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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휘 Apr 05. 2024

첫사랑 그 남자 1

사랑 : 그 남자네 집 - 박완서

문제는 후회가 아니라 못 잊는다는 데 있다.
아마도 잊기가 아까워서 못 잊을 것이다.



박완서 작가님은 워낙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님이라서 그녀의 소설을 거의 읽어보았지만,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은 <그 남자네 집>과 <모순>이다.

두 이야기는 언뜻 보면 상관없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연관성이 있다.

<그 남자네 집>은 작가님의 첫사랑이 이야기이고, 그녀는 첫사랑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

<모순>은 두 남자 사이에서 결혼을 선택하는 진진의 이야기로 사랑이냐 현실적인 여러 문제냐를 두고 모든 여성들이 갈등할 수 있는 소재로 이야기를 지으셨다. 그녀가 첫사랑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했듯이.

나는 이 두 소설을 읽을 때마다 지금의 나의 선택과 이제는 아득해진 첫사랑을 생각하곤 한다.

모든 선택에는 후회가 동반하는 것이고, 지금 나는 나의 결혼을 때로 후회하기도 하지만, 이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분명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생겼으리라 생각한다. 후회없는 사랑이 어디있으랴.

그러니 이 글은 내가 지금의 남편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나간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나의 젊은 날을 회상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나에게는 아주 먼 옛날의 첫사랑이 있다. 물론 누구에게나 있는 첫사랑이다.

철없을 때의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싶지만 그때의 사랑으로 결혼까지 해서 잘 살고 있는 수많은 연인들이 있으니 아무리 어리고 철없던 시절이었다 해도 그때의 모든 사랑은 진심이었으리라.

지금처럼 4월이 되면 어김없이 젖어드는 추억이 있다. 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박완서 님처럼 매듭짓지 못한 사랑이라 자꾸 되돌아보는지도 모르겠다. <그 남자네 집>에서 그녀는 첫 사랑과 시원하게 이별을 했다.

나에게는 끝내지 못한 사랑, 하지만 지속되진 않는 사랑, 추억 저 편으로 건네기엔 마무리가 안 된 것 같은 사랑.

언젠가 한 번은 만나서 끝을 내야할 것 같은 그런 사랑이 있다. 그렇다고 굳이 꼭 뭔가 해결을 봐야할 사랑은 아니다.


갓 대학에 입학했던 때, 3월은 여전히 쌀쌀맞았으나 이내 4월이 되면서 그야말로 따사로운 봄날이 시작되었다.

나의 청춘처럼 설레고 가슴 콩닥거리던 그때의 꽃들과 햇살과 바람이 여전히 내 곁을 맴도는 듯하다.

고등학교 후배 덕분에 나는 대학을 갈 수 있었다. 대학입시를 위한 재수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일 년이 지나 대학엘 갔으니 재수는 재수였다. 그녀와 같은 과 같은 학번으로 입학을 했고, 나는 집을 떠나 지방으로 가야 했다.

소위 유학생활을 하는 나에게 그곳이 고향이었던 후배와 그녀의 가족들은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주었다.

지금도 감사할 일이다.

후배의 어머니는 시내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고 계셨고, 아직 신입생인 데다가 수업도 별로 없던 학기 초에 우리는 거의 매일 어머니의 옷가게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덕분에 어머니는 공짜로 아르바이트생이 두 명이나 생긴 것에 기뻐하셨고 우리를 믿고 가게를 종종 비우시기도 했다.


그날도 우린 어머니의 가게에 있었다.

한 남자가 들어왔다. 덩치가 큰 남자였다.

주문해 둔 옷을 찾으러 왔고 그는 바지를 갈아입어보았다. 

하얀색 마 소재의 얇은 바지였는데 갈아입고 나온 그의 발목에 하얀 마바지 속으로 비치는 검정 양말이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웠다. 우리는 까르르 웃었고, 그 남자는 웃는 우리가 웃겼는지 자신도 따라 웃으며 반 농담조로 말했다. "왜 웃어요? 왜 웃지? ㅋㅋㅋ" 거울 속 자신도 웃겼을 것이다.

그 남자는 바지를 찾아 돌아갔고 잠시 뒤 가게로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후배는 어떤 남자가 나를 찾는다고 했고, 누구냐고 물어보라 했더니 조금 전 바지를 찾아간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듀스의 김성재에게 빠져있던 때였고, 김원준, 손지창처럼 꽃미남이 이상형이었던 내게 그 남자는 그냥 커다란 아저씨였을 뿐.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마르지도 않았고 언뜻 보니 배도 나와 보였는데.. 말도 안 됐다.

나는 "나 없다고 해. 아까 갔다고 해"라고 후배에게 속삭이며 팔짝팔짝 뛰었고 후배는 전화를 끊었다.

참 별일도 다 있네, 예쁜 건 알아갖고. 흥!


그리고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우린 어머니의 옷가게로 가기 위해서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창 수다를 떨고 있는데 맞은편 차선에서 웬 검은색 승용차가 계속 클락션을 울리고 있었다.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었고, 진짜 매너 없게 왜 저래? 우린 눈살을 찌푸린 채 수다를 이어갔다.

잠시 뒤 그 검은색 승용차는 유턴을 해서 내 앞에 멈춰 섰다.

처음엔 누군가 싶었는데 창문을 내렸을 때 핸들 위에 올라간 손을 보니 스치듯 생각났다.

 그 남자였다.

처음 봤을 때 바지를 계산하는 그의 오른쪽 중지에 끼워져 있던 커다란 금반지.

그 반지를 보며 '뭐야. 조폭이야?' 했던 생각.


어디 가냐고, 태워주겠다는 그 남자.

우린 4명이었고 그 남자는 악의가 없어 보였고(그는 항상 인상 좋은 웃음을 장착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그 고급세단에 눈이 동그래져있었고, "야 타자, 타자" 하며 나를 꼬셨고,,,

나는 차 안에서 내내 "이 남자 유부남이 확실하네. 아무리 봐도 아저씨 같단 말이야. 나이도 있어 보이고 이런 좋은 차를 젊은 애가 어떻게 타겠어. 그러고 보니 정말 웃긴 사람이야. 유부남 주제에 왜 자꾸 집적거리지?"

이런 생각으로 그 남자를 매우 불량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어머니의 가게가 있는 시내까지는 멀지 않았다. 소도시의 거리란 그랬다.

우린 우르르 내리며 "고맙습니다"를 외치고 돌아섰다.

그 남자가 '저기요~ 잠깐만요" 하며 나를 불렀다.

비상등을 켜고 내린 남자는 나에게 달려와 쪽지를 내밀었다.

쪽지에는 010-000-0000 처음 보는 낯선 형태의 숫자가 적혀있었다.

이건 뭐지? 집 전화번호도 아니고, 삐삐번호도 아니고...(당시는 삐삐세대였고 삐삐는 011,016,017.. 이렇게 시작된다) 010은 처음 보는 숫자였다.

"언제 전화 한 번 꼭 해주세요. 맛있는 거 사드리고 싶어요"

"네? 아~~ 네에..... 안녕히 가세요"

마음속엔 '네가 왜 나한테 밥을 사주는데?' 했지만 입밖으로는 그 말이 안 나와서 말하지 못한 채 쪽지를 들고 가게로 들어섰다. 그리곤 바로 휴지통에 버렸다.

'뭐야.. 핸드폰도 있는 거야? 칫'

그때 핸드폰은 크게 사업하는 사장님들이 카폰을 쓰거나 아주 부잣집이 아니면 살 엄두도 못 낼 정도였다.


우린 어머니 가게가 아지트가 되었고, 그 남자에게서 쪽지를 받은 날을 기점으로 며칠 후부터 그 남자는 거의 매일 그 가게를 왔다. 별로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 옷들을 사거나 양말이라도 사거나... 누가 봐도 나를 보러 드나드는 것이 뻔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가 또 왔다.

그날은 아예 작정을 했는지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에게 바로 와서는 말했다.

"왜 전화 안 해요?"

"네? 아..... 그게... 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마음에 안 드는 남자의 대시는 단칼에 거절하는 내가 왜 그 남자에게는 그렇게 못했는지, 정말 마음의 감정은 명확했는데 말이다. 어떤 에너지 같은 것이 자꾸 그를 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듯했다.

얼버무리고 있으니 용기가 생겼을까?

"보아하니 수업이 일찍 끝나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내일 데리러 올 테니 3시에 만납시다. 알았죠? 내일 3시입니다. 차나 한 잔 해요. 낼 데리러 올게요~~"

이렇게 말하곤 후다닥 뛰쳐나간 그 남자.



그 남자가 가고 난 뒤 후배는 말했다.

"언니 저 남자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애. 울 엄마가 그러는데 매번 매너도 좋고 인사도 잘하고 사람이 좋다 하더라. 그리고 저 남자 여기서 알아주는 유지집 아들이래~ 한 번 만나봐라 응?"

"뭐어? 싫어~ 유지집아들이고 뭐고  너 같으면 저런 아저씨 만나고 싶냐? 내 스타일 아니야. 그렇게 좋으면 니가 만나"

"저 남자가 나한테 만나자고 했으면 난 만났다 뭐!."

그다음 날 학교에서 후배는 그 남자가 유부남이 아니라고 엄마한테 확인을 했다고 전했다.

그나저나 당장 오늘 3신데 어떡하나.... 나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안 나갈 방법을 찾을지 하루종일 신경이 쓰였다.


시간은 흘러 당연한 듯 3시가 다가왔다.



2탄을 쓸까요 말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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