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스물다섯.
식상하긴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계획하는 건 일종의 의식이기도 하다.
어떤 책에서 새해니까, 일 년의 절반을 보냈으니까 등등 특정한 날을 시작점으로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했다.
매일 오늘의 태양이 뜨는 것이고, 그건 날마다 새로운 시작이니까 새해라고 특별한 날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백퍼 공감한다.
오늘 하지 못한 일을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49년 동안 느꼈으니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그림은 그려야 매일 새로운 오늘을 잘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새해'는 분명 충분한 동기가 된다.
2023년은 내 나이의 숫자 앞자리가 바뀌는 해다.
오십? 그냥 훅 오는 거야. 갑자기. 살다 보니 오십이 되는 거야.
'나의 해방일지'에서 나온 대사다. 그대로는 아니고 대충 뭐 이런 뜻이었다고 기억한다.
이 말에도 백퍼 공감한다.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 같던 오십.
예전엔 오십이 되면 죽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된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발악 댔는데, 무슨 재간으로 나만 오십을 피해 간단 말인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예전에 들었다면, 쌍욕을 날렸을 테지만 지금 누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준다면 너무도 큰 위안과 힘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오십이 된다고 하니 왜 이렇게 설레는지 나도 알 수 없다. 미친 건 아니겠지?
39살에 낼 당장 마흔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세상이 끝난 것 같더니, 마흔한 살에도 아가를 낳을 수 있고 마흔다섯이나 서른다섯이나 살아가는 게 별반 차이 없음을 느끼면서 오십에 대한 두려움도 사그라든 것 같다.
여전히 오십에도 마흔처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온몸으로 늙고 있음을 느끼겠지만, 우리 엄마가 이제 70이 된다고 생각하니 나도 엄마도 여전히 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인생의 진국이 오십부터라는데 그동안 내가 모르고 살았던 세상이 열리려나. 이런 해리포터 같은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특별한 계획이랄 것도 없이 오십을 시작할 것이다.
언제나 하던 것들을 하면서, 하지만 그동안 해왔던 것들이 커다란 인풋으로 쌓여 슬슬 아웃풋으로 나오겠지 하면서.
의지박약으로 하다가 멈춘 것들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어쩌면 아예 해본 적 없는 처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생길 수도 있으리라.
미루었던 것들, 예를 들면 목공을 배우거나 도예를 배운다거나 하는.
하지만 계획표에는 적지 않을 것이다.
막연히 세우는 계획표가 일 년 내내 밑줄도 그어지지 않은 채 날 것으로 남아있으면 뭔가 실패한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은 또박또박 계획표에 적을 것이다.
영어공부 다시 시작하기와 한 달 최소 5-6권의 독서하기, 매일 글쓰기 같은 것들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진행형인 것이다.
'하던 거 계속 꾸준히 하기' 이게 나의 2023년 계획이다.
이어서 한다는 것, 포기하지 않고 한다는 것, 농업적 근면성이야말로 가장 큰 스킬이라고 생각한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즐기기 않으면 꾸준히 할 수 없으므로 꾸준함은 곧 즐기는 것이리라.
새로운 것이 하나 추가되긴 했다.
종이신문 읽기다. 며칠 전부터 배달되는 종이신문을 새 해에는 습관으로 정착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제 4일째인데 이틀 치가 밀려있다. ㅋㅋㅋㅋㅋㅋ
신문보다 책이 편한데, 신문을 읽어야 지식인이 될 것 같아서 ㅋㅋㅋㅋ 일단은 억지로 읽고 있다.
2023년에도 온라인에서 죽기 살기로 살아남을 것이다.
나의 팬덤을 형성하고,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렇게 늘 하던 대로 나는 두 번째 스물다섯을 시작하고 싶다.
한 줄 요약 : 나의 새해 계획은 하던 거 그냥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