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쉬운 선물
선물이라 하면 대체로 유형물이다. 선물상자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어떤 것들.
그러나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은 박스가 없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의 선물은 기다리게 한다.
그날의 선물은 내가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것이나, 아니면 나를 충분히 잘 파악한 타인이 스스로 생각해서 필요해 보이는 것을 주는 것이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갑툭튀 선물이 아마 기쁨의 강도는 가장 셀 것이다.
살면서 서프라이즈는 흔하지 않으므로 대체로 우리는 정해진 어떤 날의 어떤 선물을 기대하곤 한다.
둘이서 주고받는 선물은 뭐 대충 그렇다 쳐도 나 혼자 주고받는 선물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나는 나를 위해 선물을 잘하는 편이다.
너무 잘해서 그게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갖기 위해 인내를 해 본적이 별로 없다.
필요하면 가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능력이 안될 때도 일단 사고부터 치자 이런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누가 나에게 "뭐가 필요하니? 뭐가 갖고 싶니?"라고 물어보면 딱히 필요한 것도 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런 게 없다고 말하면 상대방이 나열을 해준다. 그럴 때마다 "있어. 그것도 있고, 있어, 있어, 다 있어."
넌 없는 게 뭐니? 그러다 결국 상품권이나 현금으로 준다."그냥 니가 알아서 써"
나이가 들면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 점점 유형에서 무형으로 바뀌어 간다.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일주일에 꼭 한 번 나와의 데이트를 하라고 한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나 또한 나에게 주는 가장 쉬우면서 가장 필요하고, 가장 행복한 선물이 바로 시간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유형의 것들로 나를 꽉꽉 채워가며 셀프 선물을 많이 했는데, 엄마가 된 후부턴 어찌 된 게 나를 위해 뭘 사게 되질 않는다. 사실 필요가 없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방도 작고 예쁜 토트백보다 기저귀 가방이 더 편해지고, 신발도 뾰족구두보다 운동화가 편해지고. 옷도 몸에 딱 붙는 짧은 치마보다는 운동복이 편해지는 건 사실이니까.
유형의 것들이 필요가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무형의 것들이 간절해진다.
나는 전업주부라 워킹맘들보다 시간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런 내가 굳이 나에게 또 시간을 선물하는 건, 오롯한 나의 시간으로 쓰기 위해서다.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식구들을 위해 쓰는 시간이 많았다.
집안일을 하고도 남는 시간이면 식사 준비에 공을 들이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오롯한 내 시간이 얼마나 있었나.
그러다가 나만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바로 새벽시간.
이 시간은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 분명하다.
뭘 하지 않아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창밖을 보기만 해도 좋은 시간이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
나에게 스스로 찾아내어 선물한 새벽시간으로 인해 나는 참 많이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주어진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한데 그것을 통해 더 큰 걸 얻어가고 있다니 이렇게 큰 선물이 또 있을까
거기다 돈도 들지 않고, 사러 나가는 귀찮음도 없고, 그냥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선물 중에 최고로 값진 것이다.
연말이 다가오고 몇 개월 동안 나의 글쓰기 모임에서 항상 함께 해주는 회원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하기로 했다. 라탄으로 연필꽂이를 만들기로 했다.
그들은 나처럼 글쓰기를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니 펜을 꽂아둘 수 있는 펜꽂이가 의미도 있고 실용성도 있고, 호불호도 없을 아이템으로 딱이라 생각했다.
내가 나에게 준 선물 같은 시간에 누군가를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하는 시간.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한 줄 요약 :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멋진 선물은 상자가 필요없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