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 백 원짜리 우정의 희로애락

화투로 만나는 노년의 친구

by 진주

어둠이 깔리기 전,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어르신이 동네 공원을 나선다. 나는 그분의 경쾌한 뒷모습을 바라본다. 품속에는 오늘 하루, 점당 100원짜리 화투판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피박'에 속상해하면서도 웃고, '쓰리고'에 신이 나 환호했던 오후의 흔적.

처음엔 점당 10원, 돈만 왔다 갔다 하니 재미가 없으셨다고 했다. 나에게 털어놓으신 말씀의 핵심은 돈이 아니었다. 손끝에 감도는 적당한 긴장감, 패를 놓을 때 느껴지는 찰나의 승부욕, 그리고 친구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바로 노년에게 가장 필요했던 '활력'이라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래서 올린 점 100원. 어르신에게 이 화투 한 판은 쌉쌀하지만 놓칠 수 없는 노년의 활력소이자, 외로움을 걷어내는 따뜻한 난로와 같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그 활력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화투 칠 때 어르신이 가장 좋아한 패는 둥근달이 있는 광이다.

그 패를 잡을 때마다 “광이다!” 하고 외치시니, 나는 깜짝 놀라곤 했다.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 어르신이 좋아하는 '8월 광'의 둥근달 그림을 색칠해야겠다.

어르신의 둥근달에는 어떤 시간이 머물러 있을까? 그 달빛 속에는 젊은 날의 추억, 함께 웃던 친구들, 그리고 이제는 그리움으로 남은 얼굴들이 고요히 비치고 있을 것이다.

동네 또래 친구들이 있어 어르신은 행복하다.

오늘은 단짝 친구와 함께 밥도 먹고, 텔레비전도 보고, 해가 질 무렵 화투판도 벌이셨을 것이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끊이지 않는 하루. 혼자 계실 때 공간을 점령하던 무료함이 끈끈하게 발목을 잡기도 했지만, 친구들이 오는 날은 아침부터 집단장하느라 바쁘셨다.

“단짝 친구랑 밥도 같이 먹고, 텔레비전도 보고, 화투도 치는 내 노년이 행복하다. 화투가 내 노년의 친구가 될 줄 몰랐구나.”

나는 그 부지런함이야말로 건강의 원천임을 잘 안다. 깨끗한 방에 앉아 함께 섞는 화투패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리듬이다.

해가 완전히 숨기 전, 늘 들르는 동네 공원.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은 벤치는 할머니들의 야외 노인정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며느리 이야기, 손주 자랑을 늘어놓는 시간. 어르신께서 그 속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놓인다. 가만히 앉아 이 모든 풍경을 바라보며 "누가 보면 요양사로 호강하는 줄 알겠어"라고 스스로 농담하시는 모습에서, 나는 자연이 주는 넉넉한 여유 속에서 감사함을 찾을 줄 아는 분의 진정한 지혜를 배운다.

집에 돌아와 혼자 남은 시간에는 화투패로 운수도 점치고, 머리를 굴려 계산도 하시는 모습은 나에게도 익숙하다. 손으로 하는 만들기와 종이접기, 그림 그리기도 꼼꼼하고 차분히 잘 해내신다. 보호자이자 간호사로서 어르신의 인지 기능과 소근육 움직임을 관찰할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나이 들어서야 이 화투가 이렇게 좋은 친구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는 어르신의 말씀. 친구들과 함께할 때는 유쾌한 오락이 되고, 혼자 있을 때는 머리를 식히고 다듬는 놀이가 되는 것이다.

창가에 비치는 어르신의 모습은 늘 웃고, 여유가 있으며,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어느덧 희끗해진 머리카락만큼이나 삶의 굴곡을 다 지나온 그분에게, 오늘 하루의 화투판은 가장 진솔한 위로이자 즐거움이다.

"화투가 친구여."

나지막이 읊조리시는 어르신을 보며, 나도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늙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오늘도 100원짜리 동전 몇 개와 1000원짜리 지폐 몇 장을 챙기시는 어르신의 경쾌한 발걸음을 지켜보며, 그분의 평안하고 행복한 황혼을 마음속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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