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나, 그리고 잊고 지낸 나와의 동행
누군가와 ‘어깨동무’했던 순간이 있었는가. 뜻밖에도, 내게 그 순간은 ‘수학’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2016년, 여자 중학교 2학년 교실. 아이들을 보는 순간, 열다섯 살의 내가 겹쳐 보였다.
1977년의 나는, 말똥만 굴러가도 깔깔대던 아이였다. 왁자지껄한 무리 속에 있진 않았지만, 필요할 땐 날렵하게 움직였고, 체육 시간에는 선생님이 “기계체조를 한번 해보라”고 권하실 만큼 몸놀림이 좋았다. 매트를 굴러다니고 평행봉에 오르던 날들 속에서도, 내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교실이었다.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문제를 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공책 위의 수식들이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하얀 간호복을 입고 환자 곁을 지키는 또 다른 꿈이 있었다.
아동기를 벗어나는 길목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행복해야 할 시기라 믿었다. 그러나 교사로서 처음 마주한 2016년의 여학생들 교실은 첫 교단에 섰던 날보다 더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모두의 시선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아이들과 정말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까?” 처음엔 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노래하고, 꾸미고, 그리고 표현하는 감성, 성실하게 과제를 해내는 집중력 속에서 가능성이 보였다. 그 장점과 재능, 꿈과 희망에 ‘수학의 옷’을 입혀보기로 했다.
“얘들아, 이 숫자의 특징을 생활 속에서 찾아볼까?”
“선생님, 악보요!”
“그림에서도 본 것 같아요.”
“맞아! 우리 수학에서는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아볼까?”
인문 과목과 수학을 연계한 토론도 시도했다. “독도는 왜 우리 땅인가.” 아이들은 역사적 근거를 찾고, 지도와 거리 비율을 계산하며, 통계 자료를 분석했다. 서로 반론을 주고받으며 수학적 접근, 협업, 비판적 사고가 동시에 교실 안에서 살아 움직였다. 그날, 아이들의 눈빛은 그 어떤 시험 준비 시간보다 반짝였다.
그 반짝임은 오래전 내가 느꼈던 감정과 똑같았다. 겨울바람이 매서운 고등학교 시절의 아침, 난로 위 주전자가 김을 내뿜던 교실. 나는 칠판 앞으로 나가 친구들에게 수학 문제를 풀어주며 설명했다. 분필 가루가 허공에 흩날리고, 친구들의 고개 끄덕임이 이어지던 순간. 그 온기 속에서 나는 수학이 단순한 과목이 아니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기억은 지금 내 수업 방식의 바탕이 되었다. 그래서 일상의 문제를 수학으로 해석하고 발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색종이와 교구를 활용한 체험 수업은 수학을 두려워하던 아이들에게도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교무실 책상 위에는 아이들이 만든 책갈피와 엽서가 쌓였다. “선생님, 오늘 수업 재밌었어요.”라는 글귀는 수학을 ‘점수’가 아닌 ‘관계와 경험’으로 바꾸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수학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였다. 그 다리를 건너며 나는 ‘1977년의 나’를 만났고, 2016년의 아이들은 내 하루를 다른 결로 물들였다. 우리는 선택과 상관없이 마주했고, 그해 겨울 수학으로 어깨동무를 하며 나는 잊고 지냈던 나와 다시 숨을 맞췄다.
그 어깨동무는 교실에서 끝나지 않았다. 삶 속에서, 관계 속에서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교탁 앞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그 손을 잡는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삶과 사람, 그리고 오래 잊고 지낸 ‘지난날의 나’와 어깨동무를 해보길 바란다. 그 순간 알게 될 것이다. 행복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함께 걷는 발걸음 속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