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는 게 제일 어려워

나는 호구다

by 그레이스웬디

거절을 못하는 이유

나의 약점은 거절을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부탁을 하면 왜 거절하기가 그렇게도 힘들까.

그래서인지 내 인생에서 누군가 부탁을 했을 때 거절을 해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부탁이라는 것이 대체로 나에게도 쉬운 것들은 아니다.

돈 적인 면이 가장 많았고, 사실 돈 문제 아니라면 크게 부탁을 받을 일도 없던 것 같다.

그 외에는 왠지 모두 다 사소한 부탁 같아서 거절하고 말고도 없는 그런 것들.


그 돈이라는 게...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줄곧 친구들에게 부탁받곤 했는데,

동네 오빠의 부탁에도 카드를 빌려주고 대금 500만 원 때문에 혼자 끙끙거린 적도 있다.

이쯤 되면 거절을 못하는 병에 걸린 게 분명하다. 아니면 세상 호구거나..

결국 그 동네 오빠라는 xx는 튀었고, 엄마랑 그놈 집에 찾아갔을 때 그놈의 엄마라는 분은 아주 지긋지긋하다면서 아들 얘기를 당신 앞에서 하지도 말라며 우리를 내쫓았다.

엄마는 나보고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해 빠져서 어쩌냐고 야단을 쳤고, 아빠는 비싼 돈 주고 인생수업받았다 치자고 했다.

20년 전 500만 원, 당시 내 월급이 100만 원쯤 됐으니 적은 돈은 아니다.

나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동네 오빠였고, 분명히 제때 갚겠다는 말을 믿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순진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마음이 좋은 거라고, 거절을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나는 줄곧 호구가 되었지만.


인생에서 돈을 뜯긴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피해를 본 경험이 있음에도 계속해서 거절을 하지 못할까?


뜯긴 돈들이 당장에는 억울하고 분하고 속상하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잊힌다.

생각이 안 난다. 그냥 없던 일이 돼버린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다. 아깝지도 않고, 언젠가 꼭 받아야지 하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다.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냥 그런 거지라고만..

그런데 문득 나는 왜 거절을 못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거절을 못하고 부탁을 들어준 건 분명 잘하는 일이다. 상대방은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편해졌을 것이고, 원하는 바도 어느 정도 이루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상대방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인데, 왜 상처는 내가 받아야만 하는가 에 대한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사람 하나 잘 써먹었다 생각한다면 분명 그 생각이 그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지만, 나는 그래도 나에게 부탁을 하던 그들이 나를 바보 같은 호구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정작 나 자신도 내가 호구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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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절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부정적인 말 '미안해 안 되겠어' '그건 어렵겠는데'라는 말들을 도저히 못 꺼내겠다. 언젠가 심리학 책을 읽을 때 스치듯 이런 감정을 본 적 있는데, 그 이유를 왜 지나쳤는지 모르겠다. 거절을 하면 상대와의 관계가 가장 큰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나는 관계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탁들을 들어줘야만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 자격지심이 있는 걸까?

왜 때문에? 왕따를 당해본 경험도 없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좋았는데, 물론 상처받은 적도 있지만, 인간관계에서 그런 상처는 나만 받는 게 아닌걸.


내가 부탁을 거절하게 되면 상대가 상처받는 것도 싫다. 내가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싫다.

왜 이럴 때만 유난히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는 시뮬레이션을 해대는지.

내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면 너무도 간절한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 내가 고마운 사람이 되고 싶은 영웅심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거절을 못하는 나의 최대 약점을 잘 아는 베프가 대신 거절을 해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진심으로 상대를 걱정해서 거절을 못하는 게 아니었다. 친구가 대신 거절을 해줬을 때 그렇게 마음이 홀가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받는 부탁의 사이즈가 크다.

그렇지만 젊을 때보다는 확실히 부탁받을 일이 드물다.

여전히 돈 부탁이 가장 많지만, 이제는 무모하게 들어주지 않을 만큼 발전을 했으나, 여전히 가장 어렵고 힘든 건 거절의 말이다.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게 정중한 거절을 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모든 부탁을 다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는 거절도 하며 살아야 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웬만한 부탁 정도는 다 들어줄 수 있는 호구로 살고 싶다.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ㅎㅎㅎ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인간관계에선 미숙한 내가 자연스럽게 거절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복잡한 나의 여러 가지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 진지하게 생각해보며 답을 찾아보고 싶다.


한 줄 요약 : 거절 못하는 나의 약점이 강점이 되길 바라는 게 더 빠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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