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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영철 Dec 09. 2021

21세기 귀족(26)

고대 로마의 토지사상(1세기. 부동산발 금융위기(ii))

당신은 신분제가 폐지되었다고 믿는가?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합법적으로 착취하는 제도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는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폭력적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신분제도는 그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부동산제도'라는 이름으로.

 
  
  

- 프롤로그 -


 

지금까지의 카카오톡 브런치의 가장 큰 방향성과, 필자의 <21세기 귀족>의 방향성이 다소간 다를 것이다. 허나 브런치를 애독하는 독자들 중에 필시 깊은 학구열과 경제적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이 글을 올리는 바이다. 이 글 <21세기 귀족>은 필자가 지난 3년 간 개인적으로 연구해온 결과물이다.


당신도 이 <21세기 귀족>을 통해, 오늘날의 부동산 기득권층이 꼭꼭 숨겨왔던 역사를 발견하길 바란다.






- 본문(26) : 고대 로마의 토지사상(1세기. 부동산발 금융위기(ii)) -


서기 33년에 벌어진 로마사 최초의 부동산거품 붕괴로 인한 금융위기를 다른 시대의 금융위기와 비교해보라. 중세~근대의 프랑크왕국이나 신성로마제국에서는 부동산 버블붕괴 사건이 단 한번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의 토지사상이 로마적 토지사상과 거리가 멀어 지주가 사적 지대를 거의 독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양사 전체를 통틀어, 근대에 벌어진 버블경제 붕괴사건들 즉 17~18세기 중에 벌어진 네덜란드 튤립버블, 남해회사버블, 미시시피버블 등을 제외하면 그 이전까지 수천 년 동안 이렇다 할만한 버블 사건이 없다시피 하다. 게다가 위 같은 종류의 버블 사건들은 경제사에 다시 발생하지 않았다.


허나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버블사건들은 굵직한 것만 나열해도 19세기 중후반 미국에서 두 차례 벌어진 철도 버블사건, 1873~1896년 영국 중심의 유럽 장기불황(The Long Depression), 20세기 초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1980년대 일본 버블사건, 2008년 금융위기(The Financial Crisis) 등 수많다. 근대 자본주의가 발달한 이후 여러 종류의 버블사건 중에 부동산 시장의 버블이 촉발한 경제위기는 왜 이토록 자주 ‘반복’되어 일어난단 말인가?


그 이유는 바로 토지사상 및 토지제도의 차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토지사상과 토지제도는 고대 로마처럼 지주에게 공개념적 토지 이용 및 지주로서의 부담을 요구하지도 않고 그 토지에서 발생하는 전체 지대의 거의 전부를 사익으로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오직 이익 및 시세차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막대한 자본이, 투기성을 띄고 생산시장이 아닌 부동산시장에 쏠리게 하는 매혹적인 동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부동산에 버블이 형성될 수밖에 없고 그 종착지는 토지양극화로 인한 극심한 빈곤층 발생, 그리고 그 거품 붕괴와 막대한 경제침체다. 80년대 이하에 태어난 독자라면 이미 이를 최소 3번 보거나 겪었다. 첫째는 1989년 일본의 부동산버블 붕괴 사건이요, 둘째는 1997년 우리나라의 IMF사건이요, 셋째는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건이다.


1세기와 로마적 토지사상과 현대적 토지사상의 공통점들을 찾자면 첫째로 토지 소유에 따르는 군역 등의 다소간 무거운 의무(군역토사상)도 없으며, 둘째로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토지에서 나오는 유익과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사고방식(토지주권사상, 토지평등사상)도 없고, 지주의 토지 이용과 처분이 이웃들과의 공공복리에 부합해야 한다는 사고방식(토지공개념)도 없다. 즉 지주에게 토지와 그에서 나오는 모든 지대 및 불로소득에 대한 절대적, 개인적, 배타적 권리가 보장되며 부동산 소유에 따르는 부담이 전혀 없는 것이다. 황제조차도 지주들에게 공적 부담을 마음대로 부과할 수도(왕토사상, 국토사상) 없었다.


당시 로마巿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인구 밀도와 토지 수요 덕분에 지주가 노력하지 않아도 토지의 고유 특성인 필수성과 희소성이 크게 작용하여 지가가 필연적으로 천정부지로 솟았다. 이와 관련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앞서 언급했듯이 누군가가 카이사르에게 약 11억 달러를 받고 포룸이 건설될 토지를 매각한 사건이 되겠다. 그 사건과 정황을 고려해보면 약 한 세기 이후 티베리우스의 치세 중에 로마사 최초의 부동산 버블 붕괴가 발생한 것은 놀랍지도 않다. 허나 5세기에 시작된 유럽사 즉, 게르만 역사에서는 이후 약 천년 이상 이렇다 할만한 부동산 버블 붕괴가 없었다 아니,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 또한 바로 로마적 토지사상과 게르만적 토지사상의 차이에 있다. 핵심은 양자는 단일한 토지에서 발생하는 전체 지대 100%에서 지주가 독점할 수 있는 ‘사적 지대’와 공동체로 환수되어 함께 누려야할 ‘공적 지대’의 비율이 각기 다르다는 것에 있다. 로마적 토지에서 발생하는 전체 지대 100%에서 사적 지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99%에 달하기 때문에, 투기성을 띄고 시세차익을 목적으로한 자본이 부동산 시장에 거품으로써 흘러들어가는 것은 필연이다. 훗날 붕괴하게 되면 그 거품의 크기만큼이나 막대한 경제침체가 발생한다.


반면 게르만적 토지에서 발생하는 사적 지대의 비율 로마적 토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버블이 낄 확률, 부동산 버블 붕괴가 발생하는 확률이 낮다. 물론 1500년 게르만 즉 유럽의 역사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게르만적(토지공개념적) 토지사상의 퇴색이 진행되었지만, 중세가 시작된 이래 최소 천 년 이상 로마와는 달리 부동산 시장의 거품으로 인한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던 비결은 바로 이에 있었다. 이에 대해선 자세히 후술하도록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아우구스투스 치세의 이탈리아 전체 인구는 750만이었고 그 중에 300만은 노예였으나[1] 그의 죽음 이후 노예 수가 감소추세로 진입하자 소득 감소를 더 크게 느낀 지주귀족들은 자영농들을 마치 자신의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소작농으로 전환시키는 방식으로 경제적 돌파구를 찾았다.[2] 토지양극화로 인해 극빈에 처한 자영농이 소작농의 지위로 처해지는 경우가 속출하는 시대적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요구였다. 언급했듯 이 모든 것은 지주가 절대적 힘을 가지는, 지극히 로마적 토지사상에 기반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편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이집트, 시리아, 갈리아(현재 프랑스 남부), 스페인, 아프리카 등 제국의 동서 주요 지역도 부동산양극화가 진행되었는데[3] 당대의 프라니우스는 과장을 살짝 섞어 아프리카 대륙에서 로마가 지배하는 토지의 절반은 6명의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4]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로마 문명과의 접촉에 따라 1세기 말부터 게르만족도 급속하게 토지양극화와 이에 따르는 계층 분화가 이루어졌다.[5]


한편 최근에 발견된, 서기 70~73년 마사다의 항전[6]에 참여했던 로마 병사 급여명세서는 토지법제사적으로 주목할 만하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약 1900년 전, 마사다 항전에 참여했던 로마 병사의 급여명세서 조각(DrJeBall/Twitter.)


Gaius Messius, son of Gaius, of the tribe Fabia, from Beirut.’


I received my stipendium of 50 denarii, out of which I have paid barley money 16 denarii. […]rnius: food expenses 20(?) denarii; boots 5 denarii; leather strappings 2 denarii; linen tunic 7 denarii. And the total of deductions is 50 denarri.[7]


 베이루트의 파비아 일족에 속한 가이우스의 아들인, 가이우스 메시우스.


나는 군 봉급으로 50 데나리우스를 받았는데, 이중에 보리 값으로 16데나리우스를, 식사비로 20데나리우스를, 장화 값으로 5데나리우스를, 가죽 끈 값으로 5데나리우스를, 아마포 상의 값으로 7데나리우스를 지출했다. 이러한 공제액의 총합은 50데나리우스다.


즉 봉급 50데나리우스를 받았는데 공제액이 50데나리우스였다. 이 기록이 토지법제사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매우 명확하다. 지주귀족들이 포진해 있는 로마 장교 집단을 제외하고, 당시 로마 병사는 일반적으로 결코 중산층이 아니었고 국가에서 주는 봉급을 알뜰살뜰 모아봤자 훗날의 중산층이 될 수도 없었다. 5백 년 전에는 가난한 시민은 군역을 면제 받고 그 외에 넉넉한 토지 재산을 가진 자들 즉, 중산층 로마 시민들은 모두 로마 병사가 되었지만 이제 깨끗히 과거가 되어버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오늘날의 마사다 요새 유적지(Getty images)


군제개혁으로 군역이 지주에게서 빈민층으로 전가되었을 뿐더러 시행되었을 당시에는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빈곤층이 직업군인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1세기부터는 직업군인이 되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위 급여명세서는 도저히 간격을 좁힐 수 없는 빈부격차의 사회를 잘 대변해주는 사료이기 이전에, 기원후 로마에서의 부유한 지주들이 국방을 책임져야 한다는 군역토사상은 사실상 완전히 소멸하였음을 말해주는 사료이기도 하다.






이번 글에서는 서기 33년의 로마사 최초의 금융위기와, 마사다 항전을 통한 로마 민중의 빈곤을 살펴보았다.


(1) 로마 금융위기는 부동산제도의 문제로 발생했다. 과거와는 달리 그 소유주에게 해당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수익을 보장해주고, 그 소유에 따르는 전통적 부담(군역 등)을 부과하지 않기에 투기성 자본이 흘러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21세기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2) '토지를 많이 가진 자는 그 만큼 국가 방위에 더 많이 기여한다'라는 군역토사상은 소멸했다. 그나마 토지 없는 자들이 군대에 가서 넉넉한 보수를 받아 중산층이 될 수 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옛날에는 토지 없는 자들을 군대에 보내려면 토지를 억지로라도 줬었는데(베이이 공성전) 이젠 그것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 같은 수준에 그친다면 다행이겠지만 더 안타깝고 충격적인 내용은 계속 이어진다.


References


[1] M. Massey and P. Moreland, Slavery in Ancient Rome, 1978, p. 22; 김진경, 김봉철, 최자영, 백경옥, 송문현, 오흥식, 차전환, 김경현, 신미숙, 최혜영,『서양고대사강의』(한울아카데미, 2008), 439쪽에서 재인용.

[2] 임웅, “문헌사료를 통해서 본 로마의 colonus”, 「사총」55(2002), 313~319쪽.

[3] 김진경 외, 전게서, 355쪽.

[4] Naturalis Historiae, XVⅢ. 6. 35; 김진경 외, 전게서 358에서 재인용.

[5] 이기영, 『고전장원제와 봉건적 부역노동제도의 형성』(사회평론아카데미, 2015), 40쪽.

[6] 마사다 항전 : 지형적으로 난공불락인 마사다 성에서 유대인들의 저항 집단(scarii. 국내 성경에선 열심당이라고 표기되어 있음)이 모여 로마 정부에 대항하여 치열하게 벌어진 공성전. 70년경부터 전투가 시작하여 73년 4월 16일에 요새가 함락되므로써 종결되었는데, 패배를 직감한 유대 병사들은 성 내부의 거의 모든 사람들 죽이고 자살하였다.

[7] “Ancient soldier's payslip, found during excavation of 1,900-year-old Roman Empire camp in Israel, reveals the infantryman was left BROKE after military deducted his uniform and food”, Mail Online, last modified Feb 8, 2021, accessed Feb 13, 2021, https://www.dailymail.co.uk/sciencetech/article-9237493/Roman-soldiers-payslip-1-900-years-ago-reveals-left-BROKE-military-deduction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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