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식물을 살 때 꼭 잊지 않고 물어보는 것이 있다. 볕이 잘 들지 않아도 키울 수 있냐는 것. 북향인 집의 특성상 해가 드는 시간이 매우 짧아서 따뜻한 해의 기운이 많이 필요한 녀석을 들이면 나나 녀석이나 서로가 괴롭다.
스노우 사파이어.
화원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신 식물은 볕이 들지 않고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잘 자랐다. 텅 빈 화분이 꽉 찰 정도로 새잎을 올렸고, 가끔 옥수수처럼 생긴 꽃도 보여줬더랬다. 그래서 욕심이 생겼다. 식물을 키우는데 소질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에 또 다른 식물 하나를 들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녹록지 않았다.
3만 원이라는, 첫 번째 녀석에 비하면 6배에 달하는 가격이 주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절대로 죽일 수 없다는 사명감에 해를 쫓아가며 식물을 이동하고, 나무젓가락을 꽂아 넣어 흙이 보송하게 되어 있을 때만 물을 줬다.
물을 준 뒤에는 선풍기를 틀어주고, 부족한 빛을 보충하기 위해 식물 등도 켜줬다. 왠지 비실비실해보일 때는 영양제도 사서 꽂아봤다. 하지만 식물은 하나둘씩 잎을 떨궜다.
어떤 날은 탈모가 진행되는 것처럼 우수수 이파리를 아래로 떨구기도 했다. 화분은 어느덧 민둥산이 되었고, 여전히 잎을 달고 있는 부분은 쭈글쭈글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식물의 줄기 하나가 뚝-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물을 주고 빛을 쐐주었던 나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쭈글쭈글한 잎을 보며 분명 물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떨어진 줄기는 메마르기보다는 촉촉하다 못해 물러있었다. 어딜 봐도 과습이었다.
나는 식물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식물이 내게 보내오는 신호를 해석할 줄도 몰랐다. 두 번째 들여온 녀석은 첫 번째 들여온 녀석보다 더 까다롭고, 어려운 녀석이었다. 식물 집사 초보 레벨인 내가 그 언어를 캐치하기에는 힘든 그런 녀석 말이다.
동기는 불순했지만, 짧은 시간 살다가 그 녀석을 꽤 아끼고 사랑했다. 매일 옆에 붙어 ‘죽지 마. 이겨내.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라고 말을 걸었지만, 어쩌면 녀석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서둘러 떠난 걸 보면.
통하지 않는 마음은 이렇게 괴롭다. 나를 생각하며 내뱉은 말은 상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기 어렵다. 어쩌면 식물도 그것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내 말에는 식물을 위하는 마음이 아닌 3만 원이 아까워서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더 많이 담겼다는 것을.
내 말에 진심으로 식물을 위하는 마음이 가득 담겼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더 오래 내 곁에 머물러 주지 않았을까.
3만 원짜리 화분을 조금 이르게 어딘가에 있을 초록동산으로 떠나보내며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내 언어가 상대에게 닿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아닌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을. 상대가 괴롭고 힘든 상황에 빠져 있을 땐 더더욱 그렇다. 내 마음이 아닌 상대의 마음을 담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할 때 진짜 내 마음이 비로소 전달된다.
다행히 첫 번째 녀석은 아직 나와 살고 있다. 이제 스노우 사파이어를 보고 있으면 녀석이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하게는 알 것 같다.
“아이고, 그랬어? 오늘은 시원하게 물 샤워 해줄게.”
이파리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녀석은 물을 실컷 빨아올리며 다시 생생한 상태로 돌아온다. 올겨울을 잘 넘기면 봄에는 다시 옥수수를 닮은 꽃을 피워줄 것 같다. 녀석이 까다롭지는 않지만, 점점 녀석과 나의 언어가 통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화분을 통해 진짜 통하는 언어를 서툴게 배워가는 중이다.