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의 인풋과 아웃풋

그냥 짜증

by 그레이스웬디

짜증 잘 내는 사람.

나다. 나는 짜증이 습관이 된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니 20대부터 "짜증 나"를 입에 달기 시작했다.

그 감정이 짜증이 아닐 때에도 입 밖으로 표현되는 말은 "짜증 나"였다.

달리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짜증'이라는 말 대신 어떤 말을 사용해야 할지 몰랐다.


운전을 하다가 차가 밀려도,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는데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도, 누가 한 마디 기분 나쁜 말이라도 한다 치면, 날씨가 꾸물거려도, 애가 타도, 속상해도 모든 감정의 표현은 "짜증 나".

그래도 짜증을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사람에게서였다. 대체로 인간관계에서 짜증은 증폭되었다.


내 짜증의 시작은 사실 사회 초년생 때였다.

논현동 도산사거리에 있는 새로 생긴 깔끔한 치과에 면접을 보고 출근을 시작했다.

사실 나는 치과위생사라는 직업 자체가 짜증이 난지도 모른다.

나는 왜 공부를 더 안 해서 치과의사가 되지 못했나 하는 자괴감과 열등감을 치과에서 근무하는 내내 느꼈던 것 같다. 내 직장생활에서 만난 치과의사들은 많지 않지만, 나의 짜증을 배가시킨 건 논현동 그 X였다.


두 얼굴의 사나이, 미친놈. 그래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의사는 또라이가 많다는 이상한 루머가 생기는 거라고.

출근 한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놈의 또라이짓은 어이없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재밌어지기까지 했다.

내가 28살이었을 때 그 X는 고작 해서 30대 초반으로 보였으니 자기도 분명 베테랑은 아니었다.

그 치과는 나의 두 번째 직장이었으니 그전에 베테랑 원장님과 일한 경력이 그를 보는 눈을 정확하게 해 준 것도 같다.

내가 그날 위생사 가운을 벗고 나온 건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

어차피 볼 일 없는데 욕이라도 해주고 나올걸 그랬나 하는 미련이 지금까지 남는 걸 보면, 그는 또라이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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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원한 병원이니 환자가 많을 리 없었다.

오후 진료시간, 한 분의 환자가 왔고, 치과에는 위생사인 나와 조무사 한 명과 그놈과 셋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진료실에는 조무사가 어시스트를 했고, 나는 데스크에서 환자 차트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진료실에서 스뎅 밥그릇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났는데, 저런 소리가 날만 한 건 기본도구를 올려두는 트레이밖에 없었다.

뭐지? 치과에서는 누가 아무리 실수를 한다 해도 진료 도중에 그 트레이가 떨어질 일은 절대 없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조무사는 뭘 찾으러 갔는지, 어시스트 자리에서 멀어져 있고, 그놈과 조무사의 거리 사이에 그 트레이가 떨어져 있고, 기본 도구 3개는 뿔뿔이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이건 누가 봐도 그놈이 조무사에게 그 트레이를 던진 것이 분명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설마, 환자도 있는데 의사가 조무사에게 저런다고?


나는 머리와 눈알을 굴리느라 정신없고, 바보처럼 잠깐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 판단이 진짜인지를 어떻게 확인하나 생각하면서...

곧이어 사실임을 느끼게 하는 그놈의 한 마디.

조무사를 향해 "야!!! 너, 나가. 그것도 빨리빨리 못 가져와?"

뭐... 뭐라고? 아니 지금 이 상황 실화냐?

세상에 뭐 저런 상또라이가 다 있지? 환자가 누워있는데, 조무사에게 너 나가라고?

와 진짜 난 너무 황당하다 못해 재밌기까지 했다.


순간 나는 저걸 어떻게 한방 먹이지? 그 생각에 몰두해있었다.

갑자기 그놈이 나를 부르며 어시스트를 하라고 했다.

잠깐 망설였다. 그 찰나의 순간에 '아 또 면접 보러 다니기 싫은데...'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놈은 방금 내 눈앞에서 조무사에게 그 지랄을 떨어놓고 나를 다정하게 부른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00 씨, 트레이 좀 갖다 주세요~"

미. 친. 놈. 내가 니 씨다바리가.

나는 그 길로 조무사를 데리고 병원을 나왔다. 오후 2시. 저번 치과에서 이 시간은 정신없이 바빴는데..



나의 첫 번째 치과 원장님은 너무 좋은 분이셨다.

실력도 아주 좋아서 깊숙이 몸을 숨긴 사랑니 발치도 원큐에 하시고, 신경치료를 할 때 그 신경들을 귀신같이 파악하셔서 실패라는 게 없는 분인 데다가, 직원 복지도 좋고 페이도 많이 주셨다.

그런 치과를 3년 만에 그만둔 건 3년이 지나도록 텃세를 부리던 조무사 언니 때문이었다.

정말 직장 내에서 사람을 잘못 만나면 그게 지옥이라는 걸 나는 첫 직장에서 알아버렸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조무사 때문에 치과를 때려치우는구나.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사실 나도 저 조무사라는 직급이 싫고 더러워서 대학을 갔는데.. 다 무슨 소용이람?

미대를 떨어지고, 미대를 포기하면서 나는 조무사 학원을 갔다. 만만한 게 간호조무사였던 시대였다.

그때도 나를 욱하게 만들었던 건, 병원 실습을 나갔을 때였다.

지금도 기억하는 수쌤. 정말 두꺼비를 닮은 늙은 수간호사.

신생아실에서 실습을 했는데, 이 나이 많은 수간호사는 조무사학원 실습생과 간호대학실습생을 아주 극진하게 차별했다. 내가 실습 내내 얼마나 울었던지, 더러워서 대학 가야지, 내 죽어도 조무사로 밥벌이는 안 할 거라고 다짐을 하면서도 중도 포기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조무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리고는 대학을 갔다. 치위생과로.

치위생사 실습을 나갔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이제 대학생 실습생이라 그때처럼 그런 대우는 안 받겠다 생각하니 그 짜릿함이란.

학원과 대학이 문제가 아니라 그 수간호사 인간성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이 사회는 첫 발부터 나를 순하디 순한 인간은 못되게 가르쳐주었다.

욕을 하고 싶을 때마다 짜증이라는 말을 썼다.

정말 짜증이 났다. 그 기분을 짜증이라는 말 대신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억울해? 기분 나빠? 화가 나? 노노~~ 이런 말은 2% 부족해. 아~짜증 나! 얼마나 콕 박히고 명쾌한 표현인가.


그렇게 습관이 돼버린 짜증.

짜증이라는 인풋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마는 아웃풋이 나왔다.

그걸 나이 마흔이 훌쩍 넘기고서야 알아차릴 만큼 짜증은 나에겐 편한 존재였다.

내가 마음이라는 것을 잘 들여다볼 줄 알았다면, 짜증을 모르고 살았을까?

'짜증'이라는 인풋 대신 '그래도 긍정'이라는 인풋을 쌓았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아웃풋이 나왔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여전히 나도 모르게 "짜증 나"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면, 그 말을 고쳐 다시 내뱉는다.

"이건 짜증 나는 게 아니야, 그냥 기분이 안 좋은 거야."

말버릇을 바꾸는 데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 아이가 '짜증 나'를 입에 붙이고 살지 않았으면 바라는 마음이 스스로 잘못을 인식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훨씬 좋다는 게 어쩌면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세상이 나를 짜증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일은 없다.

나 스스로 짜증과 이별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있으니까. 내가 짜증을 선택 안하기로 하면 되는 거니까.


한 줄 요약 : 짜증이라는 인풋으로 나오는 아웃풋은 짜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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