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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Apr 11. 2022

게으른 채식주의자의 밥상

게으른 자연식물식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혼자 먹는 점심이라도 채식주의자는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 귀찮음이 폭발하는 날에도 먹는 것에는 신경 써야 한다. 설거지를 줄일 수 있어 한 그릇이나 한 접시에 밥과 반찬을 담아 점심을 먹는다. 역시 나물반찬을 밥 위에 올려 비벼먹는 것이 간편하고 제일 맛이 좋다. 두부와 버섯을 간단히 익혀 올린 덮밥도 간편하다. 두부조림은 아이들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 전날 넌 비건인 나머지 세 식구가 고기반찬을 먹었을 땐 다음날 남은 쌈야채들을 겉절이로 만들어 비빔밥을 한다. 쌈다시마를 먹고 남은 것을 채 썰어 무쳐 비빔밥을 먹고, 생미역을 저녁으로 먹은 날에는 다음날 점심으로 미역 비빔밥을 한다. 국산콩 두부가 요즘 비싸져서 부담스럽긴 해도 정말 귀찮을 때는 두부김치가 최고다. 식사로 먹어도 되고 간식으로도 좋은 고구마. 채식하면서 고구마는 떨어지기가 무섭게 쟁여둔다. 후무스에 당근 스틱은 고구마 다음으로 좋아하는 간식. 태권도 다녀온 큰애도 간식으로 잘 먹었다. 생야채 간식인데도 후무스만 있으면 잘 먹으니 종종 세일하면 사둔다. 한번 대용량으로 만들어보리라.




  뭔가 기분이 산뜻할 땐 식구들을 위한 반찬도 만들고 나만을 위한 메뉴도 만든다. 대형마트 할인기간에 쟁여둔 검정 렌틸콩이 있어서 단백질 폭탄 렌틸콩 카레를 만들었다. 렌틸콩을 미리 삶아두고 양파, 감자, 당근, 주키니 호박, 토마토를 넣고 끓인 후 미리 삶아 불려둔 렌틸콩을 섞어 좀 더 끓여주면 완성되는 고기 없는 카레. 렌틸콩은 그냥 먹는 것보다 카레에 넣어 먹는 것이 제일 먹기 좋은 것 같다. 냉장고에 각종 야채들이 어정쩡하게 남았을 때는 카레나 볶음밥을 만들면 아이들도 잘 먹고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서 좋다. 카레에 고기가 없어도 왜 고기 없냐는 불평 한마디 없이 주는 대로 잘 먹어주는 식구들이 고마웠다. 현미밥에 야채와 콩을 넣은 카레 하나로 대단한 자연식물식 하는 채식주의자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이제 채식 9개월째. 이국적인 향신료 같은 것들 일도 모르고 그냥 늘 먹던 음식재료에서 고기만 빼고 게으른 밥상으로 연명하고 있어도 내 건강은 채식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화장실도 잘 가고, 살도 빠졌고, 두통이 없어졌고, 끔찍했던 생리통이 줄었고, 아침에 전보다 잘 일어난다. 일어나면 항상 머리가 무겁고 화가 나곤 했는데 그런 증상도 없어졌다. 걷기 운동을 병행해서 그런지 체력은 확실히 좋아졌다. 오늘 하루만 2만 보이상을 걸었는데도 아이들 픽업하고 저녁 차리고 자기 전까지 아이들과 놀아도 멀쩡했다. 예전 같으면 만보도 채 못 걷고도 하루 종일 뻗어있으면서 두통에 시달리며 화를 냈을 텐데 많이 발전했다. 음식 하나 바꿨을 뿐인데, 내 몸의 주인이 되었다.  마흔 넘어 제대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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