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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Oct 25. 2022

엄마 10년


  “아이 발에 흙을 묻힐 수 있을 즈음 괜찮아질 거예요.”

황달을 심하게 겪은 후부터 열도 자주 나고 설사가 심한 둘째를 업은 채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고 수술받고 입원한 남편의 병시중도 들며 늘 마음 졸이는 나날을 보냈을 무렵 어느 약국의 약사가 젊은 날의 친정 엄마에게 한 말이었다. 그의 친절한 한마디 말은 기댈 곳 하나 없던 젊은 날의 엄마에게 한 가닥 희망과 위로가 되어주었나 보다. 남편이 수술을 받고 입원했을 때 차가운 병원 바닥에 담요 한 장 깔고 그 위에서 둘째를 돌볼 수밖에 없었던 어려운 환경 탓에 아이가 아픈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천 기저귀를 빨아가며 둘째를 병실에서 돌보던 젊은 나이의 엄마를 생각한다. 누구 하나 의지할 데가 없었던 엄마는 이름 모를 약사가 건넨 그 말 한마디로 그 시간을 버텨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그 말대로 아이가 걷고 뛰기 시작할 무렵부터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고 한다.      


  우리 집 첫째는 편식이 심해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시절 늘 밥을 적게, 느리게 먹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기관에서 밥 먹는 일로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아는지라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마음이 늘 조마조마했다. 기관에 다니며 점점 말라 가는 아이를 보는 것도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10살인 지금 아이는 지금도 싫어하는 반찬이 있긴 하지만 신기하게도 밥을 잘 먹는 아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비만이지도 마르지도 않고 적절한 체격으로 잘 자라주고 있다. 마음이 여려 어디서든 자꾸만 치이는 첫째를 보고 있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아이들 속에서 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첫째를 발견한다. 자기와 맞는 친구들과 어울릴 줄 알게 된 큰애는 그 아이들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놀이를 주도하게 된 것 같다. 자신만의 방식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를 마주하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주말부부의 위기를 겪고서 현재 남편은 이직을 했다. 둘째도 커서 기저귀를 떼고 혼자서도 밥을 잘 먹으니 내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안정되어 기력을 회복할 수가 있게 되었다. 2살, 8살 남자아이들을 혼자 돌봐야 했던 그 시간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혼자 갇혀있는 느낌이었고, 작은 자극에도 마음이 무너졌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건드려져서 자주 눈물이 나던 나를 두고 사촌 언니는 큰애가 초등 저학년이 지나고, 둘째도 손 많이 가고 말귀 못 알아듣는 시기를 지나 5살이 되면, 지금보다 좀 나을 거라고 했었는데, 정말 그 말이 맞았다. 각각 4학년,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여유로워졌다.     


  친정엄마가 어느 약사의 말을 듣고 시간의 힘을 믿고 버텨내었던 것처럼 나도 육아 선배인 사촌언니의 말에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부서질 것만 같았던 느낌이 사라졌다. 온전히 두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안게 되는 고민과 문제는 시간이 약이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처음 만났던 날부터 마주하게 되었던 온갖 위기와 어려움에 맞서서 애썼고, 그래도 실수하고 실패하며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두고 혼자서 실컷 눈물짓고, 후회도 해보았기에 비로소 다시 또 일어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마음에, 걱정되는 마음에 애쓰고, 마음 졸이며 실컷 울었던 엄마로서의 시간이 나를 어느 정도 초연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시간들로 인해 어떤 어려움이 와도 전전긍긍하지 않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의 문제와 그로 인한 엄마로서의 고민을 이제는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자연인으로서의 10년과 엄마로서의 10년이 결이 다른 것은 마침내 내려놓을 수 있어야만 하는 육아라는 일의 본질 때문이 아닐는지.             

                      

  아무리 애써도 낫지 않았던 아이의 고질적인 피부병도 시간의 약으로 자연스럽게 낫게 되었고, 늘 노심초사 걱정했던 아이의 여린 기질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나름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을 보며 안심하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걱정 고민하고 발 동동 굴러봤자 나와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만을 주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걱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스트레스로 인해 서로를 미워하게만 될 뿐이었다. 걱정은 아무런 힘도 없다는 것을 육아하는 10년 동안 몸으로 부딪히며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또 다른 국면이 펼쳐지면서 또다시 걱정을 하겠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그 걱정에 집착하면서 나 자신과 아이를 힘들게 하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 시간은 약이고 그 속에서 나와 아이는 계속 성장할 것이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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