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더해지는 빛
아들이 어느덧 열한 살이 되었다.
빨리 커서 얼른 스무 살이 되거라 했다가도 여전히 크는 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양면성을 지닌 내 마음.
그 원천은 제주의 에메랄드 빛 바다색이다.
아들이 7살이 되었을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우리만의 추억을 쌓자며 제주 한 달 살기 숙소를 예약했었다.
7살 3월에 문의를 했는데 원하는 숙소가 모두 예약이 차서 7월 말일에 겨우 방을 잡을 수 있었다. 아주 뜨거운 한 여름도 아니고 한 달이라 봐야 8월 말이니 여름을 보내기엔 꽤 괜찮은 때라고 생각했다.
숙소는 저렴한 데부터 일반적인 곳, 그리고 고급진 곳 등등 선택의 여지가 폭넓었다. 처음 가는 제주살이라 검색해 보고 찾아보고 해야 하는 일이 귀찮을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제주 사는 지인이 검색을 대신해 주어 알게 된 숙소는 매우 프라이빗한 데다 독채였고, 내부는 깔끔하고 둘이 살기에 넉넉한 평수였는데 이도저도 볼 것 없이 바로 예약하게 만든 건 테라스에 있는 개인 자쿠지였다.
그걸 보는 순간 더 이상 다른 곳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고급진 숙소, 한 달에 350만 원짜리 집을 구했다.
기다리는 4개월이 어찌나 길던지.
드디어 도착한 제주 우리 집은 표선에 있었다. 사실은 많이 걷자 싶어 차를 가져가지 않았는데, 숙소가 워낙 프라이빗해서 차 없이는 마트고 뭐고 갈 수가 없더라. 제주 도착하자마자 랜트를 했고 많이 걸으며 살기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거기 제주에서 우리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는 달콤함을 만끽했다.
그때도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그리워지는 때가 되어버렸다. 아들은 여전히 종종 그때 제주살이를 이야기하며 우리 또 살러가잔다.
한 달 살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음번엔 세 달 살기 오자 약속했는데,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강원도 살기 두 달로 퉁쳐버렸다.
그랬는데 요즘 다시 부쩍 그때 한 약속을 지키고 싶어 진다.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크고 있었고 내 눈엔 여전히 일곱 살인데 저는 진짜 열한 살이란다.
이러다가 6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어버리면, 우리 둘만의 살기는 이대로 끝이 나는가 싶어 싫어지는 것이다.
강원도에서 두 달 살기를 할 때에도 아이는 자연 속에서 하루하루 마음이 커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이도 좋아했지만 그걸 보는 내가 더 좋아서 자꾸만 자꾸만 시골로 아이를 데리고 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이제 4학년이 된 아들은 어째서인지 시간이 없다.
수학, 영어학원을 가는 것도 아닌데 학교 수업 마치고 방과 후 하나 하고 오면 바로 피아노를 가야 하고, 피아노가 끝나고 태권도를 가기까지 딱 한 시간이 자유시간이다.
뭐가 그리 바쁜 일정인지. 피곤하면 뭐라도 하나 그만하자 말해도 기어이 다 하고 싶은 것들이라 하니 말릴 수도 없다.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여기를 휘리릭하고 떠나버려야 시간이 나지 싶기도 하다.
아들도 노래하는 제주도. 그 에메랄드 빛 바다.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 그 쨍한 컬러들이 보고 싶어 어쩌면 아들보다 내가 더 떠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가볼까? 갈 수 있을까?
지금 내 마음은 제주의 에메랄드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