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고흐, 밀밭과 별빛 사이

고독과 삶, 예술의 교차점

by 진주

세상에는 두 가지 고독이 있다.
하나는 삶을 지탱하기 위해 견뎌내는 고독이고,
다른 하나는 결국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고독이다.

반 고흐의 삶과, 내가 방문했던 어느 어르신의 이야기는 그 두 가지 고독이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보여준다.


고흐는 평생 질병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지만, 그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탱하려 노력했다. 그는 병원 입원 중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는 정원과 창밖 풍경,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림으로 옮기며 자신의 불안을 다스렸고, 색과 선으로 내면의 고통을 표현함으로써 스스로를 치료하려 했다. 그는 약물과 의사의 도움도 받았지만, 진정한 안식과 평화는 오직 그림을 통해 얻고자 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 마음을 달래주는 최고의 치료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마을 콰트헨드르트에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은 종교적이고 엄격했지만 동시에 예술과 학문을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고흐는 6남매 중 장남으로, 동생 테오와 특히 깊은 유대를 맺었다. 테오는 평생 고흐의 정신적·경제적 후원자였으며, 그의 작품 세계가 이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 그러나 고흐는 평생 결혼하지 못했다. 젊은 시절 몇 차례 사랑에 빠졌으나 번번이 거절당하거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는 그에게 큰 상처로 남아 더욱 고독한 삶을 만들었다. 결국 그는 가족과 사회 안에서 안정된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오직 그림과 테오와의 서신 교류 속에서 삶을 이어갔다.


“테오, 네가 없었다면 나는 그림을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흐는 짧은 생애 동안 늘 고통과 질병을 짊어졌다. 발작과 환청, 간질과 우울, 그리고 무너져가는 정신의 균형. 그는 귀를 자해하며 자신을 짓눌러오던 절망을 쏟아냈고, 결국 밀밭 한가운데서 권총을 들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도 그는 매일 붓을 들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소용돌이치는 밤을 그렸고, 까마귀가 날던 밀밭을 그렸다. 고흐에게 그림은 질병을 견디는 유일한 치료제이자, 세상과 이어지는 마지막 끈이었다.

고흐는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도 컸다. 특히 동생 테오는 늘 그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었다. 테오는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편지를 통해 끊임없이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또한 친구 화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고흐는 외로움을 달래고, 작품 활동의 의미를 되새겼다. 무엇보다 그는 붓과 캔버스를 붙잡으며 스스로의 병을 다스리려 애썼다. 그림이야말로 그의 가장 강력한 치료였고,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은 생의 방식이었다.

그의 말년은 극도로 불안정했지만, 동시에 가장 치열한 창작의 시간이기도 했다. 오베르 시골 마을에서 그는 매일같이 들판으로 나가 밀밭, 사이프러스, 구름, 하늘을 그렸다. 당시 그의 눈앞에 펼쳐진 환경은 광활한 밀밭과 이를 가르는 좁은 길, 때로는 까마귀 떼가 날아오르는 장면이었다. 이 풍경은 고흐의 내적 불안을 그대로 반영한 듯 보였고, 동시에 그가 마지막으로 붙잡은 생의 무대이기도 했다.


“나는 매일 들판에 나가 하늘과 밀밭을 바라본다. 그것이 내 안정을 준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에 이렇게 남겼다.

“슬픔은 끝나지 않지만, 이제 자유로워지고 싶다.”
“나는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꾼다.”


1890년 여름, 그는 밀밭에서 스스로를 쏘았고,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시선은 자신이 수없이 그렸던 밀밭과 하늘, 별빛이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별이 빛나는 밤」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고흐의 내면을 수학적 패턴과 자연의 질서 속에서 표현한 작품이다. 밤하늘의 소용돌이치는 별빛은 유체의 난류를 연상시키며, 이후 과학자들이 연구한 수학적 모델과도 연결된다. 고흐는 무의식적으로 자연의 질서를 탐구하며, 혼란 속에서도 법칙과 조화를 찾고자 했다. 별빛과 사이프러스, 휘돌아가는 선들은 그의 고통을 넘어선 초월의 언어였고, 죽음 너머의 세계를 향한 시선이었다.


“내 그림 속에는 자연의 질서와 리듬이 숨어 있다. 그것을 찾는 것이 나의 행복이다.”


내가 방문했던 어느 어르신의 모습도 이와 닮아 있었다. 65세 독거, 파킨슨병의 악화로 보행과 앉고 일어섬조차 곤란했다. 고혈당과 식이관리 부재로 혈당조절도 되지 않았다. 결국 요양원에 6개월 정도 머물렀지만 퇴소했고, 집은 팔리지 않았으며 형제들 집 근처로의 이사 계획도 지연되었다. 요양보호사의 지원만으로는 일상이 채워지지 않았고, 결국 아침 요양보호사가 출근하자 의자를 딛고 빨랫줄에 매달려 생을 마감했다. 그 의자와 빨랫줄은 그의 밀밭이었고, 마지막 선택이었다.

고흐와 수학자들이 겪은 내적 방정식은 서로 닮아 있다. 고흐는 수학자들이 공식과 방정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 했듯, 자신의 내적 혼란과 질병 속에서 그림이라는 도구로 삶을 계산하고 질서를 찾으려 했다. 밀밭의 반복되는 선, 소용돌이치는 별밤, 사이프러스의 리듬 속에서 그는 패턴과 구조를 인식했고, 문제 해결과 집중을 통해 고통을 견뎠으며, 논리와 직관을 동시에 활용했다. 수학자가 방정식 속 해를 찾듯, 고흐는 붓질과 색채 속에서 초월적 평화와 의미를 탐구했고, 시간과 변화를 그림 속에 담아 자신의 존재와 감정을 기록했다.

이렇게 고흐의 예술적 탐구는 노년 방정식 속 수학적 천재들의 사고와 맥을 같이하며, 인간의 고통과 창조,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keyword
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