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늙어가는 풍경
깊어진 할아버지의 치매로, 어르신은 밤잠을 설쳤고 불안에 떠는 날이 많았다. 어르신 자신도 치매를 앓고 있었기에 할아버지를 수발하는 일상은 버거움을 넘어선 고통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쌓여온 할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미움은 어르신의 건강을 갉아먹었다. 할아버지보다 어르신의 상태가 더 심각해 요양원에 가야 할 정도였다. 가족들은 그런 어르신의 마음을 헤아려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어르신이 사는 집은 정면에 현관문이 없다. 거실 창문을 열면 오른쪽에 목욕탕이 있고, 왼쪽에는 냉장고가 자리한다. 그 안쪽으로 넓고 큰 안방이 여닫이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어르신은 바로 그 방에서 병든 시어머니를 10년 동안 봉양했다. 자식 넷과 함께 북적이던 그 방은 이제 치매를 앓는 두 노부부의 신혼집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입소하던 첫날 저녁, 어르신은 텅 빈 거실문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주간보호센터 차량이 서던 바로 그 자리. 이제는 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그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식사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많았지만 식사도 하지 않고 그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 종일 집에 가고 싶다며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어르신은 남편이 요양원에 가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다고 했다. "40년의 세월 동안 남보다 더 남처럼 살았다 생각했는데, 인생의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전부였다는 것을." "지지고 볶던 지난날도 결국은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음을 알았다"라고 했다. "힘들더라도 함께 살다, 이 집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싶다"라고 했다.
그렇게 하루 만에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왔다. 어르신은 할아버지를 향한 마음을 해결하고 그를 온전히 수용하게 되면서 자신의 건강을 회복했다. 한 달 사이, 어르신의 볼은 통통하게 차오르고, 수저를 드는 손의 떨림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러다 내가 먼저 갈 것 같아, (할아버지를) 데려오라"는 그 말씀에 내 마음은 한구석이 묵직해지는 동시에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한 그 모습에 내 가슴이 찡했다. 예전에는 죽는 게 낫다고 했지만, 이제 음식도 드시겠다고 하며 식사량이 70%까지 늘었다.
내가 방문하면 어르신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며 흥이 났다. 갈 때마다 하시는 이야기라 이제 나는 거의 외울 지경이었다. "시집왔더니 건달이었다. 일은 안 하고 춤만 추러 다녔다. 내가 집 몇 채를 살 수 있는 돈으로 도박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싫다는데 왜 결혼을 시켰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치매임에도 목욕 습관은 잊지 않고 하루에도 두 번씩 목욕을 하신다는 이야기까지,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부부란 어떤 인연일까. 남녀의 사랑으로 시작해 서로에게 연민과 측은지심이 생기고, 나중에는 부모와 자식처럼 서로를 돌보는 존재가 된다. 하루라도 더 늦게 가길 바라는 의리로, 인생의 황혼을 함께 나누는 존재. 홀로 40년 이상을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를 볼 때마다, 이 어르신처럼 원수 같던 사람과도 함께 노년을 보내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삶인지 나는 새삼 느낀다.
갈 때마다 "커피도 마시고 가라, 밥도 같이 먹자"라고 하던 어르신. "누가 이런 늙은이를 챙기냐"며 자식보다 낫다고 하셨다. 나에게 "복 받으라"는 축복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단 2분 거리, 출퇴근길에 들러 얼굴을 뵙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고마워했다.
오늘도 어르신은 당신의 몫인 빵 네 개 중 세 개를 내게 건넸다. 매번 식량을 나누시지만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그 손길에서, 나는 팍팍한 삶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는 따스한 정을 느꼈다. 받지 않으면 어르신이 서운해하시기에, 나는 일단 받고 옆에 사는 따님에게 살짝 놓고 출근했다. 어르신의 모습에서 나의 어머니, 그리고 어쩌면 먼 미래의 내 모습을 본다. 오늘도 그분께서 건네주신 훈훈한 온기 덕분에, 나의 하루는 이미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인생의 황혼 속에서 피어난 이 소중한 인연에 나는 깊이 감사한다. 나의 작은 것에도 힘을 얻는 어르신을 보며 나의 역할의 소중함과 무게감을 느끼고, 이는 나의 오늘을 더 부끄럽지 않고 더 충성된 삶을 다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