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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K Nov 20. 2023

닿지만 닿을 수 없는 거리

-intro-

고등학생 시절 가을이 다가오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 친구의 병문안을 갔다.


흰색의 벽과 바닥... 천장에 은은하게 빛을 뿜어대는 조명을 따라 걷던 중 무수히 많은 병실의 문 중 하나를 열자 불이 꺼진 상태의 병실 안에는 초저녁 노을빛에 의지하여 병실 안을 비추고 있었고 나의 친구를 간호하던 환자 침상 밑에 보조 침대에 앉아 있던 교복 차림의 인형 같던 한 소녀를 그때 처음 만났다. 나 또한 하교를 하여 하계 교복을 입고 있었으며 우리는 초면이었으며 눈을 맞추었던 순간 30분 같았던 3초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순간이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병원에서의 그날은 아무쪼록 서로 대화다운 대화라고 할 거 없이 인사만 하다가 낯가림이 심하던 나는 얼굴만 비추고 안부 인사를 전하고 금방 나왔다. 이후에 그녀는 나에게 먼저 잦은 연락과 함께 식사 약속을 잡으며 식후에는 동네 대학 거리의 아담한 카페에 가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첫 만남 때의 그 긴장감과 설렘을 잊을 수 없었다. 아니... 설렘보다는 아마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아마추어 청소년부 복싱 선수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이며, 그만큼 남자라면 모를까 연애 경험이 없던 나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없어서 어떤 대화를 하며 여자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첫 만남 때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그 당시 난 토요일 오전 11시에 그녀를 만나기로 하여 아침 9시에 일어나 부스스하던 머리를 거울을 통해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느긋느긋 하게 준비를 하였다. 다 씻고 난 후에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였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식빵을 노릇노릇하게 굽고 오렌지주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준비를 마치고 끼니를 해결하였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는 인터넷으로 구매한 지 얼마 안 된 검정 NBA후드티와 검정 허벅지 양 쪽에 작은 포켓이 달린 카고 팬츠와 조던 11 브레드를 신고 약속 장소인 집 앞 하천 산책로로 현관문을 지나 발길을 이어나갔다.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그녀는 단정하게 정리된 긴 생머리와 검정 프릴로 장식된 검은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h라인 치마와 검정 로퍼를 신고 있었고 내가 오는 반대 방향을 보며 손을 포개어 다리를 모아 가지런히 서있는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의상 컬러의 배열이 시밀러룩이 되어 실례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잠시 그녀를 보며 멈춰 있었다. 그녀는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나에게 다가와 청초하게 손인사를 건네었다. 나는 숙맥처럼 제스처를 크게 하며 마찬가지로 웃으면서 손인사를 하였다. 그녀도 나와 의상의 색깔이 같아 의식한 탓인지 나를 위로 보며 수줍게 말을 하였다.


'오늘 우리 완전 커플룩이네?'


'하하... 그러게... 일단 좀 걸을까?'


'좋아.'


당황한 나는 말을 둘러대며 그녀와 시덥잖은 농담과 대화를 하며 아침의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며 목적지 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이힐의 구두를 신었던 그녀가 걸음 속도가 점차 느려지기 시작하여 이때 겨우 눈치를 챘다."아차! 내가 배려심이 부족했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이야기를 끊고서 화제를 다급히 돌렸다.


'슬슬 목이 마른데 어디 주변 카페로 갈까?'

아주 늦은 타이밍이지만 더 늦기 전에 지금 말하는 게 훨씬 낫다.


'그러게.. 너 땀 흘리네.. 그렇게 하자.'

배려심이 깊은 착하고 다정한 그녀는 정말로 내가 힘이 들어서 그렇게 하자는 줄 알았을 것이다.


너무 내 상태에서만 생각하고 숙녀의 불편함을 이렇게 늦게 눈치채다니... 나는 정말 어디 가서도 절대로 꿇리는 않는 숙맥이라고 하여도 좋을 정도이다.

그렇게 대학 거리에 있는 핑크색의 잔잔한 네온사인의 간판인 카페가 눈에 띄어 우리는 거기로 문을 열고 들어가 바로 옆의 창가 쪽에 자리하였다. 하이힐로 인해 발이 아파 걸음 속도가 늦어지는 그녀가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마실 것은 내가 샀다.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실 건데 너는 뭐 마실래? 내가 사는 곳까지 와주었으니까 내가 사줄게.'

핑계로 마침 딱 좋았다. 사실대로 말하게 된다면 나의 호의에 그녀가 부담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대충 둘러댔다.


'아니야! 내가 사줄게 나 돈 많아!'

그녀는 내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급히 지갑을 카운터에 있는 젊은 여성 아르바이트생에게 들이미는 것을 내가 만류하며 다행히 내가 결제를 하였다.


나는 내심 속으로 여러 번 감동이 밀려와 탄복하고 말았다.

카페에서는 주로 학생들의 관심사 중 하나인 연애 이야기를 하였다. 단언컨대 아마 현재까지도 학생과 성인 불문하고 이야깃거리 중 1순위로 뽑힐 것이다. 나의 학창 시절과 지금의 학창 시절을 보내는 학생들과는 꽤 먼 거리의 시점은 아니니까.


그녀가 내게 먼저 신호탄을 쏘았다.

'조심스럽지만... 너는 연애할 생각 없어?'

알게 된 지 1주일 만에 이야기를 하는 그녀였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어본 탓일까? 나도 뒤따라서

그녀가 듣기에는 다소 시원찮은 대답을 하였다.

'음... 딱히 없는데...'

나는 비로소 결국에는 훗날의 내가 후회할 대답을 하였다.

훗날의 나는 뒷장에서 이야기하겠다.


그녀가 시선을 천천히 바닥으로 떨구면서 대답하였다.

'아... 그렇구나...'

그녀는 옷 소매를 손가락을 덮어 내려서 미끄러질까 조심히 두 손으로 들고 있던 머그잔을 천천히 내려놓고 창밖을 보며 몇 초간 어색한 침묵만이 이어져갔다.


나는 당시에 남의 시선에는 예민하던 편이라서 만약 그녀와 잘되어 교제를 할 경우 학창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의 옆 학교까지 복싱으로 동급생들에게 남모르게 동경의 대상이 되던 내가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여자와 교제한다는 소문이 싫어 살갑게 질문에 답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당시에 나는 정말 모순적이었다. 관심 있는 이성이 바로 내 앞에 있는데 내가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저울질을 한 것인지... 지금 돌아보면 나의 인격에 창피하고 후회스러울 따름이다. 그 뒤로 만난 지 3시간 만에 찜찜한 상태로 집에 돌아오고 나서 뭐처럼 운동도 안 하는 휴일이니 별생각 없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엎드려 누워서 머리맡에 있는 전날에 읽다가 말았던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책갈피로 고정되어 있었던 책을 펼치고 소리 없이 습관처럼 입모양을 글자대로 따라 읽으며 책의 글귀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집에 잘 들어갔어?'

진심으로 관심이 가고 호감이 있는 여자였다면 내가 했어야 할 말을 그녀가 하고 있었다.


나는 독서 중이었기에 그 메시지를 보고서도 날이 저물어 노을도 사라져 어두워진 쌀쌀한 밤이 돼서야 내 할 일 다 하고서 거짓말로 둘러대며 답장하였다.

'아이고... 미안해 요즘 운동을 힘들게 해서 잠이 좀 많아졌나 봐...'라고.


그녀도 내가 복싱이 특기인 것을 알기에 그럴듯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 어리석은 내게 또다시 천사의 후광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답장하였다.

'헉... 내가 괜히 만나자고 했나... 다음에는 네가 편할 때 만나자!'


나는 미안해하고 있던 마음이 정말 죄짓는 것처럼 더 미안해졌다. 사실 뭐... 죄라고 전부터 선언하였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녀의 선한 영향력은 아마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후 한동안 카페에서부터 경솔한 대답을 반복하였던 나의 영향이 지대했던 탓일까? 서로 연락이 뜸해져 있었다. 물론 먼저 상냥하게 연락해 준 쪽은 이때까지도 그녀였다. 그러다가도 사이가 언제 애매해졌냐 하듯이

친구로써 만남을 가지며 여가시간을 함께 하였다.


그런 시간들을 몇 번의 아침이 찾아왔는지도 모를만큼 우린 늘 그렇게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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