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헤어질 세포
음..... 벌써 한 네다섯 달은 되었지 싶은데....
음.... 그중에서도 한 달 정도는 매일 아침 젤 첫 번째로 들이닥치는 감정과 나의 중얼거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 오늘도 내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였다.
그렇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인간의 노화는 늦출 수도 있다지만 그것도 마지노선이 있을 것이다. 더는 어쩌지 못하는, 내 손을 떠난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스토아 철학자도 아니고 이건 뭐... 정말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노화라는, 무척 기분 나쁘면서도 슬픈 감정이 드는 웬수.
노화가 요즘은 40대 초반부터도 온다 하고, 생물학적으로 여자의 노화는 20대 후반부터 시작한다는데, 사실 그때는 물리적으로 노화를 느끼지는 않는다. 내가 노화를 직접적으로 느끼는 건 50이 넘은 지금부터니까.
운동도 한다. 매일 빡세게는 못해도 꾸준히 하기를 몇 년째 한다. 늙을수록 근력운동이 필요하다던데 그걸 많이 안 해서인가보다 생각하는 요즘이다. 사실 근력운동은 너무 힘들다. 하기 싫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요즘 부쩍 내가 체력이 달리고 피곤함을 느끼는 건 내 몸속에 이상세포 때문이다. 작년 말일쯤 자궁경부암 국가검진을 받았다. 4년 만에 받았다. 나는 내 몸뚱이에 무슨 자신감이 있었던지 더 잘 받아야 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산책하듯 드문드문 생각나면 받곤 했다.
작년에도 사실 귀찮아서 안 받으려고 했는데 무슨 촉이 발동한 건지 일 년을 내내 미루다가 연말에서야 받았다. 일주일 후 비정상적인 모양을 한 세포가 발견되었다고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조직검사야 다니는 로컬병원에서도 받을 수 있지만 원장님이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지 말고 한 번에 하라며 대학병원으로 트랜스퍼하셨다.
그리고 대학병원의 유명 교수님답게 예약일이 금방 있지 않았고, 그렇게 3달이 지난 지금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하고 이형성증으로 진단받아 다음 주 원추절제술을 예약하였다.
그 사실을 알고도 나는 그다지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다. 암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고 만약 암진단을 받았다 해도 자궁이야 드러내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쿨한 여자다.
자궁은 말 그대로 출산용 아닌가. 출산도 끝냈고 더 이상 자궁의 역할은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원래 있던 것이니 없으면 탈은 나겠다 싶긴 하지만, 호르몬 문제도 있고.. 뭐 문제는 문제다만 그래도 다른 장기보다 덜 걱정되는 부분이긴 하다. 일찍 발견한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가하는 바.
암인지 아닌지는 원추절제술을 하며 더 깊은 조직 내 세포를 떼어내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아침마다 도저히 못 일어나겠고, 어디 이 몸이 3년 동안 새벽 4시 반 미라클 모닝을 했던 몸인가 싶은 것이다.
책을 읽다가도 너무 피곤해져서 침대에 드러눕기도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그저 내가 늙나 보다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내 몸속 비정상적인 세포 때문이구나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 매일 아침 나를 찾아오는 첫 번째 감정은 늙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다.
물론 이형성증은 20대에도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대기를 할 때 수많은 20대 젊은 아가씨들이 수술 날짜를 잡는 것을 봤다. 아직 결혼도 안 했을 것 같이 어린 대학생쯤 돼 보이는 아가씨들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는 참 행운이지 싶고, 나에게만 생긴 우환이 아니라는 안도감에 그리 우울하지도 않은데 정작 몸이 피곤을 느끼니 정말 암환자들은 얼마나 일상생활이 불편할까 생각이 들면서 이래저래 착잡해지는 것이다.
만약 이런 병이 복불복이라면 지금껏 잘 지나오다가 왜 50줄에 들어서니 생겼나 싶은 것이 전적으로 노화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 든다는 게 참 좋았었는데 갑자기 무서워졌다.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올 놈은 온다더니... 그것이 스토아철학의 운명론적인 개념이라면 어찌 살아야 하나?
카르페디엠이고 메멘토모리고 간에 당장 나는 내 몸이 피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할 일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일은 더 많기 때문이다.
다음 주 수술 같지도 않은 수술이라고들 말하는 원추절제술을 하고 나면, 그 세포가 내 몸에서 사라져 버리면 지금처럼 피곤함을 못 느끼겠지? 기대된다.
일찍 못 일어나고, 늦은 밤까지 못 버티니 나의 하루가 굉장히 짧아졌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요즘인데 빨리 시술 끝내고 다시 좀 덜 피곤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건강검진은 제때에 꼬박꼬박 받아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이지만 간과하기 쉬운 사실을 깨닫는다.
여러분들도 귀찮아하지 말고 제때에 꼭 받으시길 추천한다.
그것만 잘 받아도 큰 병을 방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