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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영철 Nov 20. 2021

21세기 귀족(4)

이스라엘 히브리 율법과 앗시리아 법전에서, 미 대륙 인디언들까지

당신은 신분제가 폐지되었다고 믿는가?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합법적으로 착취하는 제도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는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폭력적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신분제도는 그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부동산제도'라는 이름으로.

 
 


  


  

- 프롤로그 -


 

지금까지의 카카오톡 브런치의 가장 큰 방향성과, 필자의 <21세기 귀족>의 방향성이 다소간 다를 것이다. 허나 브런치를 애독하는 독자들 중에 필시 깊은 학구열과 경제적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이 글을 올리는 바이다. 이 글 <21세기 귀족>은 필자가 지난 3년 간 개인적으로 연구해온 결과물이다. 


이 글은 부동산 기득권층이 꼭꼭 숨기고 싶었던 부동산제도의 숨겨진 역사를 파헤치는 글이 될 것이다. 



- 본문(4) : 이스라엘 히브리 율법과 앗시리아 법전에서, 미 대륙 인디언까지 - 


다음으로 살펴볼 법전은, 빼놓을 수 없는 이스라엘 민족의 <히브리 율법>이다. <히브리법>이라고도 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땅으로부터 이끌어냈던 모세가 신 야훼가 주신 법을 대신 기록하여 백성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원전 약 15세기 혹 13세기에 모세가 직접 기록하였다는 모세기자설이 있고, 반면에 수백 년 이상 내려오던 구전을 기원전 600~400년경에 집대성하여 성문하였다는 등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히브리(이스라엘) 율법의 일부(https://www.deadseascrolls.org.il/)


M. Mainonides에 따른 분류표에 따르면 율법은 총 613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잘 알려져 있다시피 법전의 종교적 성격은 당대 그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법전보다 매우 강하다. 오롯이 경제적 목적으로 제정된 조항의 개수도 613이라는 숫자에 비해서는 적거니와, 전체에서 토지의 경제적 가치나 지주의 경제권을 보장 및 확대하는 조항은 전혀 없다. 오히려 지주가 경제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도록 규정하고 지주권의 확대를 막으려는 의도가 다분한 율법들이 있었다.


<히브리 율법>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법들을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다.


레위기


19장

9절 :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절 :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명백하게 토지공개념이 확인된다.


25장

10절 :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절 :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3절 :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


23절 :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으니라


24절 : 너희 기업[1]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25절 :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29절 : 성벽 있는 성 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 지 만 일 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


여기서 ‘기업’이란 토지를 의미함을 밝혀둔다. 25장 23~24절에서는 신토사상에 기반하여 원칙적으로는 토지의 매매를 금했다는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다양한 원인으로 매매가 있을지라도 50년 마다 찾아오는 ‘희년’에는, 그동안 매매되었던 토지를 본래의 주인 및 지파로 돌아가게 했다.(10절, 13절, 24절) 49년 간의 부동산 매매로 인한 부동산 소유의 격차 발생을, 50년 전 본 주인 및 지파에게 돌려줌으로써 해소한다는 점에서 명백히 토지주권사상과 토지평등사상이 확인된다. 만약 경제적 빈곤 때문에 매매가 이뤄졌을 경우에는 가까운 친족이 와서 값을 치르고 토지를 되찾아오게 하였다는 점에서는(25절) 가보유지사상이 확인된다. 이외에도 노예들도 해방되어 자유인으로 돌아가게 했다.(10절)


혹자는 위 율법은 지나친 토지평등사상이며 노예 해방 수준으로도 족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허나 토지평등사상의 실질적 회복 없는 노예 해방은 다시 빈곤한 자유인이 타인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을 낳기 마련이다. 토지에 대한 권리를 완전히 상실한 우리 근현대인들은, 신분제도가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를 가진 소수에게 임대료 등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21세기 소작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어지는 29절은 타인에게 매각하였던 부동산을 일정 기간 안에 다시 제값을 주고 환매(팔았던 것을 되사는 것)할 수 있던 환매권에 대해 규정하는데 이는 토지양극화의 비가역성[2]을 제한하여 토지평등사상 및 빈부격차 완화에 크게 기여했다. 다만 몇 학자들은 이러한 소위 희년법이 실제 운용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그러한 사상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이렇게 토지주권사상과 토지평등사상의 실현을 전면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주택 등의 부동산이 없어 부동산 소유주들에게 경제사회적으로 예속된 21세기 농노들과 소작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요, 거품으로 가득한 주택을 구매하느라 막대한 빚을 져야 하는 사람들의 빚을 탕감시켜주는 것과 같다. 거품 가격을 없애는 것이므로 ‘미래의’ 빚을 미리 탕감시켜주기에 향후 그가 부동산소유주의 농노가 될 가능성을 낮추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같은 정기적 토지재분배 제도는 아주 특수한 사례가 아니고, 다른 문명권 및 시대에도 있었으며 무려 19세기의 아프가니스탄도 정기적으로 토지를 재분배하는 와이쉬(Waish) 제도가 있었다.[3] 이는 토지공개념을 비롯한 토지주권사상, 토지평등사상은 특정 문명권이나 시대에 국한된 특수한 사상이 아님을 방증한다.


마지막으로 알아볼 법전은 중기 아시리아의 왕 티글랏 필에세르(Tiglat-pileser I, 재위 기원전 1114~1076)가 편찬한 <아시리아 법전>인데, 훼손된 5개의 조항을 제외하고 현대에 확인 가능한 나머지 54개의 조항 중에서 지주의 권리를 강화시키는 조항은 단 하나도 없다. 중세 아시리아 사회는 상당히 군국주의적이었지만 군인뿐만 아니라 기능공이나 건축가도 국가로부터 봉토를 받으면 그 대가로 부역을 이행해야 했고, 제 3자에게 매매는 불가하지만 그 부역이 지속된다는 조건 하에서 상속이 가능했다.[4] 이 또한 기원전 제1천년기를 앞둔 시점까지도 변함없이 토지의 궁극적 소유자는 왕 및 국가라는 것과,[5] 그로부터 토지를 받은 자는 군역 등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군역토사상이 뚜렷했음을 명백히 말해준다. 봉물이 토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중세 유럽의 봉건제와 상당한 유사점이 있을 정도다. 허나 그 국유지를 어떻게 쓰는지는 사실상 궁정의 위정자의 결정에 달려있고 당시에는 근현대와 같이 지주들의 힘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제도나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빈부의 격차는 그때에도 벌어지기 마련이었다.[6]


티글랏필에세르(https://en.wikipedia.org/wiki/Tiglath-Pileser_I#/media/File:Relief_of_Tiglath-Pileser_I.jpg)


(군)역토제도는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 그 선조들로부터 바빌론이 물려 받았던 것인지, 이집트 문명과 같은 외부로부터 도입했던 것인지 확증하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첫째로 지주는 공익에 군역 등으로 기여해야 하는 토지공개념 및 역토사상이 상당히 보편적이었다는 것이고, 인류의 이성에도 그다지 어긋남이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오늘날 부동산제도가, 특히 영국과 미국 그리고 그들의 부동산제도를 이식 받은 국가들에서 거의 완전히 토지공개념에서 벗어나 절대적 소유권으로 자리잡은 것은 자연스러운 문명과 제도의 ‘발전’이라는 관점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문명과 동떨어진 소수 민족은 누군가가 농사와 수확을 마치고 해당 토지를 떠나거나 버리면 타인이 그 토지에 새로운 농사를 할 수 있는데,[7] 인류 초기의 토지사상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필자의 주장의 방증된다.


또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첫 문명인 마야문명도 적절한 사례이다. 마야문명은 약 기원년부터 존재했다고 여겨지는데 그 전성기는 고대 마야 시기인 기원후 약 250년부터 멸망까지인 약 900년까지이고, 마야의 중부 지역의 도시들이 하나 둘씩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스페인이 칩입하던 16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마야의 대부분의 토지는 공동소유이며 지배 계층이 사적인 토지소유권을 일부 가졌고 처분을 결정했었고, 스페인 사람들이 알칼데 콜(alcalde col)이라고 불렀던 마야 관료들이 마야 주민들에게 옥수수 재배용 토지를 분배했다고 한다.[8]


또한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례가 있다. 근현대인 19세기 중반에 미국 정부가 현 시애틀 땅의 '수꾸아미족'의 '시애틀' 추장에게 땅을 팔라고 요구하자 당시 추장이 답서를 보낸 사건인데, 이 또한 토지사유제 및 지주권의 강화는 모든 문명권의 발전에 일반적 흐름이 아니라는 반례가 된다. 더이상의 사례 열거는 불필요할 것 같다.     


The President in Washington sends word that he wishes to buy our land. But how can you buy or sell the sky? the land? The idea is strange to us. (하략)[9]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이 우리에게 땅을 매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허나 당신네들은 하늘을 어떻게 사고 판단 말인가? 하물며 땅이랴? 그러한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낮설도다. (하략)


지금까지 확인하였고 앞으로도 확인하겠지만 토지 사유의 제도적 고도화는 해당 사회에 부동산양극화 및 빈부격차를 발생시켜 경제사회적 약자 계층을 두텁게 만들고 그들을 토지 소유자들에게 예속시킨다.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사례는, 전 세계 역사 교과서에 대부분 기록되어있는 근대 영국의 인클로져와 그것이 야기한 경제사회적 문제들이다. 본서를 읽고 있는 현대 21세기의 독자들도 여전히 동일한 문제 아래 있다. 인류 문명이 움트고 고도화되는 과정 중에 사람 위에 사람을 두고 사람 아래에 사람을 두는 신분제도가 만들어졌지만 결코 올바른 제도가 아닌 것처럼, 토지 사유에 절대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는, 신분제도가 옳지 못하듯이 옳지 못하며 이어지는 내용에서 더 확실히 확인하게 될 것이다.


수꾸아미족의 추장, 시애틀(https://brunch.co.kr/@bang1999/307)


이제 본격적으로 유럽으로 눈을 돌려보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 거의 전세계의 토지사상과 제도는 명백하게 유럽의 법제이기도 하면서, 그들의 사상과 제도뿐만 아니라 그 아래서 살아가는 당대 민중의 생활상까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료 등의 내용이 풍부하여 더욱 피부에 와닿는 이해가 될 것이다.





References


[1] 기업 : 여기서의 기업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부족)를 각기 칭하는 말이다. 당시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차지한 땅은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 나머지 열한 지파가 나누어 가졌다.

[2] 비가역성 : 주로 부동산 문제에 관련되어 사용되는 용어로, 한번 진행되거나 심화된 문제는 쉽사리 그 전 단계로 돌아가지 않는 특성을 의미함. 대표적으로는 건축, 지가상승, 도시개발이 있다.

[3] Mountstuart Elphinstone, An Account of the Kingdom of Caubul(London : Longman, Rees, Orme, Brown, and J. Murray, 1815), 2:16~18; peter Linebaugh/정남영 옮김, 『마그나카르타 선언』(갈무리, 2012), 319쪽에서 재인용.

[4] Mieroop/김구원 옮김, 전게서, 271쪽.

[5] 상게서, 271쪽.

[6] 상게서, 293쪽.

[7] A. A. Kaufman, Russkaya Obshchina, Tip. T-va I.D. Sytina, 1908, p. 152, 271; Jan Stanislaw Lewinski/정동호 외 2인 옮김, 『財産의 祈願과 村落共同體의 形成』(세창출판사, 2007), 37~38쪽에서 재인용.

[8] Nancy Farriss M, Maya Society under Colonial Rule : The Collective Enterprise of Survival, 1984, Princeton, N. J.: Princeton University Press; Powelson/정희남 옮김, 세계토지사』(한국경제신문사, 1998), 430~431쪽에서 재인용.

[9] “Chied Seattle’s LETTER TO ALL”, accessed Feb 13, 2021, http://www.csun.edu/~vcpsy00h/seattl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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