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풍요
나를 풍요롭게 하는 건 뭘까를 생각하면서 쓰는 글이다.
결국 지금의 나를 풍요롭게 하는 건 역시 독서였다.
처음은 가짜 책 읽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풍요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지 2년 차 초보.
그동안 풍요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넉넉할 정도로 많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뭐든지 많아야 그제야 풍요를 조금 느끼겠네. 싶은?
옷도, 신발도, 가방도, 주방도구도, 생필품도, 집도, 차도, 돈도.
이런 모든 풍요는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들이다.
물론 돈은 꼭 필요하다. 한때 물질만능주의였던 나로서는 사실 여전히 "돈 없이 사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돈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나 할까 ㅎㅎ
아무튼.
내 집의 냉장고는 모두 3대다. 식구는 달랑 세 식구다. 1인 1 냉장고도 아니고....
누가 보면 대식구 거느리며 큰살림하는 안주인인 줄 알겠다.
그럼에도 나는 냉장고 3대로는 부족하다며 미니 냉장고를 하나 더 사려고 했던 때가 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했던가.
여자들 옷방에 옷이 그득해도 매번 입을 옷이 없는 것처럼, 나의 냉장고도 3대가 가득 찼어도 늘 먹을 게 없었다. 뭐가 많긴 많은데 먹을 게 없다는 건 결국 난 게으르기 때문이었다.
식재료는 좋은 것들로 가득 찼는데도 잘 꺼내먹기보다, 언젠가 마음먹은 그 어떤 날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늘 대기하고 있던 재료들.
정리를 하다 보니 세상에 아까운 재료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귀한걸 귀한 줄도 모르고 사재 끼기만 하던 시절을 다시 한번 반성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귀신에 씌어 산 것도 같다.
어쩜 이렇게까지 아낄 줄 모르고 아까운 줄 몰랐을까.
그때는 그게 당연했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병이 나던 시절이었다.
비우기에 대해 알아버린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풍요라는 말을 오해하며 살았다.
더 가득 채우기 위해 안달복달하며 살았고, 그렇게 가득 채워도 채워지지 않았다.
쫓아가면 달아나는 돈과 술래잡기를 하느라 진이 빠졌다.
그 술래잡기는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 막노동보다 더 힘들고 재미없었다. 대체로 그랬다.
역시나 돈과 술래잡기를 할 때도 마음을 비웠을 때가 훨씬 재미있었고, 내가 더 이상 술래를 하지 않자 돈이 잡아달라고 다가왔으니까.
내가 돈과 노는 것에 흥미가 떨어지고, 물질적인 풍요에서 관심이 사라진 건 인스타그램과 손절한 후부터였다. 내가 가진 것을 보여줄 곳이 없어지자 재미도 없어졌다.
40년이 넘도록 내가 쌓으며 살았던 것들이 결국은 나를 위한 게 아닌, 보여주기 위함이었나 생각하니 허망하기도 하다. 뭐 그렇다고 나의 지난 시절을 통으로 날려버릴 생각은 없다. 그 속엔 분명 좋은 날이 더 많았고, 돈은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좋으니까.
나의 무기력과 허망함을 이기게 해 준 것이 필사였다.
책이야 늘 읽고 살았다. 돈과 술래잡기를 하던 때도, 내 삶을 즐기던 때도, 바쁘게 하루를 보내던 때도 항상.
하지만 그때의 책 읽기는 가짜 책 읽기였다는 것을 필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책을 읽는데도 마음의 양식이 쌓이질 않았다.
글자만 읽어낸 건지, 스토리만 읽은 것인지 영화 한 편 보는 것처럼 책을 읽고는 곧 잊어버렸다.
필사는 쓰기가 아니라 읽기다. 쓰면서 읽기 시작한 뒤로 진짜 책 읽기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책이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양식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사실 와닿지 않았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아쉬워진다.
책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고, 작가의 마음도 파악하려 애쓰고, 내용을 글로 정리하며 배우고 느낀 것을 실행하는 게 진짜 책 읽기이다.
이런 진짜 책 읽기를 몇 권 했다고 해서 당장 내 마음의 풍요를 느끼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읽은 책들이 시간과 함께 쌓여야만 어느 순간 나를 알아차리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풍요로워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진짜 책 읽기가 돈을 만지는 것보다 묘하게 재미있고 끌린다는 것을 알았다.
새로운 책을 만날 때마다 기대에 부푼다.
"이 책은 나에게 또 어떤 깨달음을 주려나~~ 무엇을 내게 주려나~~" 하면서.
마치 주가가 오르길 기대하며 사는 주식처럼.
주식은 떨어져 폭망 할 수도 있지만 책은 밑져야 본전이다.
책한테는 늘 얻을 생각만 한다. 내가 책에게 줄 건 없다. 마음 놓고 얻어먹을 것은 책밖에 없다.
내가 요즘 책 읽기가 더욱 재밌어진 이유를 하나 들자면, 나는 책을 참 잘 선택한다는 것이다.
결국은 또 지 자랑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요즘 나는 신들린 책 선정을 하고 있는 중이므로 ㅎㅎ
내가 책을 선정하는 기준이 가짜 책 읽기를 하던 시절엔 베스트셀러였다면, 진짜 책 읽기를 하고 있는 요즘은 시의적절한 상황에 맞는 책이라는 것이다.
일상생활이 고만고만하고 지루하기까지 할 만큼 시련도 고민도, 또 대단한 기쁨도 없는 밋밋한 내 상황을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데, 독서모임에서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읽어도 모두에게 어울리는 책이 된다는 것이다.
그게 그들도 나도 서로 신기해하는 일이다.
이건 센스일까? 생각하곤 했는데, 아마도 지난날 가짜 책 읽기를 하던 그 오랜 시간 동안, 코딱지만큼일지라도 책으로부터 감각을 익힌 게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많은 책을 경험했으니 보는 눈이 생긴 거라고.
그렇다 치면 역시 책은 본전 이상 하는 게 맞다.
하다못해 가짜 책 읽기를 했음에도 그 안에서 얻은 것이 있으니 말이다.
요즘 나는 전업주부로서 예전처럼 돈을 벌지 못한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돈으로 사는 게 제일 싫었던 내가 (그 액수를 떠나 나는 내가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이었다) 감사하며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진짜 이상한 건 마음이 너무 편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마음이 편하니 세상이 다 아름답다.
이제야 비로소 느낀다.
마음이 풍요롭다는 건 마음이 평온하기 그지없어서, 세상 만물이 전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거라고.
내 마음이 만족을 알게 되고, 감사를 알게 되고 그래서 평온해진 것은 모두 책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가짜 책 읽기를 했을지라도 늘 책은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가짜로 시작했지만 진짜를 발견했고, 가짜였지만 그 와중에 얻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짜로 시작했기에 진짜를 발견할 수 있는 거라고.
그러니 마음 양식의 처음은 가짜 책 읽기였다는 것.
세상에 이런 책이 다 있나 ㅎㅎㅎ
한 줄 요약 :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당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