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눈 밖으로 벗어나면 안 돼!”
“저 위에는 올라가지 마. 위험해!”
“어어!! 뛰지 마! 다쳐!”
놀이터에서 아이를 데리고 놀다 보면 아이가 노는데 쉬지 않고 참견하는 엄마가 있다. 아이와 친구들이 모여 있을 때도 아이가 손해를 보지 않을까 따라다니며 훈수를 두고, 사다리를 올라타려고 하면 위험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킥보드라도 타려 하면 빨리 달리지 말라고, 눈밖을 벗어나지 말라고 계속해서 잔소리를 한다.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잔소리를 하면 아이는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놀지 못한다. 놀이터에서는 아무 목적이 없이 마음껏 놀아야 제맛인데, 엄마가 잔소리를 하고 어릴 때부터 겁을 많이 줬더니 아이가 대근육이 발달하지 못해서인지 그냥 걸어가다가도 잘 넘어지고, 겁이 많아져서 조금만 도전을 느껴도 지레 포기하고 자주 엄마에게로 돌아가고, 엄마를 보고 자주 징징거린다. 4살 인대도 대근육이 발달하지 못해서 자주 넘어지니 엄마는 더욱더 잔소리를 한다. 아이가 상대 아이로 인해서 넘어지거나 아파하는 상황이 오면 안절부절못하고 상대 아이에게 기어코 한소리를 한다.
나는 놀이터에서만큼은 아이에게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어차피 바닥이 고무로 되어있어서 떨어져 다치더라도 크게 걱정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한 번은 다쳐봐야 위험한 것, 해도 되는 것, 자신의 한계 같은 기준도 알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큰애가 어릴 때 맞고 뺏기는 모습을 보며 윽박질러 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후회와 낮은 자존감뿐이었기에 둘째가 놀이터에서 놀 때는 친구와 힘겨루기가 있어도 알아서 해결하도록 되도록 두는 편이다. 올라가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하면 올라가도록 엉덩이를 밀어주고 겁이 나서 타지 못하고 주저하면 타보라고 격려한다. 킥보드를 탈 때도 차량이 다니는 곳이 아니라면 경주도 해보라고 격려한다. 그 엄마는 자신을 안전 예민증이라고 하고 나를 보고 안전불감증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놀이터에서 그렇게 길러서인지 우리 집 아이들은 대근육이 일찍 발달했다. 킥보드와 한 몸이 되어 스피드를 즐기고, 높은 곳에도 안정적으로 잘 올라가며, 뛰어놀 때 잘 다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집에서는 잔소리를 해도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 때 더욱 잔소리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정말 다른 아이들이 발가락, 팔, 다리를 깁스를 하고 얼굴에 상처가 나도 우리 아이들은 잘 다치지 않았다. 원래 우리 집 아들들은 차분한 기질의 아이들이다. 방과 후에 놀이터에서 마음껏 노는 시간 없이 학원을 다니게 했거나, 밖에서 못 놀게 했더라면 우리 집 아이들은 안경 쓰고, 책만 읽는 전형적인 인도어 키즈들이었을 것이다. 놀이터에서 서열 1순위에, 남성호르몬이 넘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놀이터에서 하루 2시간은 무조건 놀았던 덕분인지, 몸도 단단한 편에다, 아무하고 와 잘 어울리고, 그런 모습을 본 엄마들은 우리 집 아이들은 참 활발하다고 하나같이 말을 한다.
사실은 항상 뺏기고 밀리고 치여서 아이도 나도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여리고 예민한 아이여서 상처받을까 봐 다칠까 봐 걱정하고 과보호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 아이가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라 생각하고 믿기로 한 것이다. 믿어주는 만큼 아이는 결국 잘 성장해주었다. 형들과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무릎이 까져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 어떤 놀이 시설을 접해도 겁 없이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저런 상대를 만나도 어설퍼 보이긴 하지만 결국엔 자신의 것을 지켜낼 줄 알고, 서로 어울려 지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도 많이 배웠다. 무섭다고, 안될 것 같다고 지레 포기하지 않고, 잘할 수 있을 거라 격려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어떤 무서워 보이는 놀이기구라도 대범하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몸을 쓰면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 그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다칠 수도 있고, 아플 때도 있겠지만 나는 결국 내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라고.
내 앞에 도전을 두고, 두려워 떨고만 있거나, 할 수 없을 거라 체념하기보다 재미있겠다며 그냥 덤빌 수 있는 자세, 혹은 두렵더라도 나는 괜찮을 거라고 일단 스스로를 믿고 보는 마음가짐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고 안전을 요구하는 환경에서는 좀처럼 갖기 힘들 것이다. 위험해 보이더라도 믿고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믿음직스럽게 자라주었다. 주저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 가짐으로 스스로를 믿으며 무엇이든 대범하게 한번 해내 보고야 마는 태도, 그 태도를 아이와 같이 배운다.
나는 이제껏 늘 신중하려 한다고 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며 고민과 걱정으로 살아왔다. 어쩌다 용기를 냈어도 끝까지 밀고 가는 뚝심도 없었다. 미대를 가지 못했다면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며 돈을 모아서 미술 대학원이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취업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할 것이라 생각하며 포기했다. 일을 대하는 태도 또한 열정을 가지고 파고들기보다 해야 할 일들을 겨우 해낼 뿐이었다. 늘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해하고 책임지는 것이 골치 아프고 성가셔서 안전한 길, 덜 힘든 길을 택했다. 결국 내 마음에게 솔직하게 살지 못했다. 마음이 끌리는 일보다 편하고 안전할 것 같은 일들만을 선택했다. 후회하고 다시 부딪혀 보고자 했지만 역시 나는 안된다면서 체념했다. 현실은 그런 거라 애써 합리화시키며 해야만 할 것 같은 일들만 그럭저럭 해왔을 뿐이다. 어느새 내 앞의 삶을 두고 헛헛해진 이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다.
어영부영 살면서 마음껏 후회해봤기 때문인지 이제는 한번 믿어줄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나를 믿지 못하고 한결같이 부정적인 태도로 살아봤으니, 아이를 키우며 깨닫게 된 이러한 사실들을 생각하며 나도 한번 긍정적으로 대범하게 재밌게 살아보고 싶다. 전업맘이 되어 아이 키우는 시간 동안 돈이 되지 않더라도 마음이 내키는 대로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 무엇이 될지도,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고 당장에 경제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불안하긴 했지만 잘할 거라는 믿음대로 아이들이 잘 커왔듯이 나도 한번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싶다. 고민하고 주저하지 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도 해보고 그 과정을 즐기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실패하거나 실수해도 과정을 즐기며 행복했으니 더 이상 예전처럼 아파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만큼 나도 자란다. 결국 아름답게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한 나도 덩달아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