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서 받는 위로의 중독
글쓰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지만, 놓아지지 않고 계속 쓰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브런치 작가가 된 후로 글을 쓰기가 더 어려워진 건 사실이다. 왜냐하면... 되지도 않는 글을 쓰기엔 이 플랫폼이 너무도 전문적인 것 같고 창조적인 문학에 가까운 글을 써야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기 위해서 나는 이런이런 글을 쓰겠다고 목차를 써냈지만 사실은 그 글들은 내가 원하는 글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망설여지고 머리를 싸매게 된다.
블로그와 브런치
나는 문학적인 글을 쓰고 싶다.
블로그는 말 그대로 문학에 가까운 글을 쓰기에는 최적화가 되어 있지 않다. 차라리 일기장 어플이나 페이지스에 글을 쓰는 게 낫다. 블로그는 정보를 주고받기에 알맞은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그런 블로그에 내가 창작글을 쓰겠다고 끼적여봐야 봐주는 사람도 없고 말 그대로 나만의 메모장이 될 수밖에... 나만의 메모장은 굳이 블로그가 아니어도 되니까. (블로그는 로직이라는 것이 있어서 일기장이나 메모장으로 쓰기엔 불안하다.)
개인적인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냥 혼자 일기장이나 노트에 쓰면 되지 뭐 꼭 플랫폼이 필요한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브런치 같은 플랫폼이 있어서 더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다.
봐주는 사람이 많고 적고를 떠나 내가 글이라는 것을 써도 된다는 어떤 허락받은 범위의 공간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글쓰기를 하는 다른 유저들의 글을 실컷 볼 수도 있고, 소통을 하며 글쓰기를 응원해줄 수도 있다. 로직에 어긋나는 글쓰기가 여기엔 없다. 그냥 멍석이다. 글 쓰라고 깔아둔..
물론 브런치나우에도 글쓰기의 주제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서 블로그처럼 정보성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지만, 블로그보다는 아무래도 글 쓰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정착된 곳이라서 문학에 가까운 글쓰기가 더 편한 공간이다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아마도 책을 내는 일일 것이다. 브런치에서는 그런 일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필력을 키우고 글쓰기 습관을 형성한다.
나도 그래서 브런치 작가로 승인받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승인이 되고 보니 이미 뭔가 대단한 작가라도 된 것처럼 부담감이 물밀듯 밀려왔고, 대체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를 생각하느라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브런치에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글쓰기 책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글은 일단 쓰고 보는 거다. 그것도 내 이야기로 시작하라. 매일 페이지를 정하든 시간을 정하든 나와의 약속을 지켜라. 글쓰기는 엉덩이의 힘이다. 하지만 그 엉덩이의 힘을 기르기까지 매일 앉으려면 글쓰기와 작가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 글을 쓰면 그게 작가다. 유명한 작가처럼 근사한 문장을 쓰려는 욕심을 버려라.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마라.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라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처음엔 그냥 막 되는대로 쓰라는 것이었다.
글감이나 주제가 없으면 내가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로 시작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시작해보려 한다.
내 이야기. 블로그든 브런치든 내 이야기를 쓰면 누군가는 볼 것이다. 누가 볼까 봐 무서워서 못 쓰는 나의 이야기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누가 볼까 겁이 나 못쓰면서 또 아무도 안봐주면 불안하고 서운한 양날의 검이다. 그러니 겁나지 않는 나의 이야기를 써야할까? 하지만 겁내면서도 써야만 하는 나의 이야기와 맞딱뜨렸을 때 나는 글쓰기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마법이 있다.
나 또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기 전에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따라 모닝 페이지 쓰기를 1년간 했었다. 아무도 안 보는 나만 볼 수 있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치유가 되는 것을,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하는 거라고 했다.
1년간 쓴 모닝 페이지를 나는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았다.
자꾸만 자꾸만 내 발목을 잡는 일들이 생각나서 괴롭고 힘들었다. 마주하기 싫은 문제와 직면해야 하는 일이란 용기에 용기를 더해도 모자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한없이 하면서 느낀 것은 그 모닝 페이지속의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나니까. 그 속에 숨어있는 나를 꺼내야 난 더 큰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어떤 믿음 같은 게 생겼다. 극복해야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모닝 페이지 속의 그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하나하나 꺼내어볼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래도 꺼내볼 생각을 했다는 게, 그럴 용기를 냈다는 게 대견하다.
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눈물과 웃음을 주고 싶어서이다. 왜냐하면 나도 책 속에서 같이 펑펑 울었고 박장대소를 했으며, 미소 짓기도 하고 화를 내며 욕을 하기도 했으니까.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전해주고 싶다. 사람들이 내 글에 웃고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네 하는 위안도 되고, 그러면서 모두를 아울러 친구가 되고 싶었다.
모닝 페이지를 써보니 글쓰기가 주는 위로의 힘은 무엇보다 강렬했다.
욱하는 감정도 글로 쓰다 보면 감정에 휘말리기보다 냉철한 이성을 찾게 해 주었고, 미칠 것 같은 분노도 글을 쓰면서 삭혔다. 자꾸만 위로를 해주는 글쓰기가 하고 싶어지고 결국은 나를 위한 글쓰기가 되었다.
어떤 글을 쓰면 사람들이 좋아할까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국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할 때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았다. 내가 위로를 받으면 분명 나와 같은 다른 이가 똑같이 위로를 나눠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일단은 믿고 가보자
일단은 책에서 본 가이드를 믿기로 했다. 가장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정해진 분량이든 시간이든 지켜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30분짜리 모래시계를 샀다. 타이머나 알람시계의 소음 없이 조용히 내리는 모래시계를 뒤집을 타임에 나는 펜을 내려놓을 것이다.
그렇게 매일 뭐라도 쓰다 보면 쓸 거리가 자꾸 생긴다고 했다. 이어쓰기를 해도 되고 매일 다른 글을 써도 되지만 목표는 끝내기여야만 한다고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작한 글을 끝내기.
처음엔 짧은 산문이라도 끝내 보고 반복적인 퇴고 연습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멋진 글이 될 수도 있다고.
글의 완성은 퇴고라면서. 퇴고를 하면 할수록 새로운 글로 탄생된다고 했으니 딱 한 번만이라도 시작과 끝을 경험해보고 싶다. 생각해보면 아니 주위를 한번 둘러보기만 해도 글감은 차고 넘친다.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를 몰라서 글을 못쓰겠다던 나의 생각은 핑계일 뿐이다.
그냥 쓰면 된다고, 글감이 널리고 널렸는데도 하나 줍지 못한다면 글 쓸 자세가 안된 것이리라.
유명 작가를 따라 하려고 하니 못 쓰는 것이다. 난 유명 작가는 고사하고 그냥 작가도 아니면서 무슨 과대망상인가..그럴싸한 문장 하나 뽑아내려고 첫 문장도 못쓴 단말인가. 경험 삼아 써 본 전자책이 나의 데뷔작이라고나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은 이런 생각도 지금 글을 쓰다 보니 생겨난 것이다. 글쓰기는 마법 같다. 분명 없었던 것을 만들어주고, 또 있었던 생각을 뒤집어준다. 그러니 내가 글을 쓸 수밖에...
모래시계를 뒤집기 위해서라도 일단 책상에 앉아보기로 한다.
그게 어떤 글이 되었건 쓰레기 같은 글이란 없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