를 회사에서 엄청 마신다고 했다.      


  고속도로 여행을 하게 되면 꼭 사 먹어야만 했던 와플. 휴게소에서 파는 그 와플만 보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생각이 난다는 친지들의 얘기가 있다. 나도 겨울이면 마트 앞에서 장사를 시작하는 호떡, 붕어빵집을 보면 친정아버지가 생각날 정도로 아버지는 호떡을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흰밥과 국이 없으면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 친정엄마는 여름에도 늘 국을 끓이셨다. 어렸을 적부터 들여왔던 식습관인지 반찬을 여러 가지 드시는 것보다 국에 말 아드 시는 걸 더 좋아했다. 당뇨가 있으면서부터 흰쌀밥은 좋지 않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흰밥이어야만 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먹었던 잡곡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와 <어느 채식 의사의 고백>, <건강 불균형>이라는 책들을 보면 암 스위치를 켜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유전인자의 암스 위치를 건드리는 제일 큰 요인은 바로 동물성 식품과 고도로 정제된 탄수화물이다. 현미, 고구마같은 통곡물과 채소, 과일로만 식사를 하면 온갖 암을 비롯한 성인병, 혈관 질병, 호르몬 질병의 스위치를 끌 수 있다고 한다. 책에는 수많은 연구와 논문과 실험자료들을 인용하여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에는 앤젤리나 졸리와 같이 암 유전인자 검사를 통한 절제술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렇게 돈을 많이 쓰는 대신 식단을 바꾸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노력만으로 암 스위치를 끌 수 있다고 세 저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나는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3년간 괴로웠던 두통에서 해방이 되었다. 생리통도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생리 전에는 뾰루지가 나고 알레르기 비염도 갖고 있다. 3킬로 정도 몸무게가 줄었지만 더 이상 빠지지 않는다. 이유는 정제탄수화물을 확실히 끊지 못했으며 과식하고 있어서다. 아직도 백 퍼센트 정제탄수화물로 자유롭지 못하다. 현미와 현미찹쌀로 밥을 짓긴 하지만 간혹 불려두는 것을 잊어서 백미밥을 할 때가 있다. 시판 빵과 봉지과자를 즐겨 먹던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강냉이로 바꾸었고 애써 사 먹진 않지만 여전히 더 맛있는 고도로 정제된 디저트를 보면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다. 이제는 고기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이런 간식들은 먹고 싶다. 이미 중독이 상당한 수준인 것 같다. 먹고 싶은 것을 참으면 폭발하기 때문에 이 음식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거나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모두가 알고 있다. 식단이 문제라는 것을. 건강한 식단이 무엇인지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자연식물식은 잘 먹고 잘 사는 기준이 될 수가 없다고들 생각한다. 기름기 넘치는 단백질 음식과  화려한 디저트야말로 잘 먹고 잘 사는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바꾸고 채식을 실천한다 고해도 자연식물식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맥두걸 박사가 아무리 동물성 음식을 절제하고 탄수화물로 식사를 하라고 해도 고도로 정제된 나쁜 탄수화물 식품인 떡과 빵을 보며 그래도 탄수화물이니 괜찮지 않을까 하고 나자신을 번번히 시험에 들게 한다. 나는 건강한 자연식물식주의자가 되어 집안 내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케이크, 떡, 빵, 과자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고 싶다. 항상 깨어있자.

 

나는 모든 채식주의자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모두 자기 만족도가 강하며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해를 끼치기보다는, 주위 친구들이나 의사들로부터 단백질과 칼슘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고립될 위험도 감수한다. 그들은 매우 부지런하다. 쇼핑할 때도 리스트를 꼼꼼히 살피며, 때로는 불고기 파티의 초대를 정중히 사양하기도 한다. 그들은 배가 고플 때에도 시식용 음식을 지나칠 줄 안다. 거리를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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