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사주라~
바람이 제법 차다.
차박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일단 왔다.
아이가 원해서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추우면 못하는 거라고 단단히 못을 박고 출발했다.
텐트를 치고 캠핑 준비를 하다 보니 별로 안 춥다. 바닷바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럭저럭 시원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자리를 잡고 판을 벌인다.
저쪽 옆에는 대학생들이 MT를 왔나 보다. 시끌벅적하다. 오히려 시끌벅적해서 더 좋다.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풋풋하다.
앉아서 글을 쓰자니 집중이 안된다. 풀벌레 소리와 좋아하는 음악소리와 고요한 듯하면서도 시끌벅적한 곳이 바닷가의 고요와는 다르다.
12시가 넘었다. 제법 추워진다. 이 쌀쌀한 공기가 나는 어쩐지 개운하다.
오늘은 잠이 들기가 싫어진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대로 앉아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싶어 진다.
남편의 친한 형님이 술을 사들고 남편을 보러 왔다. 온 김에 나도 같이 앉아 술을 더 마신다.
형님은 캠핑 마니아다. 남편의 질문에 이런저런 대답과 조언을 해주면서, 장비 추천도 해주니 남편은 족족 장바구니에 담는다.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일이 점점 커질 판이다. 캠핑카를 사는 게 낫겠다까지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모두 같은 수순으로 캠핑카를 팔기까지 주마등 같은 레퍼토리로 마무리가 된다.
나는 몇 년 만에 보는 형님인데 그 사이에 일이 많았나 보다. 마치 삶을 통달한 듯 남편에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제법 철학적이고 맞는 말씀이다.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다 네 것이 아니다."
사업을 몇 번 말아먹으면서 알게 된 진리라고 한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12년이 걸리더라면서. 이제는 좋은 차도 넓은 집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그저 시간 날 때 와이프랑 둘이 바닷가에 캠핑의자 펼쳐놓고 통닭 한 마리 시켜 맥주 한 캔 마시고 오는 게 너무 좋다며.
남편에게 항상 겸손하라고, 지금의 평안함이 끝까지 편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그런 얘기들을 듣는데 문득 며칠 전에 읽었던 <새의 선물>에서 진희가 하는 말이 떠오른다.
"삶의 양면성" 기쁨을 호들갑스럽게 나타내면 안 된다, 그러면 삶이 시샘을 해서 그 기쁨을 가져가 버리고, 곧 슬픔을 줄 것이라는 말. 누구의 삶에서도 기쁨과 슬픔은 거의 같은 양으로 채워지는 것이므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 또한 고난과 역경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슬픔도 기쁨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고, 도돌이표처럼 금방 다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대비를 해야 한다. 기쁨 뒤에 올 슬픔, 혹은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올 기쁨 등을..
그 형님이 남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런 것이리라. 나는 그런 말들을 해주는 그 형님이 감사했다.
새벽에 어쩔 수 없이 자러 들어갔다. 너무 피곤한데 모기 한 마리가 아들 얼굴을 자꾸 물어뜯고 있다. 잠을 잘 수가 없다. 한 시간 반 동안 모기 4마리를 잡았다. 그 시각 전화기의 알람이 울리는 것을 보니 4시 반이다.
자긴 다 틀렸네 하면서도 누웠다. 이젠 추워서 못 자겠다. 당장 침낭을 사던지 전기요를 사야지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가져간 패딩을 이불 위에 덮고서.
빗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내가 5시쯤 잠에 들었는데 빗소리에 일어나 보니 6시 반이다. 겨우 한 시간 반을 자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만들 정도로 제법 많은 비가 온다.
밖에 나가 캠핑 박스며 배터리 등등 비에 젖음 안 되는 것들을 돗자리로 덮어두고 다시 들어왔다.
예보도 안 보고 나올 생각을 하다니... 그래도 새벽에 차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제법 근사하다.
그리고 당분간은 차박은 없다고 다짐을 하며 짐을 쌌다.
캠핑이란 정리하는 것도 귀찮고, 나가면 남편이 다 한다 해도 이만저만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게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알싸한 공기 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도 싶고, 코펠에 물을 팔팔 끓여 법랑 컵에 커피를 타 먹고 싶기도 하고, 뜨겁게 금방 익힌 고기를 호호 불 때의 그 입김도 그립고 무엇보다 술 한잔 걸치고 남편이 끓여주는 라면은 자꾸만 자꾸만 생각이 나서, 나갈 때마다 고생을 하면서도 나는 다음을 위해 더 살뜰하게 짐 정리를 해둔다.
패딩을 챙겨간 나를 칭찬하면서 아직 때 이른 패딩이지만, 우리에겐 매우 시의적절했다.
아이가 크면 캠핑도 안 따라오니 지금 많이 다니라는 그 형님의 말씀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캠핑카를 사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돌아왔다. 남편도 나와 같을까?
한줄 요약: 캠핑카를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