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어느 하루도 눈부시지 않은 날은 없습니다.
로맨스보다 그냥 사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를 좋아한다.
평소에는 TV를 안 보다가도 그런 사는 얘기가 드라마로 나오면 늦게라도 보는 편이다.
나의 아저씨/ 디어 마이 프렌즈/ 나의 해방일지/ 우리들의 블루스 같은 것들..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고,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드라마들은 책을 읽고 얻는 것처럼 무언가를 얻게 된다.
동기부여가 되는 영상들을 보는 것도 좋지만, 잔잔하게 이런 휴먼드라마를 보는 것도 살아가는데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이런 드라마들 속에는 유난히 명대사가 많다.
차고 넘치는 명대사들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대사는 <눈이 부시게>의 엔딩대사이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에게...
김혜자 선생님의 목소리로 조용히 읊어지는 대사였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몇 번이나 눈물바람이었지만, 이 엔딩대사를 들으면 다시 한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데 그 이유는 드라마 내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나의 부모님이 생각나서였다.
우리 엄마도 나의 엄마이기 전에 엄마 자신이었을 테고, 엄마의 엄마의 딸이었을 텐데....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누구나 엄마의 인생은 한 인간의 삶보다 힘들 것이다. 나만 생각할 수 없고,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더 많을 테니까.. 그렇게 나의 엄마도 엄마 당신의 인생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을 살아왔겠지.
눈물이 났던 이유는 왜 엄마도 당신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내가 이제야 알았을까 하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어느덧 70이 된 우리 엄마의 인생을 눈이 부시게 해드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드라마는 치매 걸린 노인의 이야기지만, 노인이 되기 전의 젊음도 나오고 사랑도 나온다.
누구나 노인이 되기 전의 삶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젊음이고, 후회되는 과거이고 미련만 잔뜩 남는 지난 날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다. 매일이 눈이 부신 날들이었다'라고 말하는 치매 걸린 할머니의 말이 왜 이렇게 와닿을까.
나도 70 노인이 될 것이다.
그때 지금의 나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가 좋음을 알고,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을 느낀다.
그러나 나의 더 지난 젊은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나 미래만 생각하며 살았던 것에 비하면 지금 나는 충분히 오늘을 살고 있다.
많은 책에서 말하듯이, 성인과 현자들이 말하던 그 '오늘을 살라'가 어떤 뜻인지 알 것 같은 것만으로도
나는 많이 성장했다.
그래서일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오죽하면...이라는 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왜 내가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나보다 나이도 어린 사람 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명은 남편 친구이고, 한 명은 남편의 사촌동생이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다가, 그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다른 사람들보다 부유했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생의 희비를 물질적인 것으로만 판단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게 그렇지만은 않던데... 얘길 해줘도 받아들일 사람들은 따로 있을 뿐 대부분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믿고, 그게 옳다고만 생각한다. 경주마 같다.('앞만 보고 달리는'에서 달리는 건 빼고 앞만 보는 정해진 시야만 본다는 뜻으로 썼다.)
안타깝다.
오늘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를 읽었다.
랜디 포시도 오늘을 살라고 했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들의 하루가 얼마나 애틋했을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오늘이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오늘이라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살 가치가 있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그럼에도 살아서 좋은"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 것이니까.
한 줄 요약 : 그러니 오늘을 살자, 눈이 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