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의 마을 벳푸, 뜨거운 땅의 숨결

지구의 심장 박동과 함께 사는 사람들

by 진주

차에서 내리자, 아주 강한 유황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켰다. 도시 곳곳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수증기 구름은 마치 도시 전체가 거대한 가마솥인 양 느껴졌다. 수증기 사이로 드러난 일본 전통 가옥과 정원의 풍경은 묘하게 현대에 살고 있으나, 동시에 현대가 아닌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옆에서는 여전히 개발의 현장이 공존하며,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벳푸는 그렇게 뜨거운 환영 인사를 건넸다.

‘벳푸(別府)’라는 이름은 ‘갈라진 땅의 마을’을 뜻한다. 실제로 이곳은 지각이 갈라져 형성된 함몰 분지 위에 세워진 도시다. 땅의 균열 사이로 솟구치는 뜨거운 숨결이 사람들의 삶을 데워왔다. 이름부터가 이미 이곳이 지구의 상처이자 온기의 터전임을 말해준다.

벳푸의 해지옥은 규슈 동부의 벳푸–시마바라 그라벤 단층대 위에 자리한다. 땅속 200미터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섭씨 98도의 온천수는 하루 13만 톤에 달한다. 약 3,000여 개의 온천 출구가 이 흐름을 만들어내며, 이는 분당 80,000리터 이상이라는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벳푸는 말 그대로 ‘지구의 체온’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도시였다.

벳푸의 뜨거운 숨결은 근처 활화산대의 힘에서 비롯된다. 규슈 중앙의 아소산과 서쪽의 쿠쥬산은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는 활화산으로, 그 마그마 에너지가 지하 깊숙이 스며들어 벳푸의 수증기와 온천으로 솟아오른다. 벳푸는 화구 바로 위에 놓인 위험 도시라기보다는, 활화산 지대가 빚어낸 혜택을 가까이서 누리는 마을에 가깝다. 물론 아소산 분화 시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이곳까지 날아오기도 하고, 지진과 같은 지각 활동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방재 시스템과 온천 지대 관리 덕분에, 벳푸는 ‘위험’보다는 ‘지열의 은혜’를 더 크게 안고 살아가는 도시였다.

이 뜨거운 숨결은 단순한 관광의 볼거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지열을 취사와 난방, 온수, 농업 온실에 활용해 왔다. 마을 곳곳에는 증기가 흐르는 배관이 있어 겨울에도 집 안이 따뜻하다. 길모퉁이 공방에서는 온천 수증기로 달걀이나 고구마를 쪄내는 풍경이 이어지고, 여행객은 이를 맛보며 이곳의 일상과 공존한다.

온천 수증기로 찐 달걀의 껍질을 까니 단단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완벽한 반숙이 드러났다. 붉은빛을 띠는 노른자는 마치 땅의 체온을 고스란히 품은 듯했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갓 쪄낸 달걀을 입에 넣는 순간 그 냄새는 사라진다.

해지옥 주변의 연꽃정원에는 유황빛 연못 위로 둥근 연잎들이 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방석을 펼쳐놓은 듯했다. 그 위로 피어난 연꽃은 뜨거움 속에서도 고요했고, 그 고요함은 오히려 삶의 열기를 닮아 있었다.

나는 족탕 벤치에 앉아 발끝에 닿는 자연의 뜨거운 지열을 느꼈다. 족탕을 마친 사람들의 종아리는 붉게 달아올라, 마치 붉은 양말을 신은 듯했다. 벳푸의 사람들은 이 뜨거운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왔다. 그러나 도시 곳곳에는 개발을 위한 공사 현장이 늘어나고, 그 속에서 전통적 풍경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모습도 엿보였다.

땅이 내는 숨결과 인간의 호흡, 그리고 변화를 향한 발걸음이 나란히 이어지는 곳. 족탕에서 종아리까지 붉게 달아오른 채 나는 생각했다. 벳푸는 땅의 심장 박동과 인간의 따뜻한 체온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였다. 그리고 그 온도를 느끼기 위해, 당신도 이 ‘갈라진 땅’ 위로 한 걸음 들어와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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