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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님 Apr 17. 2023

오늘의 글은 어제의 머리에서 나온다

더 나은 쓰레기 생산하기

일기형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끄적끄적 글을 써내려 가는 것 같아도

브런치에 아침마다 글(이라기 보단 기록)을 쓰는 건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한 30분?


실제로 무엇을 적어야지, 내일은 이 주제로 글을 써야지 하고 다짐해 본 적은 없지만 

이런 형식 없는 글도 막힘없이 매일 적으려면 아주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첫 번째로 글을 쓰기 위해 앉아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뭐라도 이렇게 써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론 뭘 쓰고 싶은지 고민해야 다는 것이다.


대단하게 소재에 대한 생각을 한다거나, 영감을 받을 만한 무언가를 떠올린다거나 하는 일은 아니다. 그런 류의 글도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은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난 시간을 무엇이든 쓰는데 할애하고, 물 한 잔 떠서 노트북 앞에 스탠드를 켜고 앉는 것이 끝이다. 


물론 나도 매일 하는 행위의 대단함은 알고 있다. 매일 하기 위해선 부담이 없어야 하고, 의무감을 갖지 않는 쪽이 도움 되며, 물 한잔 마시는 정도의 난이도여야 한다.(적어도 나에겐)

하지만 아무리 봐도 한 손으로 컵을 쥐고 물을 마시는 것보단 두 손, 거기다 손가락을 개별적으로 다 사용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 난이도가 더 높은 것은 자명하다. 


여기서 빠진 단계가 하나 있다면,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 스쳐가는 무수한 생각 중 하나를 잡아두는 것이다. 

무념무상으로 잠들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축하해주고 싶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정신이 건강한 사람일 확률이 높겠군요.

아침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도 밤에는 우리 모두 머릿속으로 작가가 된다. 이때 일기를 쓴다면 감성이 90%+사실이 10% 확률이 높은 말 그대로 창작물이 탄생할 것이다. 이것을 다음날 부끄러워 하지만 않는다면.


아무튼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 하다못해 제목이 될만한 단어라도 휘발되기 전에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놓는다면 다음날 시간은 훨씬 단축된다. 

(짜잔 놀라셨죠? 이런 글도 나름 한 단계를 거쳐 나온 글이랍니다.)


답답한 마음에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면, 간단하게 한 단어 혹은 한 문장으로 적어두고 나서

'내일 글로 써서 풀어야지'하고 마음을 풀어주는 의식으로 생각한다면 잡생각이 훨씬 줄어든다. 어차피 내일 박 터지게 할 고민이니까.


적어두지 않으면 당연히 아침엔 생각이 나지 않고, 해맑은 정신과 답답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다가 다시 그 문제와 비슷한 생각들이 잠들기 전의 나를 괴롭힌다. 

첫 일기에서 메멘토에 관해 썼었는데 딱 그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이게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비슷한 종류의 고민들은 이미 나를 수십 번씩 때리고 갔다. 

이런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글로 남기는 것뿐이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은 보통 '나'에 대해 쓴다. 

가장 가깝고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이야깃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점차 포함한다. 

나는 창작을 배운 적도, 창작하는 종류의 직업을 꿈꿔본 적은 없지만 늘 좋은 것을 보면 좋다에서 끝나지 않고, 어떻게 저런 대단한 것을 썼는지(그렸는지) 어떤 삶을 살면 저런 문장을 남길 수 있는지, 어떻게 저런 대단한 것이 개인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지 늘 궁금했다. 일종의 부러움이었다. 


언젠가 나도 대단하게 여기는 것 만으로, 즐기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쓰레기라도 열심히 생산해 낼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천천히 연습해서 나중에는 더 나은 쓰레기를 만들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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