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토지사상(기원전 5세기의 <12표법>)
당신은 신분제가 폐지되었다고 믿는가?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합법적으로 착취하는 제도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는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폭력적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신분제도는 그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부동산제도'라는 이름으로.
- 프롤로그 -
지금까지의 카카오톡 브런치의 가장 큰 방향성과, 필자의 <21세기 귀족>의 방향성이 다소간 다를 것이다. 허나 브런치를 애독하는 독자들 중에 필시 깊은 학구열과 경제적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이 글을 올리는 바이다. 이 글 <21세기 귀족>은 필자가 지난 3년 간 개인적으로 연구해온 결과물이다.
당신도 이 <21세기 귀족>을 통해, 오늘날의 부동산 기득권층이 꼭꼭 숨겨왔던 역사를 발견하길 바란다.
- 본문(16) : 고대 로마의 토지사상(기원전 5세기의 <12표법>) -
기원전 5세기 로마에서 토지법제사적으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기원전 451년에 제정된, 민중과 귀족 간의 갈등 사이에서 탄생한 로마사 최초의 성문법인 <12표법(leges duodecim tabularum)>이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법(私法) 중심의 법률이기도 하다. <12표법>으로 이루어진 그리스의 고르틴의 구성을 거의 그대로 본 따온 것으로 보이고, 법 제정 전에 아테네 등의 그리스 폴리스들의 법을 참고하기 위해 사찰단을 보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유사성을 10표에서 장례 비용의 제한에 관한 규정, 제 7표 1조와 2조의 토지경계의 규율, 8표 27조에서 단체의 취급에서 확인할 수 있다.[9] 내용적으로 로마법의 본질만큼은 순수하게 로마적이었으나[10] 그나마 성문법으로의 제정 덕분에 사법(司法)과 재판 등에서 귀족과 민중은 이제 평등해졌다.
법을 면밀히 살펴보면 성문으로 채권자의 권리 확립, 재산권을 보장 및 강화하는 등의 결과를 낳아 계층 간의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법의 내용, 그 옳고 그름, 각 계층의 이해관계의 반영의 정도, 최종적 법적 판단은 결국 기득권층인 귀족 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었다. 허면 과연 토지와 관련된 내용은 어떨까.
<12표법>은 온전히 전부 남아있진 않지만, 현재까지 확인할 수 있는 내용 중에 토지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조항들을 아래와 같이 추려보았다.[11] [괄호 안의 말]은 필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자를 국어로 옮겨 삽입한 것이다.
제 3표의 7
異邦人[이방인]을 상대로는 權原[권원, 어떤 행위를 정당화하는 법적 근거]의 擔保[담보]는 영구적이다.
제 6표의 3
토지의 경우에는 使用權原[사용권원]의 擔保(기간)[담보기간]은 2년이고⋯ 다른 모든 물건의 경우에는⋯ 使用(權原擔保其間)[사용권원담보기간,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권원을 담보해줘야 하는 기간]은 1년이다.
위 두 조항을 함께 이해해 보자면, ‘토지 매도인으로서의 로마인은 자국인 매수인을 위해 담보책임을 지는데, 자신이 매각한 토지에 대해서는 2년 그리고 동산에 대해서는 1년간의 담보책임을 진다. 매도인으로서의 외국인은 권원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무기한이다’로 이해하면 되겠다.[12] 여기서 두 가지를 알 수 있는데, 하나는 로마인들은 최초의 성문법을 제정할 때 지주에게 더욱 토지에 대한 책임을 다른 자산에 비해 더 크게 물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적어도 이때까지는 로마인들은 명확하게 토지와 그 외 모든 동산 등의 물건을 다르게 취급해야 하는 필요성 정도는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제 6표의 8
가옥이나 포도원에 接合[접합]된 木材[목재]는 支持[지지]하고 있는 한, 이것을 분리 하지 못한다. 12表法[표법]은, 竊取[절취]된 木材[목재]가 건물이나 포도원에 接合[접합]된 경우 그것을 분리하는 것도, 所有物返還請求[소유물반환청구]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접합한 행위가 有罪[유죄]로 인정된 자를 상대로 하여 2倍額[배액]의 訴權[소권]을 부여한다.
쉽게 말해 ‘부동산에 결합된 건축자재는 건물에 결합되어 있는 한, 분리할 수 없다. 건축자재의 본래 주인은 건축자재에 관하여 반환청구를 할 수는 없지만, 부동산 소유자가 건축자재를 취했던 행위가 불법인 경우, 건축자재의 소유주는 2배액을 배상받는 소송을 할 수 있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로써 악의로 훔친 게 명백 하더라도 자신의 부동산에 접합 시켰다면 피해자는 소송을 제기해서 배액의 변상만 받아낼 수 있을 뿐 건축 목재의 소유권자가 이에 대한 회수 등 온전한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서 두 가지 확인되는데, 첫째로 부동산 소유주는 즉시 자신의 토지에의 구성부분이 된 재화에 대한 권리를 아주 강력하게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또 부동산(“가옥이나 포도원”)에 대한 권리가 노동에 대한 권리(“절취된 목재”)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소유권자주의) 노동보다 재산을 우위에 두는 사고방식은 다른 문명권과 비교하자면 로마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사고방식이 만들어진 이유는 토지에서 창출되는 소득(지대)에 대하여 지주의 권리가 건국시키부터 독점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러한 사고방식이 강력한 관습으로 자리잡는 데에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지주권이 공권력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있던 로마만의 독특한 건국 배경이 필시 강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다른 문명권처럼, 예를 들어 훗날 게르만인들처럼 그들도 재산보다 노동에 우위를 두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주는 토지 아래에서 발견된 지하자원이나 보물에 대하여 결코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들은 지주의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지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사고방식은, 토지 매매 후에 해당 토지를 매입한 사람도 자연스럽게 독점적인 지주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근거를 제공한다. 소유권 행사의 근거는 노동이 아니라 (토지)재산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위 법은 지주권이 충분히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내포하는 법이기도 하며 이러한 문제점은 후술되는 다른 로마법들에서도 계속 확인하게 될 것이다.
제 7표의 8
公用地[공유지]를 경유하는 引水路[上水道][상수도 등]가 私人[사인, 개인과 같은 뜻]에게 損害[손해]를 입힐 경우에는 所有者[소유자]에게 損害[손해]가 塡補[전보, 전가하다와 같은 뜻]되도록 12表法[표법]에 기한 訴權[소권]이 그 私人에게 부여될 것이다.
쉽게 말해, ‘공유지를 통과하는 상수로가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 손해를 입은 사람은 상수로의 주인인 지주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지주에게 자신의 토지가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관리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토지공개념이 확인된다.
제 7표의 9
나무가 바람에 의하여 이웃 土地[토지]로부터 너의 토지로 기운 경우에는 너는 12表法[표법]에 의하여 그것의 除去[제거]에 관하여 정당하게 訴求[청구]할 수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A의 식목이 지주B의 토지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자랄 경우’에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일 것이다. 이를 통해 타인의 식목 등의 정착물(토지에 뿌리내린 식목과 건물 등등)의 소유주보다 지주의 권리를 우선시 있어서 그 개척자는 로마가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조항이 로마법을 유럽 및 독일(독일 민법 제 910조[13])이 계승하고, 그 유럽의 법을 우리나라(우리나라 민법 제 240조[14]) 등 아시아가 계승하였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거하는 조항이기도 하다.
궁금한 독자들은 지금 바로 우라나리 민법 240조를 검색해보시라. 거의 빼다 박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제 8표의 10
건물을 燒失[소실]시키거나 집 가까이에 쌓아 놓은 노적가리[곡식더미 등]를 燒失[소실]시킨 자는 (12表法[표법]에 의하면) 알면서 고의적으로 이를 犯[범]한 것인 한 포박되어 笞[태, 태형을 의미]에 처한 후 火刑[화형]에 처해지도록 명해진다. 그러나 우연히, 즉 過失[과실]로 犯[범]한 경우에는 損害[손해]를 賠償[배상]하도록 명해지거나, 혹은 그가 資力[자력]이 없는 경우에는 보다 輕[경]하게 懲戒[징계]된다.
제 10표의 9
(12표법은) 火葬用[화장용] 薪束[신속, 땔감 등의 묶음]이나 새로운 火葬場[화장장] 타인의 건물에 그 주인의 동의 없이 60步[보]보다 가까이 근접시키는 것을 금한다.
제 8표의 10항은 포괄적으로 전소 위험이 높은 동산들에 대한 조항이 아니라 불이 붙으면 부동산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조항이다. 이를 범하는 자를 태형 후에 화형에 처하는 것은 이제까지 확인된 <12표법>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높은 처벌이다. 제 10표의 9항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즉 명백하게 부동산과 소유주의 지주권을, 다른 종류의 재산과 그 권리에 비해 더 강력하게 보호하고자 함을 엿볼 수 있다.
로마 최초의 성문법인 <12표법>을 토지법제사적 관점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로 로마인들도 동산 등 다른 종류의 재산과 토지 등의 부동산이 다른 범주의 재산이라는 구분이 있었고, 이는 제 6표의 3 등에서 확인하였다.
둘째로 명백한 토지공개념이 있었고 이는 제 7표의 8 에서 확인하였다.
셋째로 부동산에 대한 재산권이 동산에 대한 재산권보다 우위에 있었고, 이는 제 6표의 8, 제 8표의 10, 제 10표의 9 등에서 확인하였다.
더불어 <12표법>은 이전 메소포타미아의 법제와 초기 그리스 법제와 비교해보면 뚜렷하게 사소유권의 고도화 또한 확인된다. 예를 들어 함무라비 법하의 지주들의 권리는 대부분 공권력의 개입과 간섭을 받아야만 행사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특히 27, 29, 34, 35, 37조에 명시된 지주의 권리들은 공권력의 개입 없으면 권리행사가 거의 불가하다. 고대 그리스의 몇 가지 토지 관련 법들도 대부분 그렇다. 허나 로마의 <12표법> 아래 지주들의 권리는 공권력의 도움이나 조치를 받지 않더라도 지주 스스로 법에 근거하여 행사할 수 있다.
이제 지주로서의 권리는 본격적으로 사적(私的)이고, 자율적인 차원에서도 충분히 행사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15]
이번 글에서는 기원전 6~5세기의 로마가 '토지 귀족들의 국가였다'라는 것과, <12표법>을 통해 개인적/절대적/배타적 로마적 토지사상의 단면들을 일부 확인하였다.
이러한 로마적 토지사상의 특징은,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약해지지 않을 예정이며 계속 이어지는 글에서 보게 될 것이다.
이제 기원전 4세기의 로마로 가보자.
References
[1] Max Kaser/윤철홍 옮김, 『로마법제사』(법원사, 1998), 83쪽.
[2] Simon Baker/김병화 옮김, 『로마의 역사』(웅진지식하우스, 2008.), 40~41쪽.
[3] 상게서, 43쪽.
[4] Kaser/윤철홍 옮김, 전게서, 29쪽.
[5] 김창성, “플루타르코스의 코리올라누스에 나타난 로마 귀족의 권위와 기반”, 「역사교육연구회」136(2015.12), 211~212쪽.
[6] Paul Veyne, Bread and Circuses: Historical Sociology and Political Pluralism, abridged and translated by Brian Pearson(London: Penguin, 1976), pp. 203~232; 김창성, 전게서, 207쪽에서 재인용.
[7] Plutarch/이성규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I』, 350쪽. 원문은 Plutarch, Coriolanus.
[8] 상게서, 349쪽. 원문은 Plutarch, Coriolanus.
[9] 최병조, 『로마法硏究(1)』(서울대학교출판부, 1995), 6쪽.
[10] Kaser/윤철홍 옮김, 전게서, 99쪽.
[11] 최병조, 『로마法硏究(1)』.
[12] 최병조, “고대로마 십이표법의 번역과 관련하여”, 『서울대학교 法學』51(2010.9), 13쪽.)
[13] 양창수, 『2018년판 독일민법전』(박영사, 2018)에서 제 910조의 1항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토지의 소유자는 이웃 토지로부터 경계를 넘어 온 수목 또는 관목의 뿌리를 베어내서 보유할 수 있다. 소유자가 이웃 토지의 점유자에 대하여 경계를 넘어 온 나뭇가리를 제거하기 위한 상당한 기간을 지정하였으나 그 기간 내에 제거가 행하여지지 아니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
[14] 2021년 우리나라 민법 제 240조는 아래와 같다. “①인접지의 수목가지가 경계를 넘은 때에는 그 소유자에 대하여 가지의 제거를 청구할 수 있다. ②전항의 청구에 응하지 아니한 때에는 청구자가 그 가지를 제거할 수 있다.”
[15] 최병조,『로마法硏究(1)』, 1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