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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스마망 Sep 12. 2023

계획한 것과 계획하지 않은 것

나의 계획과 신의 계획

  결의에 찼던 시작과 더불어 세웠던 나의 야심 찬 계획은 계획으로 남고 말았다. 책을 읽고 내용을 공유하겠다는 그럴싸한 계획을 세우고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달에 한번 책을 골라 틈틈이 읽을 시간도 내고 느낀 점도 빼곡히 정리하여 오랜만에 집중해서 글을 써보려고 했다. 그러나 현재 까지는 일단 실패하는 중이다.

이번 계획 실패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의 또 다른 계획에 있었던 세 번째 임신, 그리고 계획에 없던 입덧이었다.



  단번에 찾아왔던 첫째 둘째와 다르게 셋째는 한동안 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바로 되겠지라고 아무 의심 없이 꺼내 들었던 임신 테스트기의 단호한 한 줄에 당황했다. 건강하고 아무 문제없다고 자부했던 내 몸뚱이가 두 명 육아에 지친 건가, 그새 나이가 들었다고 이런 건가, 면역력이 떨어졌다고는 느꼈지만 이게 이럴일인가 싶은 생각에 세 달째부터는 걱정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몇 달을 긴장감과 기대감 사이에서 지냈다. 신경을 쓰려하지 않을수록 더 신경 쓰게 되는 아이러니도 경험했다. 내 마음을 하나 컨트롤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아기는 마음을 내려놔야 생긴다더니 그게 정말일까. 하지만 그리 꾸준하지 못한 성격인 나는 6개월 차에는 임신테스트기를 꾸준히 사놓지 않았고, 결과도 모르고 아무 일 없이 또 한 달이 지나가는 듯싶었다.


  그러나 나는 경력자가 아니었던가. 예정일 전부터 왼쪽 아랫배에서 쿡쿡 거리는 통증과 쳐지는 컨디션, 갑자기 붓기가 불어나는 몸, 이번엔 맞다 싶어 며칠을 참고 참다가 보이는 흐린 두 줄. 그리고 일 이주에 걸쳐 더욱 진해지는 두줄을 보며 나도 드디어 셋째가 생겼구나. 계획 성공에 대한 잔잔한 기쁨이 계속됐다. 일찍이 알게 된 임신으로 시간이 더디게 가는 듯했지만 5주가 지날 무렵, 셋째지만 처음 겪는 입덧에 당황할 새도 없이 먹덧과 체덧이 온몸과 신경을 공격해 댔다. 이런 게 입덧이었어? 어떻게 입덧이 나한테 이래를 외치며 그간 먹던 음식은 입에도 대지 못하고 하루종일 메슥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애들을 골골 거리며 돌보는 엄마가 되었다. 잠시도 먹지 않으면 울렁 거림, 그런데 또 음식다운 음식은 떠올리기만 해도 나올 것 같은 구토, 참아내려 쉴 새 없이 밀어 넣는 사탕과 비스킷, 쉬지 않고 쪼아대는 두통, 극초기부터 계속되는 설사에, 배 하나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누워도 불편한 자세, 이 모든 총체적 난국에 정말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게 지냈다. 둘째 때까지 입덧이 전혀 없어서 입덧이 심한 산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건 도대체 어떤 느낌인 걸까 궁금했는데 그건 절대 궁금해서는 안될 것이었다.


  그래도 첫 번째 정기검진에서는 잘 지어진 아기집과 다부진 심장 소리를 듣고 이렇게 작은 생명이 내 안에서 열심히 자라고 있어서 이렇게 힘든 거구나, 아기도 이렇게 힘을 내는데 엄마가 강해야지, 버티고 버텼다. 다음 정기 검진에는 셋째지만 처음으로 남편이 함께 병원에 따라나섰다. 남편이 직접 듣는 심장소리는 처음.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기차소리인지 말발굽소리인지 헷갈리는 심장 소리를 기대하는 나와 남편의 눈빛에 부응하지 못하셨다. 급격히 줄어든 말 수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의사 선생님과는 정반대로 그 순간은 내게 슬로모션으로 남아있다. 아무리 찾아도 찾기지 않는 심박수를 잴 땐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너무도 낮은 심박수로 간신히 반짝이던 작은 심장. 평소 빠르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더욱 나지막해지셨고, 아주 천천히 내 귀에 꽂혔다. 초음파 사진을 받아 드는 내 손끝이 마구 떨렸던 순간. 큰 남편의 눈동자가 더욱 동그래지는 모습. 모든 순간들이 왜 이렇게 생생하게 남아있을까.


  그렇게 나름의 계획 끝에 반년만에 찾아와 험난한 입덧을 함께 헤치고 나갔던 셋째는 나를 떠났다. 주변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들었다. 내 친구는 무어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고 It happens..라고 말을 줄였다.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겪어 보지 못한, 겪어 봤더래도 그것을 마땅히 위로할 말은 없었다. 화유 (화학적 유산)이나 계류유산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들었지 그게 나에게 해당될 거라는 생각은 거만하게도 해보지 않았다. 결혼초부터 세명을 원했던 우리 부부는 첫째와 둘째 임신 기간 동안 평탄했던 덕에 셋째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입덧다운 입덧 한번 없었고, 배도 많이 나오지 않아 막달 앞두고 성산일출봉도 오르내렸다. 이번에도 수월하겠지, 그렇게 힘들게 뭐가 있겠어. 임신만큼은 자신 있다! 고 오만함에 꺼냈던 말들.. 조금 더 조심할걸, 그러지 말걸, 입덧 때문에 너무 힘들다 푸념한 소리를 들은 걸까 이제와 후회로 맴돈다.


  아직도 가끔은 그날, 셋째만에 처음 같이 진료를 따라나선 남편과 행복하게 들었을 그 심장 소리는 어땠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남편은 회사 때문에 한 번을 못 가다 그날 처음 시간을 내서 갔다. 그간 정기검진에는 남편과 같이 오는 산모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극 T인 사람으로서 남편이 휴가를 아껴 차라리 여행에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주중에 가는 병원인지라 혼자 나서도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가겠다고 하는 남편의 의중을 의심하며 극심한 입덧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향했더랬다. 혼자 갔다가 들었으면 너무 무섭고 더 힘들었을 것 같은 그날의 시간을 덕분에 버텼다. 이래서 남편 노릇은 한다는 거구나. 배속의 아가는 버티고 버티다가 엄마아빠한테 천천히 뛰는 심장으로라도 인사는 하고 가려고 그랬던 걸까. 진료 후 나오자마자 갑자기 찾아온 복통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 배에 손을 얹고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끝에 아픔이 싹 사라졌다. 더 이상 울렁이지 않는 속과 모든 증상들이 없어져 돌아오는 차에서는 너무나 가뿐했던 그 순간이 아마도 네가 떠난 순간이겠지. 그 순간에도, 의사 선생님께서 심박수가 너무 낮다고 하셨을 때도 울지 않았다.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에. 의사 선생님께서는 일주일 정도 지켜보자고 했지만 진료 후 너무나 멀쩡해진 나의 몸상태에 뱃속의 아기와 연결되었던 것이 끊긴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다음날 혼자 찾은 병원에서는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도 잘 안 날 만큼 흠뻑 슬펐다. 하지만 심장이 멈추어 버린 아기의 초음파 장면은 한동안 눈을 감으면 보일만큼 깊은 잔상이 남아있다.  인사다운 인사도 건네지 못했지만, 건강해져서 다시 찾아 올날을 엄마는 네가 다시 올 날을 언제든지 기다릴 수 있어. 할 말이 참 많지만, 다시 만난 날에 마저 하려고 아껴둘게. 다시 만나면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자.



  다시 한번 위의 문장을 반복한다.

이번 계획 실패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계획에는 전혀 없었던 계류유산이었다.


  내 마음 정리가 생각보다 어려워 몇 번이나 글로 정리해보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떠오르고 무너지는 마음에 다시 글을 쓰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모르겠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난생처음 겪는 어려움과 어지러운 마음을 꽁꽁 얽히고설켜 꼬여버린 실타래를 푸는듯한 심정으로 풀어나갔다. 시간이 지나도 결코 내 마음에 닿는 아픔은 가볍지 않았고 심장을 묵직하게 때렸지만, 그게 다행히도 내 하루를, 나를 왕창 짓누르진 않았다. 때때로 떠올라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기도 했지만 앞에서 웃어젖히는 두 아이의 존재에 소중함을 느끼고, 감사하며 더 이상 복잡해질 틈도 없이 하루하루를 이래저래 보냈다. 나에게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어느 날 내게 닥쳤을 때, 그걸 이겨내게 해주는 힘은 결국 아이들이었다. 그렇지 엄마는 강하지. 도무지 무너져 내릴 시간을 주지 않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인생이 흘러가는 길목에는 내가 선택하고 계획한 것들도 있지만 나의 계획과는 무관한 그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끝없이 나아가지만 결코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절감한 시간들을 보냈다. 만약 글을 읽는 당신이 계획한 대로 모든 게 이루어져 살아왔다면 그것은 엄청난 운이 작용한 것일 것이다. 나는 참 오만했다. 내 계획과 상관없는 일은 내가 주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신의 계획이라고 치부하기로 했다. 처음에 이 일을 겪었을 때 나는 내 오만과 교만으로 잘못을 해서 벌을 받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내 몸속에서 생명이 죽음을 맞이하는 벌을 주신답니까. 그러다 문득 내가 알지 못하는 신의 계획이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서 잘못된 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일 만큼은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무교로 살던 30년 동안 나는 끊임없이 내 속에서 이유를 찾고 잘못을 찾아내었다. 혹은 제삼자에게서. 종교를 가지게 된 이후로는 신의 개입이었다 생각하니,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더군요. 신의 영역에서 하는 일인가 봅니다 하며. 내가 아닌 다른 이유를 찾고 싶었던 불안정한 마음이 이내 평안을 되찾았다. 가슴에 돌이 얹힌 듯 무겁게 짓눌렀던 마음의 짐을 이렇게라도 전가해 본다.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이라는 미국의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 난 그냥 처맞은 거다. 신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난 알 길이 없지만, 앞으로는 내가 오만하고 교만하여 정신 차리라고 때리시더라도 조금만 살살 때려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최근에 초중고 아이들을 둔 선배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어머니의 한마디가 두고두고 머리를 울렸다.


“엄마 계획대로 되는 거 아무것도 없어. 그거 그냥 엄마의 계획일 뿐이야”


  그저 내가 세운 방향으로 열심히 내달을 뿐, 그 끝에 내가 생각한 계획 성공이 매번 있지는 않았다. 그 방향마저도 언제든지 반대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계획을 달성하기는 어른이 되어서도 참 어려운 것이구나. 아니, 오히려 어른이 되어서 더 어려워지는 것도 같다. 계획은 계획일 뿐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말처럼. 그래도 그 인생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현재까지 내 인생은, 내 계획은 일부 실패여도 다른 길로 우회할 수도, 아직 다시 도전할 시간도 충분히 남아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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