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와의 전쟁
계절이 바뀐다는 걸 다시 말해 건조한 계절이 오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는 아들이다.
"엄마, 코피!!"
또 시작이군, 또 시작이야.
6살 때부터 꼭 이맘때쯤이면 코피를 쏟아내는 아들 때문에 나는 자다가도 몇 번이나 깨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선잠을 자게 되었다. 이 계절에는.
느닷없이 자다가 새벽 3,4시에 코피를 흘리며 나를 깨우는 아들 덕분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았다.
매일 이불 빨래를 해야 했고, 나도 이런데 정작 본인은 얼마나 힘들고 성가실지 짠했다.
졸린 눈을 이기지 못할 만큼 잠에 푹 빠졌다가도 귀신같이 자기의 코에서 흐르는 코피를 감지하고는 일어난다. 티슈로 코를 막아주면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존다. 유치원에서 배웠는데 코피가 나면 절대 머리를 뒤로 젖히면 안 되니까 졸려도 누울 수 없다고.
코피는 10~20분 내로 멈추지만, 자다가 만나는 코피는 그 10분이 하루만큼 긴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우리는 반사신경이 뛰어나게 되었다. 아들에게 깊이 잠들었는데 어떻게 알고 깼어? 물어보니 그냥 느낌이 있다고, 자면서도 그 느낌을 알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덕분에 나도 새벽에 "엄마" 소리가 나면 두 눈이 번쩍 떠지면서 몸은 순간적으로 찰나의 탄력을 받아 벌떡 일어난다.
병원을 수차례 다녀봐도 심각한 문제로 인한 코피가 아니란다.
아마 자면서 자신도 모르게 코를 후볐거나, 실내가 건조해서 아이들은 코피가 잘 난다고.
코 안에 바르는 약도 받아오고, 가습기도 성능 좋은 것으로 바꾸기를 여러 차례 했음에도 7살까지 여전히 이맘때면 코피를 흘렸다.
이제는 4계절이라고 할 수도 없는 1년의 계절 중에서, 유난히 기온이 떨어지는 초겨울부터 코피는 시작된다.
어제도 새벽 6시쯤, 아들은 또 "엄마 코피!"를 외치며 몸을 벌떡 일으킨다. 코를 손으로 쥐어막고서.
"또 시작이네 ㅜㅜ 8살에도 계속될 모양이구나" 하며 재빨리 티슈로 코를 막아준다.
매번 자다가 흘리는 코피 때문에 다음날이면 이불 빨래를 하는 엄마에게 미안했던 모양인지, 티슈로 코를 막자마자 이불을 들춰보며 코피가 묻어있는지 확인한다.
"엄마, 이번에도 또 이불에 묻었어."
"괜찮아 또 빨아야지 뭐."
어제는 건조함을 못 느껴서 가습기를 안 틀고 잤는데 단박에 알아차리듯, 코피를 흘리는 걸 보면서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지 않는 내가 어느새 익숙해진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건 엄마로서 내가 익숙해지면 안 되는 일인데. 나보다 더 힘든 건 아들 본인일 텐데 말이다.
그렇게 코피가 나면 자다 깨서 잠투정을 하거나 짜증을 낼 법도 한데, 마치 이젠 코피도 자신의 것이라는 것처럼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아들을 보면서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모습이라서 내가 더 이상은 큰일이 아닌 듯 아들의 코피를 익숙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6살 때 처음 코피를 흘렸던 그 호들갑스러운 엄마는 어디로 가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코피를 대하는 엄마만 남아있는 게 아들 입장에서 보면 서운하기도 할까? 아님 오히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코피를 제 몸같이 받아들이며 안심하게 될까?
피를 유난히 못 보는 아들이 유일하게 펑펑 쏟아내는 본인의 코피는 아무렇지 않게 보는 걸 보면, 자기도 이제 인이 박혔나 보다.
길가다 코피 나서 양쪽 코 다 막고도 즐거운 울 아들. ㅎㅎ 넌 사랑이야.
클수록 코피는 안 흘리게 된다는 말을 믿어보면서, 나는 또 이불을 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