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기브 앤 테이크할 필요는 없어

나도 받을 줄 알지만 꼭 받지 않아도 된다

by 그레이스웬디
"언니는 퍼 주기나 하지 받을 줄을 몰라."
아니야, 나도 받을 줄 알아. 준다는 사람이 없을 뿐이지. 너 빼고.


친한 동생 H가 언젠가 나에게 말했다. 맨날 퍼줄 줄만 알았지 받을 줄 모른다고.

언젠가 H가 나에게 화장품을 선물했을 때 나는 "아니야 됐어~, 이런 거 앞으로 하지 마. 진짜 괜찮아" 라면서 거절을 하자 나에게 한 말이다.


사실 난 받는 것보다 주는 게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받을 줄도 안다.

H는 임신했을 때 지역맘 카페에 임산부 모임에서 만난 나보다 10살 아래 동생이다.

H는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고, 우리는 나이차를 못 느끼며 가까워졌다. 둥이와 나의 아들은 친구가 되었고 아이들이 돌잔치를 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닐 때도, 그리고 입학을 하는 8~9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H의 선물을 거절한 건 사실 H가 나에게 많이 줬기 때문이다.

나처럼 주는 게 더 좋은 사람은 아무리 받을 줄 알아도 지나치면 그때부터 받는 게 신나지 않는다.


주는 게 그렇게 좋니?

그렇다. 나는 정말 주는 걸 좋아한다. 나만큼 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남편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편 몰래 준다. 어차피 내가 쓰지 남편이 쓰는 물건도 아닌데 괜히 자기가 아까워하는 꼴이 보기 싫다.

나는 주는 게 습관처럼 자연스럽다. 당연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 쓸 것도 없는데 퍼 주는 건 봉사정신이 투철한 것이지만 나는 그건 아니다. 내가 쓸게 충분히 있고도 남아도는 건 당연히 쓸 수 있는 사람에게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당연히가 문제다. 결코 당연하지 않다.

나의 퍼주기 습관은 과소비를 증명하는 일이다. 질려서 새로 산 것, 신상이라 산 것, 쟁이면 좋겠어서 말 그대로 쟁인 것들, 예뻐서 하나 둘 사다 보니 창고행이 된 것들, 큰 걸 사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들, 등등.

있지만 또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새 제품이나 고작 한 두 번 쓴 것들이었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줄 때도 매우 기분이 좋은 그런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때론 두 개가 있으면 더 좋은 걸 주기도 한다. 나는 쓰다가 고장 나면 새로 사면 되지만, 상대는 내가 준 물건이 고장 나면 나를 욕할 것이기 때문이다. 못 쓰는 걸 누군가에게 버린 꼴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그런 나는 뭘 만들 때에도 항상 줄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대량으로 만든다.

택배비도 내가 지불해가며 열 곳 스무 곳에 택배를 보낸다. 그걸 받고 기뻐할 모습들을 떠올리면 그냥 막 기분이 좋다. 뭐 이렇게까지 좋을 일인가 싶게..


지인들이 나에게 "언니 나 000 하나 사야겠어, 추천 좀 해줘"라고 말하면 나는 "그래? 그거 나한테 있는데, 새것도 있고 헌 것도 있어, 와서 보고 가져가" 언제나 이런 식이다.

그래서 모두들 우리 집을 만물상 또는 보물 창고라고 부른다. 말만 하면 뚝딱 나오는 지니의 요술램프처럼 말만 하면 다 나온다. 다 있으니까 ㅎㅎ 그들에겐 필요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가득하다.

퍼 주고 퍼 줘도 끝이 안 보였는데, 내가 과소비를 끊으니 비로소 퍼줌도 끝이 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나는 창고 공간을 많이 확보했고, 이젠 필요할 때마다 주는 걸로, 쌓아두고 퍼주는 일은 안 하기로 한다.


나도 받을 줄 안다, 다만 준다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부족함은 모르고 자랐다.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이 나보고 안 입는 옷을 친구들에게 나눠주면 어떻겠냐고 엄마에게 물어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 사랑도 많이 받았고, 학창 시절 내내 친구들은 나에게 자꾸 뭔가를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받는 게 더 많은 아이였다. 물론 여전히 주기도 좋아했고.

그냥 받는 것도 익숙하고 주는 것도 익숙한 정도?

사회에서부터 나는 주기만 한 것 같다. 나에게 주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이가 점점 많아질수록 나는 더 많이 주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내 주변은 늘 나에게 받기만 했다.

그래도 주고받고를 따질 생각조차 없다. 주는 게 좋은 사람이니까 줄 일이 많으면 더 좋았을 뿐.

기브 앤 테이크,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고 뭐 이런 건 나는 딱 싫다.

내가 주고 싶은 마음 자체를 순수하게 받아주면 좋겠는데, 돌려주려고 한다면 내 마음이 부담스러운가? 하고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다. 때론 받기만 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줬다고 상대도 똑같이 나에게 주려한다면 너무 계산적이고 정이 없지 않은가.


누가 나에게 뭘 준다고 하면 일단 관계를 생각하겠지.

이걸 순수한 마음으로 그냥 받아도 되는 건지, 우리가 그런 관계인지, 아니면 받으면 더 크게 돌려줘야 하는 사이인지, 비슷하거나 작은 거라도 꼭 돌려줘야 하는 건지 생각을 하겠지.

대체로 내가 받은 것이 없는 것을 보면, 모두들 나에게 받기만 한 것을 보면 관계가 엉망이든지, 아님 최상이든지 둘 중 하나겠지.

주고받는 것에도 법칙이란 게 존재한다면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법칙보다 마음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좋으니까 주는 마음. 그거면 됐지 거기에 왜 이것저것 살을 붙여 생각한단 말인가.

그러니 받은 대로 꼭 돌려줄 필요는 없다. 선물이든 복수든 ㅎㅎㅎ

나에게 많이 준 H

H는 유일하게 내가 사회에서 만난 사람 중 나에게 많은 것을 주는 사람이다.

둥이 돌잔치에 반지 한 돈씩 2개를 가져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하잖아 애기가 두 명인데.

그게 고맙다고 H는 내 아들 돌 때 3돈짜리 목걸이를 갖고 왔다.

H는 받으면 더 크게 주고 싶어 했다. 물론 또 따져보자면 내가 준 게 더 많지만, 나는 H의 그런 마음이 너무 감동이고 예쁘다. 그럴수록 나는 더 주고 싶어 지고, H는 가끔 돌려주는 것에도 온 마음을 담으려 한다.

선순환이 이런 걸 테지.

한 번은 친정엄마가 오셔서 맛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H의 전화가 왔다.

"언니 뭐해?"

"응 엄마 오셔서 00에서 밥 먹고 있어."

"그래? 엄마 오셨구나. 맛있는 거 많이 사드려."

"그래. 근데 무슨 일이야? 왜 전화했어"

"어? 그냥 했지. 로또를 살까 하는데 번호 물어볼라고. 언니 지금 테이블 몇 번이야? 그 번호 하나 쓰자."

이렇게 여시 짓을 하면서 H는 우리 밥값을 계산했다. 식당으로 전화해서 우리 테이블 번호를 대먀 밥값을 사장 계좌로 이체를 한 것이다.


나도 받을 줄 안다. 매우 감사하고 크게 감동하면서 받을 줄 안다.

그런 H가 나에게 언니는 받을 줄 모른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적절하게 거절한 것도 잘한 것 같고, 앞으론 다 받아도 될 것 같고? ㅎㅎㅎ

아무튼 살아가면서 너무 계산적으로 살지 말자 생각한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주면 된다. 그게 언제나 선순환이 될 테니.

이번엔 내가 다음엔 네가 꼭 정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면 자연스럽게 순번도 정해지겠지.

그러니 받았다고 꼭 돌려줄 필요는 없다.
keyword
이전 17화짜증의 인풋과 아웃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