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상
여기는 따뜻한 남쪽 나라 전라도 광주다.
작년엔 눈이 안 와서 겨울이 겨울 같지 않다고 툴툴거렸다.
아이의 눈썰매는 먼지만 쌓여갔고, 코로나 시국인 데다가 눈도 안 오니 이건 뭐 그냥 집콕인 상태로 밋밋한 겨울나기를 했었다.
올 겨울은 어쩐지 눈이 자주 올 것만 같다.
12월 초에 벌써 눈다운 눈이 한 차례 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부터 광주지역엔 대설경보가 발령됐다.
'펄펄 눈이 옵니다'라는 동요에서의 그 '펄펄'이 피부로 와닿을 만큼 진짜 펄펄, 펑펑 쏟아진다.
눈이 이토록 펑펑, 문자 그대로 '쏟아지는' 걸 몇 년 만에 보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눈이 쌓이고 쌓여 녹을 틈도 주지 않고 계속 내리는데 학교에서는 휴교 소리가 없다.
감사한 일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갈 수 있으면 가는 게 당연하지!!!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러 나갔다. 어제보다 더 난리통이다.
집 앞의 도로는 약간 경사가 졌을 뿐인데도 못 올라가는 차량들이 비상등을 켜고 서 있다.
우리 집 앞에는 바로 소방서가 있다.
소방대원들이 소방서 앞뿐만 아니라 꽤 넓은 반경까지 삼삼오오 모여 눈을 치우고 있다.
아이는 그저 신이 나 등굣길에서도 눈을 뭉치고 손으로 쓸면서 학교엘 갔다.
학교 안으로 들여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매일 들르는 커피숍이 문을 닫았다.
커피를 포기하고 크리스마스 산타 대행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한참을 걸어 포장지를 사러 갔다.
포장지를 사서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카페마다 문이 닫혔다.
커피를 포기할까 하다가 오랜만에 눈 다운 눈 좀 맞아보기로 하고, 집을 지나쳐 계속 걸었다.
포장지를 손에 들고 이번에 새로 산 노스페이스 방한화가 제법 쓸만하다고 느끼면서.
다행히 문 연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도로에는 또 한 대의 미니 트럭이 못 올라가고 서 있다.
반대 차선으로 지나던 차 한 대가 서행을 하더니 창문을 열고 미니 트럭을 향해 외친다.
"도와드릴까요?"
"네! 좀 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워둔 운전자가 중앙선을 넘어 반대로 뛰어가 미니 트럭의 엉덩이를 힘껏 밀어준다.
포장지와 커피를 들고 장갑을 낀 손이라 사진을 못 찍었지만, 나는 인도에 서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속으로 "영차 영차" 외치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아직까지 세상은 참 따뜻하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이상해. 엄청 이기적인 듯하면서도 힘든 일을 보면 두 발 벗고 나선다니까.
젊은 운전자가 꽤나 멋있어 보였다.
나도 사실은 밀어주고 싶었는데.... 그냥 참았다. 아줌마는 됐다고 할 것 같아서 ㅎㅎㅎ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사람들이 모두 나와 자기의 건물 앞 눈을 쓸고 있었다.
우리도 쓸어야 하는데 이놈의 남편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나라도 나가서 쓸어야지 했는데, 소방대원들이 어느새 우리 집 앞까지 길을 터놨다.
또 감사하다. 그분들께 커피라도 돌리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다.
날씨는 추운데 마음이 데워져서일까.
집에 들어오니 더웠다.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훅 들어온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내일밤 트리 앞에 두어야 할 울 집 8세의 선물을 포장한다.
남편이 일어나 눈도 오는데 뜨끈한 탕이나 한 그릇 하러 가자고 한다.
눈길을 헤치고 뜨거운 밥을 먹으러 나선다.
'이 집은 여전하구나. 울 애기 3살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5년 만에 왔는데.. 이 집 알탕 정말 맛있는데..'
생각하며 주문을 하고 창밖을 보는데 나무 위에 소복하게 내려앉은 눈이 너무 예쁘다.
밥 먹고 나가는 길에 꼭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하며 씩씩하게 외쳤다.
"이모~ 맥주 주세요~~!!!"
한 줄 요약 : 펄펄 눈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