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저것, 그것
“아이고, 이것아. 네가 어쩌려고 그래.”
사고를 치고 돌아온 자식의 어깨를 치며 부모는 눈물을 흘렸다.
“이것아, 아프면 말을 해야지. 혼자 끙끙 앓고 있었어….”
탄식과 눈물이 섞인 목소리로 부모는 자식을 걱정했다.
그리고 나는, 밥상 앞에서 게임이나 TV에 더 몰입한 37살 다른 집 큰아들에게 “이 자식아, 밥 먹어라. TV 꺼버리기 전에”라고 경고했다.
말의 결은 달라도 같은 게 있다. ‘이것’이 아닌 다른 단어를 대체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 대신 그것이나 저것을 넣어보면 명확한 비문이 된다.
‘이것’은 거리가 짧다. 너와 나의 거리가 저것, 그것보다 가깝다. 그래서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관계가 가까울수록, 깊을수록, 사랑이 가득할수록 쓰는 데 어려움이 없다.
관계의 깊이가 있기에 듣는 사람도 ‘감히 나를 이것이라고 불러?’라고 역정 내지 않는다. 어쩌다 과격한 표현이 붙어도 그 속에 담긴 마음이 전해지기에 ‘이것’은 다정하다. (일부 질이 나쁘게 사용되는 경우는 배제하고는.)
물론 관계가 깊은 만큼, 그리고 가까운 만큼 종속되기도 하겠지만.
‘저것’은 이것보다 거리가 멀다. 나보다 너에게 더 가깝다. 나와 너가 아닌 또 다른 너에게 더 가깝다.
사람의 욕심은 저것을 이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자꾸 끌어당기고, 얻으려 한다.
“저것 좀 가져다줄래?”
때로는 귀찮아서 너에게 지시하지만, 그렇다고 필요한 것을 혹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보다는 저것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저것을 이것으로 만들어 이것의 경계를 확장해도, 이것은 점점 저것이 되어간다. 거리는 상대적이다. 그래서 수많은 이것은 나와 더 가까운 이것들 앞에서 저것이 된다.
그러니까 저것은 그냥 저것으로 두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만 잘 보살펴도, 저것이 없다고 세상 슬프거나 괴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것, 저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더 끈끈해서 너와 내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기억이든, 추억이든, 안 좋은 일이든, 너와 나 사이에 이전의 무언가가 있어야 ‘그것’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오직 너와 나의 말이다. 그래서 가끔 ‘그것’은 암호처럼 쓰인다.
반면 너와 나의 관계를 연결하는 만큼 그렇지 않은 관계는 느슨해진다.
“그건 말해도 넌 모르는 일이야. 오직 나와 걔만의 비밀이니까.” ‘그것’은 은밀한 소외의 언어다. 그렇기에 경험이 공유되지 못한 누군가는 소외감이라는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그것은 아무에게나 쓸 수 없다. 쓸 수는 있겠지만, 또 다른 사람은 ‘그것’의 의미를 모르니 분명한 소통이 되지 못한다. 제3자에게 그것을 제대로 이해시키려면 언제라도 이전의 사건을 공유하는 시간이 꼭 가져야 한다.
‘그것’이 주는 특권은 너와 나의 관계를 더욱 증폭시키기에, 나는 오늘도 내 사람들과 이것저것을 나누며 또 다른 그것을 만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