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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n Jun 30. 2022

거짓말

아이의 상상력을 발견하는 순간, 거짓말

 일상은 그냥, 항상 물 흐르듯 지나가 버린다. 중력에 의해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 버린 순간들을 잡을 수도 멈추게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 찰나가 더 빛나는 보석이 된다. 난 그 보석처럼 반짝이는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지금부터 나의 보물들, 두 아들의 그 빛나는 찰나를 이곳에 담아보려고 한다.


 거짓말

 


 바쁘게 휘몰아치는 어느 하루, 방청소 중에 젤리를 하나 발견했다.


"찬영아~ 이건 뭐야? 무슨 젤리 같아. 이걸 누가 이렇게 부셔놓은 거지?" 나는 우리 9살 첫째에게 물었다.


" 엄마, 그거 내가 키우는 수경식물 밑에 흙 대신 넣는 젤리야. 근데 그게 왜 밖에 나와있지?"


"서우야~ 이거 서우가 그랬어?" 난 우리 7살 둘째에게 물었다. 서우는 나의 눈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엄마 나 아니야~~~"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 이 일을 버릴 친구는 둘째라는 것을.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이 일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며칠 후, 내 화장품 앰플 통에서 나는 그 젤리를 다시 발견했다. 다 쓴 앰플 통이라 그냥 버리면 되는 것이었지만 아이들에게 한번 더 물었다.


"애들아~ 누가 엄마 앰플 통에 젤리 넣어놨니? 누구야?"


첫째는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했고 난 첫째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둘째에게 물었을 때 아주 보석 같은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난 아니야, 엄마 나를 의심하는 거야? 난 정말 아니야!"


그 눈빛, 그 확실함, 누가 봐도 우리 둘째가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연기! 였다. 난 그 반짝이는 메서드 연기를 잊을 수가 없다. 당장 카메라가 있으면 큐~하고 녹화하고 싶을 정도였다.  난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혼내야 할까? 좀 더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까? 누구나 아이가 거짓말을 시작할 때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이의 상상력과 판단력, 자신의 모든 능력을 사용하는 대단한 순간이다. 난 좀 더 아이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아니야? 누구지?  엄마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첫째 아이는 시큰둥하게 자신은 아니라고 얘기하고 책을 보기 시작했고 둘째는 아니라고 얘기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난 주방으로 가서 지퍼백 하나를 가지고 와서 지퍼백을 펄럭이며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그 젤리가 들어있는 앰플 통을 지퍼백에 넣고 아주 큰 모션으로 지퍼백의 입구를 닫으며 말했다.


"정말 큰일이야. 우리 집에 도둑이 들어왔던 것이 분명해. 엄마는 내일 경찰서에 가서 지문감식을 요청해야겠어!"


그 순간 아이들이 모두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정적이 흘렀다. 상황을 파악한 찬영이가 달려와 말했다.


"엄마, 내 지문이 있을 수 있어. 난 그 앰플 통을 만진 적이 있거든."


"어. 엄마도 만졌기 때문에 엄마 지문도 나올 거야. 하지만 이 일을 한 사람의 지문도 나오겠지. 걱정 마 지문의 각도나 만진 횟수나 정황을 보면 다 알 수 있어.


우린 그 범인을 찾아야 해. 누가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이면 큰일이잖아. 하지만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범인이면 엄마는 너무 슬플 거야. 경찰서에 가서 범인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는데 범인이 우리 가족이면 정말 슬프겠지.."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 둘째의 눈에 지진이 일어나며 난 요즘 흔히들 말하는 동공 지진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둘째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니라고 대답하는 간 큰 둘째가 조금 밉기도 했지만 이 일이 아이에게 큰 교훈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난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둘째가 한마디 입을 열었다.


"엄마, 집에서 일어난 일을 경찰서까지 가는 것은 좀 그렇지 않아요? 집에서 해결하는 게 어때요?"


'Oh My God!' 난 연기자를 낳은 거야? 7세이지만 12월 생이라 6세나 마찬가지인 둘째의 연기가 빛을 바랐다. 나는 둘째의 행동에 재밌기도 했지만 화도 조금 났었다. 부모라면 거짓말이라는 사건을 좋게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사건을 마무리하고 설거지를 하러 갔다.


정확하게 내가 고무장갑을 끼고 퍼프에 세제를 짜려던 순간, 아마 30초 정도가 지났을 것이다. 둘째가 나를 불렀다.


"엄마...... 아앙~~~ 흑흑흑" 그 대성통곡을 이 단어로 담을 수가 없다. 눈물에 콧물에 어떻게 엄마를 부르고 3초 만에 그 많은 눈물들과 콧물이 쏟아질 수 있는지. 큰 목소리 울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나예요. 나..(딸꾹)였어요. 흑흑흑, 나.. 나.. 너무..(딸꾹) 무서웠어요. 경찰서는 너무 무서워요. 잘 못했어요. 으앙~~"


너무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그 순간이 너무 빛나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연신 쿡쿡 웃음을 참아내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난 웃음을 참아내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이라도 말해줘서 고마워. 서우였구나. 엄마는 서우를 너무 사랑하는데 서우가 거짓말을 하는 행동은 싫어. 그리고 경찰서 가서 우리 서우가 범인인 것을 알았더라면 엄마는 너무 슬펐을 거야. 언제나 엄마는 서우 편이야.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겠어."


둘째는 나에게 안겨서 10분은 꺼이꺼이 울었다. 어린 나이에 지문감식을 감당하기에는 벅찼을 것이 분명했다. 처음 젤리를 부셨을 때 엄마가 넘어가 준 것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난 우리 서우의 능력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보통 거짓말을 나쁜 것,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다들 얘기한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거짓말을 시작하는 것은 상상력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며, 상황 판단력이 확장되었다는 증거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거짓말은 너무 많은 측면을 담고 있기에 나쁘다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물론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많은 아이들의 거짓말에 당면한다. 정말 critical 한 것이 아니라면 조금 그대로 경험할 수 있게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거짓말을 어떻게 훈육할까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다. 꼭 거짓말이 아니어도 부모는 매 순간 고민하게 된다. 그 고민을 미리 해둬야 그 순간과 마주했을 때 simulation 한 대로 아이와 그 사건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거짓말에 있어서는 관대해도 좋다. 하지만 거짓말이 어떠한 결과를 가지고 올지에 대한 교훈은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빛나는 순간은 우리 둘째의 눈물을 조금 뺐다. 이 이후로 둘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아이의 상상력이 다치지 않게 난 둘째가 가진 비상함을 더 키워주고 싶다


두 아들을 키우며 생기는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서 조금씩 기록하며 글을 써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거짓말 에피소드는 사실 빙산의 일각이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이 거짓말쟁이는 아니다.

그 젤리가 바로 이 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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