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라 전기(鍮達 傳奇) #10 사라연과 보현자

by 회안림

세 천녀가 사라진 자리엔 이제 잔향만이 맴돌았다.
형상도, 향기도 없이—그러나 마음에 스며들어 지워지지 않는 잔향.
허공엔 아직도 그들의 마지막 미소가 남아 있었다.
마치 어느 날 스쳐간 별빛이 하늘에 남긴 미세한 떨림처럼.


그 순간, 현옥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그것은 그녀가 배운 ‘심자의 결’도, 되뇌던 수행의 호흡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고 더 오래된, 이름 이전의 울림. 단 하나의 이름이 거기 있었다.

“사라연.”

이름이 떠오르자, 그녀의 전신이 떨렸다. 그것은 기억이 아니었다.

각성이었다. 잊혔던 삶들이,

수천의 감정들이 날개를 펴고 가슴속에 날아들었다.

붓을 처음 쥐던 순간, 도유사의 손등 위에 내려앉던 빛,

사라연으로서 마지막으로 본 보현자의 눈빛… 모든 것이 깨어났다.

그녀의 이마에 은은한 문양이 떠올랐다. 천계에서 부여받은 표식.

그것은 단지 힘의 상징이 아니었다.

존재가 감당해야 할 기억의 총체이자,

그 존재 자체의 진실이었다.

현옥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 고요한 공기 속에서,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정명을 선포했다.

“나는… 사라연이다.”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눈빛이 바뀌었다.

소녀의 눈이 아니었다.

수천 년 고요 속을 견뎌온 천녀의 눈이었다.

그녀는 일어섰다. 허무의 진동은 멈췄지만,

그 틈엔 여전히 고요한 어둠이 남아 있었다.

이제 그녀는 그 어둠을 넘어서야 했다.

그녀는 봉인의 앞에 섰다.

봉인의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바람은 이질적이었다.

온기도, 향기도 없었다.

그러나 그 바람을 마주하는 순간, 그녀는 직감했다.

저 너머에 잠든 존재가 얼마나 오랜 시간,

아무 말 없이 기다려왔는지를.

보현자는 절벽에 스스로 봉인되어 있었다. 살아 있으되,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함.

그의 손끝엔 미세한 진동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기다림의 진동이었다.

허공을 걸어간 그녀의 손이 그의 이마에 닿았다.

차가웠으나, 생명이 돌고 있었다.

오래된 별빛 같은 체온이었다.

그녀는 속삭였다.

“보현자… 이제 침묵에서 깨어나요.”

그의 눈꺼풀이 떨렸다.

사라연은 그의 귀에 다시 속삭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그 순간, 그의 눈이 열렸다.

그 눈동자엔 죄책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깊고 잔잔한 평온만이 있었다.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사라연...”

마침내 돌아온 존재를 알아보는 목소리.

그는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마침내 와주었구나.”

사라연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있어서 올 수 있었어요.”

보현자는 사라연을 꼬옥 껴안았다.

그는 미소 지었다.

"저는 아주 잠시만 머무를 수 있어요.

" "알고 있어."

둘은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눈빛만으로 충분했다.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그대로 해줄게."

“다음 생엔… 인간으로 만나요. 그땐 꼭, 사랑해요.”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꼭...”

잠시 후, 보현자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떠날 시간이야. 당신이 와줘서 내 안에 남은 것이 모두 사라졌으니까.”

그의 몸에서 빛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무너지는 것이 아닌,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듯한 빛이었다.

사라연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는 빛 속으로 흩어졌다.

고요 속으로. 영원의 끝으로.

사라연은 홀로 남았다.

그녀는 외롭지 않았다.
이제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묵조차,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사라연은 한 점의 미련이 없이 점 점 투명해져 갔다.

초혼재생의 술은 끝났다.

현옥은 본래 자신이 사라연이었는지 사라연이 자신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정명이란 본래 그러한 것이다.

선포한 순간 인간은 바로 그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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