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마라, 영향받지 마라, 휘둘리지 마라.
좌우명의 힘은 자기 신뢰와 같아서
마음속에 간직하여 매일매일 되새기면 자신의 것이 된다.
하지만 바쁜 일상의 현실과 쓸데없는 생각으로 지친 우리에게는
자신의 마음마저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는 일을
일부러 회피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기대하지 마라, 영향받지 마라, 휘둘리지 마라.'
'기대하지 마라.'
이 단어에는 많은 것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중에 대표적으로
늦은 시간에도 성실히 안정된 삶을 지향하려 노동에 대한 보상받는 기대심
자신이 타인에게 무언가를 베풀었으니 언젠가는 타인이 나에게 보상하리라는 기대심
연인끼리 사랑을 하면서 서로 간의 시작했던 설렘은 넣은 채 각자에게서 새로운 것을 고집하는 기대심
이러한 것들이 극단적으로 변질될 시에 자신에게 찾아오는 것은 정신병뿐이다.
하지만 거의 기대심은 타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생각보다 인간은 고집은 있어도 철학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로 간의 모종의 이유로 상대방의 의사는 무시한 채 남몰래
자신에게 "누군가가 무언가 해주었음." 하는 기대심이 커지며
우리는 직감적이나 그것의 말로는 좋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내가 선의를 베풀었다고 한다면 보상 따위 기대하지 마라.
이 말을 많이 들었다면 당신은 한 번 더 생각을 비틀어야 한다.
자신의 욕심에 지배당하여 언젠가는 고마움을 느낀 상대방이
자신에게 몇 배로 무언가 해줄 것을 간주하고 베풀었는지,
정말 100퍼센트 상대방에게 호의로 베풀었는지에 관하여 말이다.
평균적으로 언제나 지금 하는 일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여도 기대이상으로 잘되는 일은 거의 없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도 몰라도 행복이 "40", 불행이 "60"이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기적과 같이 느끼는 순간이 많은 법이다.
우리는 이런 것에 좌절하고 후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기대심을 버리라는 소리가 아니다.
기대심이 있어야 행동할 줄 알고 그에 알맞은 방법으로 추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환경과 상황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모든지 확실하지 않은 것에 잘될 것이라는 의미 부여를 하여서 집착하게 하지 말자는 뜻이다.
영향받지 마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였던 것들이 어느 한순간에 때때로 수정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자신이 소신 있게 걸어갔던 길, 자신의 가치관이 외부로부터 흠이 나는 사건 등
우리는 죽을 때까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위의 세 가지는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삶을 영위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언제 바뀌어도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과유불급에 있다.
영향을 받아야 할 것과 받지 말아야 할 것은 보통 상황에서는 구분하지 못한다.
"타인으로부터 영향받은 나의 모습"에 관하여 이야기를 열겠다.
세상에는 좋은 스승과 그렇지 못한 스승이 있다.
그 스승은 당신의 곁에 있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배우자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최근에 스승이라고 할 법한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나에게 진정한 남자가 되는 법을 자신이 여태까지 살아온 경험과 공부가 바탕이 된 근거로
나도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많이 알려주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그에게 헌정하는 글이라고 하여도 될 정도이니 말이다.
그는 남자로서의 본분과 원초적인 것들을 알려줌과 동시에 나의 평소 가치관이 흔들릴 만큼의 것들을
정말 많이 알려주었고 나도 그렇게 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이쯤에서 독자들의 생각은
"결국에 필자도 영향을 받지 말라면서 타인에게부터 받은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두루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런 것 따위가 아니다.
그가 언급하였던 것 중에 하나는 "남의 행동에 휘둘리지 마라." 였었다.
쉽게 말해서 팔랑귀가 되어서 이곳저곳 들쑤시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소신 있게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에게 꺾일 필요가 없다는 소리이다.
굳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알아두면 좋은 것인데 외부로부터 나의 울타리 안에 범접하는 것들을
포용하며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가 기분이 안 좋은 상태라고 하여도 내가 구태여 그 기분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포용할 줄 알기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며 상대를 다루는 페르소나 테크닉 또한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옳고 그름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모든 것을 따지기보다는 내가 세워둔 도덕적이고 윤리가 바탕이 되는
아름답고 인간다운 신념이 초석이 된 상태로 걸러야 한다.
스토아 철학의 근간이 되는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빌리면 이러한 밀이 있다.
"성품이 좋지 않은 사람을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오늘 나는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은혜를 모르는 사람, 오만한 사람,
교활한 사람, 잘 속이는 사람, 시기심이 많은 사람,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선의 본질은 아름다운 것이고 악의 본질은 추한 것임을 알고 있으며
그들 역시 나의 형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휘둘리지 마라."
세상에는 감성적인 사람과 이성적인 사람이 있다.
이들은 서로 상극으로 고유의 성향을 띠고 있는 반면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하나가 있다.
자신이 외부로부터 혹은 어떠한 사건으로 휘둘리는 것이다.
대부분 "휘둘렸다."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이야기에 토대로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인생에서 손해와 이득을 중요시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이러한 말은 평생을 풀지 못하는 숙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휘둘려도 될 것과 휘둘리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정해야 하고 기준을 정해놓아야 편하다.
타인의 행동으로 인하여 휘둘리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을 스스로 억제할 필요가 없는 거디.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그저 상대방의 의도를 하나하나 파악하기보다는
서로의 고집과 아집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렇게 외부로부터 나를 시험에 들게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미워하지도 말고 미움을 사게 될 짓 또한 하면 안 된다.
자신이 가졌던 문제들을 언젠가는 사소하였다는 생각으로
피식하고 넘어갈 줄 아는 여유와 태도를 가지게 된다면
남에게 휘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다른 관점이 생긴 것은 아닌지 혹은
타인이 날 흔들어놓은 것이 아닌 그 대상의 말과 행동에
괜히 자기 자신이 멋대로 생각하여 휘둘린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혼자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될 일이다.
누군가 나의 정체성을 물들이려고 한다면
그 순간은 바람처럼 스쳐가면 될 뿐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