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했네
나는 정말 내가 야행성인간, 올빼미족 새벽에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한 5살 때부터?
어릴 때부터 9시 되면 눕고 아침 7시에 칼같이 기상하는 동생을 보며,
나는 바른생활에는 태생부터 글렀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동생은 커피를 마시던, 어쩌다 새벽에 들어오던 어떻게 살아도 금방 머리만 대면 자서 아침에 개운하게 기상하도록 설계된 인간이었고.
나는 생활리듬 엉망, 회사 다녀도(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절대 고쳐지지 않던 수면장애, 예민한 성정 등등 아무튼 문제는 많았다.
내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5살이 뭘 안다고 어떤 고민이 있다고 새벽까지 못 자다가 다음날 오후 12시에 기상한다는 말인가.
부모님은 늘 규칙적으로 생활해 볼 것을 권했지만 초, 중, 고, 대, 회사까지 지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어도 잠을 규칙적으로 자는 것은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사람이 어쩌다 하루쯤 잠에 못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날 7시에 일어나서 출근을 했다면 돌아와서는 일찍 잘 수 있게 만들어져야 하는 거 아닐까? 똑같이 1시간 겨우 자고 출근한다면 그건 내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2년 간의 휴식기에도 나는 여전히 엉망으로 살았다. 그나마 학교를 다시 다니고 다시 시험 디데이가 있는 공부를 하면서 새벽 2시에 자고 9시에 기상하는 생활을 반복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올빼미 새끼인 줄 알았다.
이렇게 말하면 게으르고 생활패턴자체를 엉망으로 살 것 같지만
일단 잠을 제외한 모든 활동은 규칙적인 사람이다.
일단 집에 돌아오면 욕실로 향한다. 씻고 나면 세탁기를 돌리면서 밥을 먹는다. 그다음에는 미루지 않고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끝난 세탁물을 건조대에 넌다.
그 어렵다는 바로 씻기, 밥 먹고 바로 설거지하기를 하는데 내가 게으른 인간이라니...
예민한 나는 루틴의 중요성을 꽤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느 현상에서도 생각을 최소화하고 몸을 움직이도록 훈련했고, 아직도 연습 중이다.
꾸준히 노력했기 때문일까, 어렴풋이 내 몸을 낮에 피곤하도록 굴리고 일찍 잠들면 일찍 일어날 수 있도록 약간 변형?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년간의 휴식기에서 힐링이 되었기 때문일까. 저체중에서 살이 쪘기 때문일까.
아무튼 뭔가 살기가 편해진 것 같았다.
지금 나는 누가 봐도 아침형 인간이다.
우선 퇴근을 하면 식재료를 꺼내두고 바로 씻는다 여전히. 씻고 나온 수건과 함께 세탁기를 돌린다.
그동안 간단한 요리를 하고 그릇에 잘 담아서 밥을 먹는다. 먹고 나면 노래를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인덕션을 닦는다. 마침 세탁이 끝났다는 노래가 나오면 빨래를 넌다.
천천히 모든 일을 끝내면 8시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더 단축이 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 시간부터는 자유시간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예능이나 드라마, 책을 보며 2시간을 보내고 양치 후에 10시에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아침 기상!
요즘은 아주 조금 변형이 있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도 크게 피로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뒤 조금 더 나름 과감한 실험 중인데, 수면사이클을 당기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여전히 퇴근 후 씻고 밥 먹고, 청소하고 휴식 후 9시 30분 전에 눕는다. 10시쯤 바로 잠이 들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는 5시에 일어난다.
처음의 새벽시간에는 멍 때리기도 하고 책을 읽었지만, 바쁜 서류를 미리 하기도 하고,
심심하면 글을 쓰면서 6시 30분-7시까지 시간을 보낸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비록 바쁘면 다시 내 맘대로 살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었다.
이 것 말고도 나를 오해하고 있던 일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내가 햇빛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냥 햇빛이 쨍한 시간대의 재미없는 피구나 시키는 체육활동을 싫어했던 것이고, 나는 실내로 햇빛이 들어오는 밝은 날을 좋아한다.
나는 내가 양배추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냥 처음 먹어본 그 조리법이 싫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양배추를 2통씩 사서 넣어둔다.
나는 내가 게을러서 주말엔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어야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냥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몰라서, 불필요한 행위와 필요한 행위를 구별할 줄 몰라서 모든 짐을 쌓아두고 무기력했던 것뿐이었다.
지금도 내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건 아니다.
그냥 게으른 나를 조금 더 잘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매뉴얼이 생겼다.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현재는 기름칠을 해서 잘 굴러가는 중이다.
또 수많은 나에 대한 나의 오해를 발견할 날이 오겠지.
하나의 작은 오해 속에 얼마나 나를 작게 구겨서 넣어두고 있었던 것인지.
하나하나 발견하여 더 넓은 공간으로 옮겨 줄 때마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